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무덤 부시지 마'새'요

 

 


학교 운동회에 갔더니 병아리도 팔더군요.

"아빠, 사람은 왜 죽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가끔 딸(7세)아이가 묻곤 합니다.

7세 아이에게 ‘7세 언어’로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이럴 때마다 ‘대략난감’해지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나 진지하게 묻는 아이의 눈빛 앞에서 얼렁뚱땅 얼버무리기도 곤혹스럽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예비된 죽음. 죽음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딸아이에게 ‘우리 모두 나이가 들면 죽는다’는 엄연한 사실과 함께 ‘착한 일을 한 사람은 하늘나라 별이 된다’는 아닌 사실도 함께 말해줬습니다.

그래도 ‘죽는 게 싫어’라며 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곤 했던 딸아이였는데 난생 처음으로 깊은 슬픔과 함께 죽음을 목도하게 됐습니다. 다름 아닌 병아리의 죽음이었습니다.

학교 운동회에 놀러갔다가 졸라대는 딸아이의 애원에 못 이겨 병아리를 두 마리를 사왔는데 두 마리 모두 며칠을 못 넘기고 죽어버린 것입니다.

‘꼬꼬’와 ‘삐약이’라고 이름을 지어가며 그렇게도 좋아했던 병아리였는데 이별은 너무나 빨리 찾아왔습니다.
사올 때부터 한 마리가‘골골’대기에 딸아이에게 ‘이 병아리는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해줬는데 그 때 딸아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병아리를 위한 딸과 저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의 병아리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하루를 보내고 죽었습니다.

옥상 텃밭에 병아리 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헤집을 때 딸아이는 정말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빠의 부탁을 안 들어줬다’며 울고불고 하는 딸아이에게 ‘네가 울면 하늘나라에서 병아리도 울 거야’라는 등의 말로 달래봤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 엄마의 말이 울음을 그치게 하는데 큰 ‘효과’를 봤습니다.

 "네가 울면 병아리는 우는 나라에 가고, 네가 웃으면 병아리는 웃는 나라에 간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나서 다른 병아리도 결국 죽어버렸습니다.
딸아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야외소풍에 동행시켰을 때만 해도 들녘에서 벌레도 잡아먹으며 비교적 활발하게 지내던 놈이었는데 이놈 역시 하루를 건넜을 뿐 먼저 간 놈의 전철을 밟았습니다. 두 번째 병아리 무덤은 딸아이가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병아리가 ‘우는 나라’에 갈까봐 애써 슬픔을 참는 딸아이가 처음처럼 크게 울지는 않았지만, 커다란 눈망울에 고인 눈물을 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죽음과 친숙해지는 과정일터이지요. 나이가 들수록 주검 앞에서 무덤덤해져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두 마리를 사왔습니다.


사올 때부터 몸이 안 좋았던 병아리.
다른 병아리로 바꿔올까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병아리일망정 생명이 상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어갑니다.


딸애가 슬퍼합니다.


딸애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둘째도 덩달아 웁니다.


딸애의 손에서 최후를 맞은 병아리.


병아리 무덤에 넣어준 딸애의 편지.


병아리 무덤을 만들 때도 엄청 울었습니다.

너무도 섧게 우는지라 딸아이 사진을 찍지 못하겠더군요.
나중에 병아리 무덤을 다시 찾은 딸아이.


야외 나들이(둘째가 먹이를 줍니다) 이때만 해도 이 병아리는 잘 크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먼저 간 병아리와 같은 증세를 보입니다.


결국 이놈도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딸애가 슬픔을 애써 누르며 병아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하여 피아노를 쳐줍니다.

 "삐약,삐약 병아리~!"


병아리에게 또 편지를 썼습니다. 병아리 '관'속에 함께 넣어줬습니다.


이번엔 딸애가 스스로 무덤을 만듭니다.


흙을 묻고...


돌담(?)을 쌓습니다.




'비석'도 세웁니다.


'병아리 무덤 부시지 마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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