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 남편 이태권 전농 제주도연맹 의장의 '달라진 일상'

길눈이 어두운 탓에 오늘도 여지없이 헤매다 길을 다시 물어볼 요량으로 주민 한 분께 말을 걸었다.

아차! 그런데 그 분이 하필 오늘 만나기로 한 이태권씨(43·전농 제주도연맹 의장).

사진으로 몇 번 접한 적 있는 얼굴이었는데 길을 찾느라 긴장한 탓도 있고 모자를 눌러 쓴 모습에 몰라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이 뜨거운 날씨 탓만은 아닌 듯 했다.

"그래 어디까지 갔다 왔냐"며 넉넉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긴장의 끈을 조금 놓았다.

근황을 묻는 기자의 말에 "주위에서 '팔자에 없는 홀아비 신세'라고 놀림 반, 걱정 반의 말들을 많이 듣고 지낸다"고 최근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이태권씨를 '팔자에 없는 홀아비(?)'로 만든 이는 바로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7번으로 출마해 당당히 당선된 현애자 의원.

부인 국회의원 만들기, 그 과정과 그 후의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 현 의원 당선 후 가장 큰 생활의 변화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이태권 :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일단 강토 엄마(현애자 의원)가 집에 없다는 거겠죠. 당선 전에도 집에만 있던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은 불가피하게 서울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으니 가장 큰 변화라면 그 정도.

- 아내의 빈자리로 인해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이 : 불편한 점이 왜 없겠어요.(웃음) 하지만 저보다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영향을 미칠까 그것이 조금 염려스럽습니다. 다행히 할머니(이 의장 어머니)가 옆에 계셔서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요.

- 처음 현 의원의 국회의원 출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이 : 다른 지방의 여성농민회에서도 추천 후보들이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남편의 동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나 봐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제주에서도 집사람이 추천을 받게 됐는데 처음에는 '설마 당선될까…'하는 마음에 '한번 해 보라'는 식으로 동의를 하게 됐지요. 아, 그런데 덜컥 당선이 됐지 뭡니까.(웃음) 처음에는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아이들 문제도 그렇고 이것저것 걱정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는데 당선됐는데 어쩝니까. 그냥 맘 편히 하고 싶은 일 한번 해 보라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죠. 그러고 나니까 제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어요.

- 농사, 가사, 육아를 혼자 감당하셔야 하는 상황인데 어떠세요?
이 : 농사야 집사람 있을 때도 일이 분담되어 있어서 지금도 별 어려움은 없어요. 집사람이 하던 일은 농번기에 도와줄 분을 구했고요. 아이들 건사하고 살림하는 것은 어머니가 계셔서 저는 한 시름 놓았죠. 솔직한 얘기로 어머니가 안 계셨으면 집사람 국회의원 출마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었을지 장담 못해요.(웃음) 여하튼 노령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고생이시죠.

▲ 가사와 육아 등에 도움을 주고 있는 현애자 의원의 또 하나의 내조자 시어머니.
- 며느리의 부재로 인해 어머님이 힘들어하시지는 않는지.
이 : 집사람은 국회의원 당선 전에도 집에 있는 시간 보다 밭에서 일하고 여성농민회 활동 하는 등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집안 일은 거의 어머니가 봐 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러시면서도 어머니는 집사람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신 적 없어요. 집사람이 밖에서 일 할 수 있게 말없이 도와주시는 가장 큰 내조자이자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죠.

- 부인 국회의원 만들기에서 힘들었던 점은.
이 : 무엇보다 선거운동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비합리적이고 제약이 많은 선거법 덕분으로 동네에서도 집사람이 국회의원에 출마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으니까요.

- 현 의원의 당선 후 주위 분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이 : 어제까지 옆밭에서 고추 따던 아줌마가 국회의원이 됐다니까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들이 많죠. 그리고 '부인 국회의원 될 때 뭐했냐'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면 전 이렇게 말하죠. '4년 후는 제 차롑니다! 그 때는 제가 복수(?) 해야죠. 허허'

▲ '우리가 아마 마지막 농민 세대가 될 것 같다'고 말하는 이 의장.
- 그럼, 이 의장님도 정치에 뜻이 있으신 건지.
이 : 이번 17대 국회 개원 때 참관하러 갔었습니다. 투쟁하러 찾아가던 국회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느끼게 했었는데 많이 자유스러워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겉모습에서는. 국회의원들의 복장도 자유스러워졌고 출입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의원들의 권위의식은 변한 것이 없더라고요. 단적인 예로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만원이고 일반인 사용 엘리베이터는 텅텅 비어도 절대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 서고 기다리더라고요.(쓴웃음) 지금 당장 내가 정치에 입문하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시민·사회단체로서 사회를 바꿀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려고 생각합니다. 이번 안동우 의원의 도의회 진출도 그렇고 농민들이 의견 수렴 창구가 더 많아져야겠지만 현재 개설된 창구를 십분 활용할 생각입니다. 이제는 우리(농민)가 정치를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 현 의원과는 주로 어떤 대화를 하는지.
이 :
아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지만 우리 부부는 예나 지금이나 투쟁이나 정책적인 얘기를 많이 하게 되요. 예전에는 술도 같이 하면서 목소리도 높여가면서 2~3시간 논쟁하는 것은 예사였죠. 요즘은 정책적인 것에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보좌관들이 알아서 잘 하니까요. 막내가 어리다 보니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죠.

- 현 의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
뭐, 특별히 강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데…. 그냥 농민들이 전국적으로 강력한 조직을 결성해 정치하는 농민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정도. 조직적으로 뒷받침이 잘 되면 실수를 그 만큼 줄일 수 있으니까 조직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열심히 일하리라 믿습니다.

▲ 국회의원 당선 전 밭일을 하고 현애자 의원. 지금은 남편인 이태권 의장이 도맡아 하고 있다.ⓒ자료사진
청년은 많은데 마땅히 할 일은 없는 80년대의 농촌 현실에서 군 전역 후 각종 농업 관련 기관의 비리 등을 지켜보면서 농사와 농민운동의 뜻을 굳혔다는 이태권 의장. 1990년에 같은 뜻을 갖고 농촌봉사활동에 나온 현애자 의원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는 지을수록 부채만 늘어가지만 앞으로도 농사를 계속 할 거라며 10년 후 정부가 농민들에게 사정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이 의장.

그의 믿음처럼 농민들이 부채에 허덕이지 않으면서 생산물에 대한 제 가치를 인정받는, 낚시를 좋아한다는 그가 마음 편히 낚시도 하면서 농사지을 수 있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한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