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개정 토론회] 하승수 교수 "다음 정권에서 해야"'대통령 4년연임제·원포인트가 논의중심돼선 안돼"

▲ 좋은헌법만들기 국민운동제주지역준비위에서 주최한 헌법개정 토론회가 10일 제주상공회의소에서 마련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일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며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일치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 시안을 발표해 개헌정국을 이끌려는 가운데 제주에서도 헌법개정에 대한 논의 자리가 처음 마련됐다.

좋은헌법 만들기 국민운동 제주지역준비위원회(위원장 김상근 목사) 주최로 10일 제주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헌법개정 논의를 위한 제주지역 토론회(헌법개정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주제발표로 나선 하승수(제주대 법학부·변호사) 교수는 "개헌논의는 필요하지만 다음 정권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개헌발의를 대통령이 추진함으로써 오히려 개헌논의를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며 노 대통령의 개헌발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운영위원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87년 헌법의 한계와 향후 헌법논의의 방향에 대해 논의를 주도해 왔던 하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개헌은 돼야 하겠지만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제한한 것처럼 4년 연임제와 대통령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하는 ‘원포인트’개헌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일방적 개헌논의 발표로 지금까지 논의 결과 왜곡될 우려 있어

하 교수는 지난 몇 년 동안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진영에서 있어왔던 개헌 논의의 움직임과 논의과정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소개하고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발표는 내용상, 과정상, 시기상으로 매우 부적절하며, 대통령의 발표로 지금까지 진행돼 온 개헌관련 논의가 왜곡될 우려도 존재한다”며 대통령의 일방적 논의촉발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 주제발표를 한 하승수 교수
하 교수는 ‘대통령 단임제는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정치를 훼손하고, 국가적 전략과제 추진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과 관련 “대통령 단임제를 실시한 지난 20년 동안 장기집권에 따른 독재화 가능성을 차단해 왔고, 대통령 재선을 위해 선거에 나설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관권선거 소지를 축소해 왔다”면서 “비록 단임제 하에서 대통령 국정통솔력 내지 책임감이 약화되고, 레임덕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제도의 탓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대통령 연임제를 도입해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움직일 경우에,대선자금과 관련한 우려, 권력 오남용의 가능성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며, 또한 재선된 대통령도 임기말에는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기말 갑작스런 개헌발의는 또 다른 정치적 쟁점을 형성해 보려는 것

그는 또 대통령-국회의원 동시선거에 대해서도 “동시선거 주장론자들은 대통령-국회 지배정당이 다른 분할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동시선거를 할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일당독재화의 우려, 즉 행정부와 입법부를 하나의 정치세력이 장악하고, 더구나 그 정치세력(정당)이 대통령과 입법부의 2/3를 동시에 장악할 경우 헌법개정도 자의적으로 할 수 있다는 우려는 매우 경계해야 한다”며 “이는 효율성이라는 명분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개헌논의 병문에 반론을 제기했다.

하 교수는 또 개헌의 현실성 문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헌법개정에 필요한 국회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며, 그런 상황을 무시하고라도 임기말에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개헌발의를 한다는 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개헌논의를 생산적인 논의로 만들 의사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개헌을 주제로 또다른 정치적 쟁점을 형성해 보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개헌제안 배경에 퀘스천마크를 달았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헌정사의 개헌은 집권자의 권력정당화를 위해 한 경우도 많았고, 개정절차의 불법성과 비민주성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고는 “앞으로 개헌을 한다면 국민과 시민사회, 정치권에서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치고 시대적 요구를 담아내는 미래지향적인 개헌이 돼야 한다”면서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실현가능성이 없는 개헌발의를 추진함으로써 그런 논의를 어렵게 만들었다”며 대통령이 오히려 합리적 개헌논의의 장애물임을 역설적으로 꼬집었다.

개헌에 소극적이던 대통령 입장변화 '진정성' 받아들이기 힘들어

또 개헌시기와 관련해서도 “개헌논의를 밟기에는 대통령 잔여임기 1년으로 턱없이 부족하고, 이미 대선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면서 ”또 그동안 개헌에 대해 소극적 입장을 가져왔던 노 대통령이 갑자기 개헌발의를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무리 ’진정성‘을 강조하더라도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고 강조했다.

하승수 교수는 이날 노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에 대한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현재의 헌법 현실은 어떤지,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바람직한 헌법개정의 방향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를 회피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는 아니”라면서 “논의의 범위나 내용, 일정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발의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얽매여서도 안되는 포괄적인 논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 교수는 개헌논의의 방향을 몇 가지로 제시했다.

먼저 노 대통령의 개헌발의는 국회를 통과하기 어렵고, 올해는 대선일정으로 제도정치권 내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할 상황이 아닌 만큼 차기정권과 국회로 넘길 것을 주문했다. 대선이나 총선에서 개헌 필요성이나 방향에 대한 입장이 나올 수는 있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개헌공약을 내 놓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개헌논의 필요하지만 차기정권-국회에서 맡아야

   
 
 
또 개헌논의의 초점에 대해서도 ‘5년 단임제’냐 ‘4년 연임제’냐가 논의의 중심이 돼서는 안된다고 했다.
21세기에 개헌을 한다면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적 요구들이 반영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본권, 민주주의, 시민참여, 지속가능사회 등의 관점에서 폭넓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논의 결과를 수렴하는 틀도 국회와 시민사회, 학계가 협력해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 교수는 앞으로의 개헌은 사회통합적이고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며 민주주의의 실질화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인권 등 기본권 확장,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의 개헌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개헌논의와 개헌(안) 작성과정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식이 돼서는 안되며, 다른 의견들을 충분히 듣고 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열린 논의가 돼야 하며, 정치적 사회적 통합을 고려한 논의가 돼야 한다”며 “상대를 누르는 방식의 개헌추진은 개헌에 필요한 국회 2/3 의석과 국민다수의 찬성을 얻는다 하더라도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국민합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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