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렁쇠 이야기]

제주 애월읍 납읍리. 어머니의 고향마을이다.
소녀시절 어머니가 걸어다녔을 골목길과 거리를 더듬었다.
마을은 조용했다.

19년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는 어른들은 보이지 않았다.
외가댁에 놀러가 동네를 쏘다닐 때 반겨주던 마을사람들.
그들도 없다. 살아계시다면 다 어디로 간 걸까?
어머니의 고향마을도 내 고향 어음리처럼 늙어가고 있었다.

그 옛날 어른들은 무덤으로 떠났고, 우리는 도시로 떠났다.
남아있는 것은 아스라한 추억과 늘어나는 빈집들일 뿐.
문명은 이것마저 달가와하지 않는 것 같다.




문명의 길을 이탈해 과거의 시간 속을 걷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황색중앙선을 따라 꽤 오래 걸었고,
나는 할머니 뒤에서 오른쪽 차선을 따라 졸졸졸 차를 몰았다.
문명과 거꾸로 가는 열차를 탄 기분...나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풋풋한 보리밭.
소리를 들었다면 초록의 함성이었을 것이다.
아, 향그러운 어머니의 대지에 입을 맞추고 싶다.

허둥대는 사이 2월은 가고, 들녘은 벌써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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