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미군사고문단 기밀문서 발굴…단독 보도

한국전쟁 초기 부산과 대구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제주4.3 관련 수형인을 포함한 수감자들 수 천명이 정부의 조직적인 계획 하에 집단학살 당했다는 문서가 공개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을 통제하고 있던 미군은 '기관총으로 모두 사살해도 좋다'고 허락한 것으로 확인돼 제주4.3 행불인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책임 문제가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정부의 지시에 의해 재소자를 학살했다고 보도한 부산일보.
특히 지금까지 한국전쟁 직후 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 학살의 책임이 어느 선까지 있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없는 상황에서 부산일보가 미군사 고문단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함으로써 주목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부산일보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1950년 미 군사고문단 기밀문서와 미 대사관 상황보고서, 미군 CIC 활동보고서 등 관련 기록 상당수를 찾아냄에 따라 확인됐다고 6일자 1면 기사를 통해 보도했다.

부산일보가 발굴해 낸 미 군사고문단 롤링스 에머리치(Rollings S. Emmerich) 중령이 작성한 '1950년 한국전쟁 초기의 역사'란 공식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1일 부산과 대구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좌익 혐의자 8000여명을 집단 처형키로 했으며, 이 작전의 현장 책임자는 이승만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국군 3사단 23연대장 김종원으로, 그는 하루 1500명씩을 처형할 작전 계획을 세웠다.

당시 부산형무소에는 3500명,대구형무소에는 4500명이 각각 수감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감자들은 전쟁 전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해 수감된 좌익혐의자가 대부분이었으나, 전쟁 발발 직후 집단적으로 예비검속된 국민보도연맹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부산일보는 한국 정부의 이 같은 학살 계획은 미 군사고문단의 개입으로 지연됐으나 미 군사고문단은 김종원과의 협상과정에서 '전황이 악화되면 형무소 문을 열고 기관총으로 모두 사살해도 좋다'는 조건부 허락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 제16연대 부연대장인 김종원이 진주지구서 토벌대원들과 함께 촉석루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한 사진. 좌측 첫줄 철모쓴 이가 김종원.
실제 한국 정부의 학살계획은 이후 실행에 옮겨져 수감자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미군과 김종원이 협상을 벌이고 있던 순간에도 대전형무소에서는 미군 상당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1800여명(미육군 G-2 보고서 기준)이 집단 총살됐다고 부산일보는 보도했다. 

이와 관련, 미군 제25 CIC 분견대는 1950년 11월2일자 활동보고서를 통해 '50년 7월1일 한국 정부의 지시로 경찰이 대전과 그 인접지역에서 민간인을 집단 살해했다. 과거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였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부산일보는 '한국 정부의 지시로 7월1일' 대전 형무소 수감자가 살해됐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발견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부산일보는 보도연맹원 학살과 관련, 미 24사단 CIC 팀 활동보고서 등에 드러난 희생자는 제주 700명, 경북 김천 1200명, 경북 의성 180명, 인천 400명 등인 것으로 집계됐으며, 특히 제주의 경우 당시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2만7000명이 보도연맹에 가입돼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확인됐다고 전하면서 제주에서 예비검속된 700명은 그중 간부였던 것으로 보고됐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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