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제주는 아버지 고향"-커틀러 '갈옷' 차림 깜짝쇼협상장 밖은 '유혈투쟁'…웃음 뒤에 감귤의 운명은?

▲ 이번 협상을 통해 가장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은 3인방. 김태환 지사-웬디 커틀러-그리고 김종훈.
23일 개막된 한미FTA 4차 협상 회담장 안팎에 천양지차다. FTA협상을 체결하려는 우리나라와 미국 대표단, 그리고 협상을 저지하려는 시위대의 분위기는 180도 다를 수밖에 없지만 FTA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제주의 기간산업자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감귤'은 예상 밖의 대접을 받고 있다.

전국에서 내려온 원정시위대와 감귤산업을 지키려는 제주농민들이 함께 협상장 진입을 위해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면 유혈투쟁을 벌이던 24일에도 감귤문제만은 완전히 딴 판이었다.

협상 개최지 수장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서라도 감귤을 당연히 지켜야 할 김태환 지사는 물론, 우리측 김종훈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 수석대표까지 나서 '감귤'이란 특정 품목을 거론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농민들은 "협상이 타결되면 감귤농사가 망하고 제주농민들이 다 죽게 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나 정작 협상의 당사자들은 "그런 일 없으니 걱정말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김태환 지사,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 웬디 커틀러 미 수석대표의 잇단 발언에 제주농민들은 "혹시 예외품목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으나 현란한 '외교적 수사' 뒤에 감춰진 무엇인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연일 스포트라이트 받는 김태환 지사=한미FTA협상이 시작되면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김태환 지사가 연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 23일 공식 면감을 가진 웬디 커틀러와 김태환 지사.
협상 개시 첫날인 23일 제주대표단을 이끌고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 웬디 커틀러 미 수석대표와 1시간 동안 면담을 가진데 이어 24일 무역협회 만찬, 25일 한덕숙 FTA협상 지원위원장 주최의 오찬에서 잇따라 메인테이블을 차지하면서 '홈 어드밴티지'이점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FTA협상이 개시되기 전까지만 해도 감귤재배농가들을 비롯한 도민사회의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듯 기자회견과 담화문 발표를 하는 등 좌불안석을 보여 왔던 것과는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오히려 협상이 시작되면서 김 지사 얼굴에 웃음이 감돌기 시작했다.

23일 오후3시 강창일 김우남 김재윤 국회의원, 양대성 도의회 의장과 김종훈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를 만난 김 지사는 회담 직후 브리핑과 다음 날 오전 제주도청 기자간담회를 잇따라 갖고 "미국측 협상단이 제주 감귤이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실상을 알려 협상과정에서 잘 반영해 줄 것을 요청했다'면서 "그런 목적에서 본다면 우리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본다"고 자평했다.

김 지사는 "(웬디 커틀러도) 현장에서 '예스'다 '노'다는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 국가 간의 협상이라서 그런지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무척 신경을 기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충분히 읽었을 것"이라면서 "우리 측 5명 모두가 조금씩 시각은 달리하면서도 감귤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에 큰 감동을 먹은 것 같았다"며 설명했다.

▲ 25일 한덕수 위원장 주최의 오찬간담회에참석한 김태환(왼쪽으로) 지사, 송영길 우리당 의원, 웬디 커틀러, 한덕수 위원장,김종훈 수석대표.
김 지사는 이어 24일 밤 무역협회 주최 리셉션 축사를 통해 "한미FTA협상이 이대로 간다면 오래전부터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정착된 미국과의 경제교류에서 우리나라의 농업분야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며 제주 역시 감귤 하나만 해도 연간 2천억원씩 향후 10년간 2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이번 한미FTA협상이 양국의 공동의 이익, 다양한 계층과 업종이 상호이익을 위해 일방적인 양자택일이 아니라 서로 조화시켜야 할 부분은 적극 보완해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다른 나라에도 좋은 귀감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감귤을 예외품목으로 인정해 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 갈옷을 입고 오찬장에 나타난 웬디 커틀러=23일과 24일 잇따라 제주의 상황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웬디 커틀러 미 수석대표가 25일 오찬장에 제주 전통 의상이 갈옷을 입고 나타나 다시 한 번 관심을 집중시켰다.

▲ 웬디 커틀러 미 수석대표가 25일 오찬장에 갈옷을 입고 나타나 깜짝쇼을 연출했다.
웬디 커틀러는 회담 개최지가 제주이며, 제주민심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듯 23일 김태환 지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제주도 방문이 두 번째"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웬디 커틀러는 "1년 반 전에 제주에서 열린 APEC 외교통상장관회의 때 미국 장관을 수행해 제주에 왔었고 그 때 김태환 지사를 만난 적이 있다"며 김 지사도 미처 기억하지 못한 사실을 우리측 대표단에게 알리는 섬세함(?)도 보였다.

웬디 커틀러는 김 지사에게 "경제적·상업적인면뿐만 아니라 제주의 문화와 역사적인 면도 협상과정에서 고려하겠다"면서 김 지사가 건의문을 건네주자 "충분히 읽은 후 협상과정에서 참고하겠다"며 우리측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웬디 커틀러는 24일 밤 리셉션에서는  "어제(23일) 김 지사를 만나 제주에 대해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면서 "제주도민들에게 감귤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협상과정에서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FTA협상이 제주도민들의 삶에 급격한 변화를 야기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리셉센에 참석했던 김 지사와 제주지역 인사들을 흡족케 했다.

웬디 커틀러는 이날 리셉션 장에서 이영두 서귀포시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갈옷을 25일 한덕수 한미FTA협상지원위원장이 주최한 오찬장에 입고 나와 깜짝 쇼를 연출했다.

◆ 김종훈 커밍아웃 "우리 아버지 고향은 제주"=웬디 커틀러에 못지않게 우리측 김종훈 수석대표도 제주도와 제주감귤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 자신의 아버지 고향이 제주라며 제주와의 인연을 유독 강조한 김종훈 수석.
일부 언론과 몇몇 인사들은 김종훈 수석대표 아버지 고향이 제주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그의 고향이 대구인 것만을 알았을 뿐이다. 김 수석대표도 그 동안 몇 차례 제주에 내려왔고 언론과도 인터뷰 했으나 이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수석대표는 24일 밤 환영리셉션 장에서 "우리 아버지 고향도 제주도"란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 수석대표는 "제주도에서 협상을 진행하게 돼 기쁘다"고 말을 꺼낸 후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의 고향이 제주도여서 더욱 기쁘다"며 제주도와 자신가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김 수석대표는 김 지사와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와 면담에 직접 자리를 함께 하고는 "제주도민들의 뜻이 협상과정에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김 수석대표는 김 지사와 웬디 커틀러 면담 성과에 대해서도 "오늘과 같은 자리는 전례가 없는 일이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말하는 등 김 지사에 대한 예우도 잊지 않았다.

◆ 외교적 수사 뒤에 감춰진 결론은?=김태환 지사에 대한 깍듯한 예우와 감귤에 대한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웬디 커틀러와 김종훈 수석대표 입에서는 제주도민들이 바라는 딱 부러진 답변은 하지 않고 있다.

먼저 우리측 김종훈 수석대표도 갖가지 발언을 통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웬디 커틀러 역시 "고려하겠다"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협상이 아무리 ‘윈-윈’이라고 하지만 이익이 있으면 손해도 따르는 상황에서 상대편에게 자신의 카드를 먼저 내보이지 않는다는 게 협상의 ABC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은 상대를 염두에 둔, 특히 제주에서 협상이 이뤄지면서 반대측의 반발을 염두에 둔 '외교적 제스처'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 25일 리셉션세어 서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웃음을 짓는 김태환 -커틀러-김종훈.
특히 웬디 커틀러가 "제주도민들의 삶에 급격한 변화를 야기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은 주목을 끌고 있다. 즉 '급격한 변화'란 의미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감귤은 우리가 미국에 제시한 농산물 284개 품목을 민감품목으로 선정 '협상 예외품목'에 포함돼 있으며, 이번 4차 협상에서 미국측의 상품·무역규제 수정안 내용에 따라 제시할 수정양허안에도 예외품목으로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미국 역시 알 고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디 커틀러는 '급격한 변화'란 표현을 썼다. 이는 거꾸로 해석하면 '제주감귤에 변화는 불가피하다' 뜻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우리의 약점을 이미 충분히 간파해 버린 미국입장에서는 또 다른 카드로 압박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카드는 감귤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감귤을 대신해 다른 농산물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태환-웬디커틀러-김종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놓고 홈 구장의 잇점을 충분히 살린 '홈 어드밴티지'라며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이 등뒤에 비수름 감춘 외교적 수사가 아닌지 아직은 속단하기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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