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름기행〕억새가 숲을 이룬 '거슨새미 오름'

 
▲ 억새가 숲을 이룬 거슨새미 오름.
ⓒ 김강임
 
제주의 11월은 만추의 계절이다. 들녘의 돌담 사이로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 가을걷이에 여념이 없는 농촌 풍경은 계절에 순응한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는 건 자연의 이치. 그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 아마 만물의 속성일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는 것이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 밭을 가로질러 철조망을 뚫고 오름 속살에 들어가면 묘지가 있다.
ⓒ 김강임
 
'물이 한라산으로 거슬러 흐른다'는 거슨새미 오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 145번지 거슨새미 오름. 광활한 대지에 솟아 있는 거슨새미 오름엔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는 그 무엇이 있다. 사람들은 거슨새미 오름을 역수산(逆水山)이라 불렀다. 물이 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는 오름이다. 그 오름은 주변의 오름들과 무엇이 다를까?

목장 주변을 가로질러 자동차로 달려가는 동안 역수산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가을걷이를 끝낸 오름 앞 넓은 밭엔 찬바람만 불어댔다. 밭 한가운데 서서 거슨새미 오름을 바라보았다.

 
▲ 말굽형 분화구에는 자연림이 무성하다.
ⓒ 김강임
 
서쪽을 향하고 있는 말굽형 굼부리에는 자연림이 무성했다. 다만 굼부리가 바다로 향하는 대신 한라산을 향하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굼부리 주변엔 이제 막 알록달록 단풍이 들고 있었다. 여느 오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름 전체가 숲을 이뤘다는 것이다.

오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넓은 밭을 가로질러 철조망을 뛰어넘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오름 속살로 들어갔다. 오름 속에 자생하는 가을꽃들이 숨어 있었다. 묘지 앞에 다다랐다. 제주 오름 중턱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 정상에는 경방초소가 있으며, 그곳에서 산불요원이 오름을 지키고 있다.
ⓒ 김강임
 
자연림 무성한 숲을 따라서

거슨새미 오름으로 가는 길에 억새와 소나무가 숲을 이뤘다. 겨우 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 누군가가 길을 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오름 정상에 이르자, 경방초소에 서 있던 산불감시 요원이 우리 일행을 맞이해준다. 산에서 만나는 경방초소와 그 초소를 지키는 아저씨의 헛기침 소리는 더없이 반갑다. 주머니 속에 넣어 둔 감귤 하나를 꺼내 산불감시요원 아저씨에게 건넸다.

"아저씨! 심심하지 않으세요?" 아저씨는 "오름 기행을 하는 사람들이 벗이 되어준다"고 말하고 "요즘 같은 계절엔 산불이 나기 쉬워 오름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화구 등성이를 따라 억새 트래킹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김강임
 
거슨새미 정상, 억새 숲 이루다

거슨새미 오름 정상엔 억새가 숲을 이뤘다. 늦가을 정경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오름의 정상. 능선에 핀 하얀 억새꽃 길을 걷는 재미에, 가을에 흠뻑 빠진 느낌이다.

 
▲ 정상에서 바라본 안돌 오름.
ⓒ 김강임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와 무성한 자연림이 숲을 이룬 말굽형 화구. 그 등성이를 따라 걸어보았다.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이 형제처럼 누워 있다.

 
▲ 동쪽으로 높은 오름과 다랑쉬 오름이 아스라이 보인다.
ⓒ 김강임
 
동쪽으로 높은 오름과 다랑쉬 오름이 아스라이 보인다. 제주 오름의 프리미엄은 정상에서 보는 주변의 풍경들이다.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듯, 주변의 오름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특별함이 어디 있으랴.

 
▲ 오름 서쪽 기슭에는 가을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 김강임
 
자연의 이치를 거역해도 오름은 오름일 뿐

억새 숲에 숨어있던 빨간 열매가 얼굴을 내민다. 소나무 숲에 홀로 핀 산수국과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 굼부리 안에 가득하다.

 
▲ 소나무 숲에 숨어 있는 산수국.
ⓒ 김강임
 
거슨샘, 즉 오름 '서쪽 기슭에서 솟아난다는 물줄기'를 찾아보았다. 억새 숲과 소나무 숲, 무성한 자연림에서 물줄기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는 현장이 궁금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 소나무가 숲을 이룬 오름의 서쪽 기슭.
ⓒ 김강임
 
오름 기슭에 솟아나는 물이 바다로 흘러가지 않고 한라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현상. 하지만 자연의 이치를 아무리 거역한다고 해도 거슨새미 오름은 그저 오름일 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말한 성철 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물줄기가 역류하는 원인과 이치가 무엇이든 그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그 특별함을 찾기 위한 '오르미'의 마음.

거슨새미 오름엔 제주의 다른 오름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별함은 없었다. 다만 오름의 서쪽 기슭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특별할 뿐.

 
  거슨새미 오름  
 
 
 
▲ 말굽형 분화구가 한라산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슨새미 오름.

거슨새미 오름은 표고 380m, 비고 125m, 둘레 3500m다. 거슨새미 오름은 '거슨(거슬러가다의 제주어)+ 샘 + 이'로 새미오름, 샘오름, 천악, 역수산으로도 불린다.

거슨새미 오름은 말굽형 분화구로 정상에는 억새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분화구 안에는 자연림이 무성하다. 분화구를 따라 돌아볼 수 있으나, 등산로가 잘 정비된 것은 아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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