[굴렁쇠 이야기] 인기팻말이 된 사연

"저기...저기!"

들꽃을 바라보던 아내가 갑자기 숨넘어 가는 소리를 했다. 사진기에 코를 박던 나는 아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눈동자를 굴렸더니 팻말 하나가 서 있었다.

"허허. 재밌네~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산책길을 따라 제주 별도봉을 한바퀴 도는 일이 잦았던 우리 부부도 미쳐 이 녀석까지 챙기지를 못했다. 휙휙 보트 지나가듯 속도를 내는 사람들도 이 팻말 앞에서는 걸음을 멈추고 저마다 "하하하 호호호" 웃음을 남긴 다음에야 자리를 떴다.

사진을 두장 찍고 '어떤 밭이길래, 한 번 들어가 봐야지' 중얼거리며 오른짝 발을 드는 순간, 아내가 나의 모가지를 휘감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농약 뿌렸대자나~!"

농약 뿌린 것과 잡초만 무성한 노는땅(休耕地)에 발을 딛는 것 사이의 무슨 변증법 관계가 있다는 거야. 내가 좌절하자 이번에는 젊은 엄마 따라 산책 나온 어린 소녀가 발 하나를 살짜기 밭에 갖다 대고 히히히 웃는다. (이 밭은 밭담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보호자의 입에서 침 튀기며 튀어나오는 외마디 비명소리.

"농약 뿌렸대자나~!"

알 수 없는 일이다. 호기심에서라도 밭에 한번쯤은 들어갈 법도 한데 아무도 이 밭에 들어가지 않는다. 한참을 보초 서며 지켜봤는데 사오십여명이 잠시 멈췄다가, 하하하 웃다가 다시 떠나면서도 밭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다. 나와 소녀처럼 시도하다가 동행인으로부터 저지 당하는 일은 몇차례 있었다. 왜 이렇게 밭주인이 단정히 세워놓은 팻말에 별도봉 사람들은 옴짝달싹 못하는지...산책하며 더 연구해 봐야겠다.


한 가지 입수한 정보라면, 이 팻말은 봄부터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올 봄인지, 작년 봄인지 그것까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공짜로는 통할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밭이 시달렸는지, 밭작물이 몸살을 앓았는지 불법침입자를 재치있게 막아낸 팻말이 기특하기만 하다.

팻말의 처음 용도와 관계없이 가는 사람 오는 사람에게 인기팻말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제일 건방진 '출입금지'라는 팻말 녀석이. 어찌됐든 농약 뿌렸으니 밭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저마다의 다짐은 유쾌하게 실천됐다.

어떤 이는 팻말 자체도 명물이라며 머리를 매만지기조차 했다. 어느 누구도 그를 '오바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만약 그에게 오바맨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이는 이 밭에 농약 뿌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아내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시도. 밭 안에 들어가 이 생생한 현장을 사진기에 담고 오겠노라고 선언하면서 왼짝 발을 드는 순간, 이번에는 아내에게 사진기를 압수 당했다.

"농약 뿌렸대자나~!"
"잘못했습니다"

아마도 이 밭은 출입금지 팻말 덕분에 땅값이 오를 것 같다.^^ /굴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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