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에 헤딩하는 '끝나지 않은 세월'의 김경률 감독

대중예술의 총화는 영화다. 영화처럼 대중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장르는 적다. 또 영화는 그 시대의 흐름을 가장 정화하게 표현한다.

냉전시대가 한창이던 1970년대. 헐리우드는 서부영화와 2차 세계대전 영화를 통해 '팍스 아메리카나'를 부르짖었다. 최근 개봉된 '화씨 9.11'은 反테러, 反부시 영화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화씨 9.11'을 통해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해방전쟁이 아닌 이라크 석유를 독차지하기 위해 침략전쟁임을 고발한다. 또 부시가 알 카에다, 오사마 빈 라덴과 커넥션이 있음을 폭로한다. 마이클 무어의 목표는 부시 대통령의 '낙선'이다. '화씨 9.11'은 그야말로 '부시 죽이기'영화이다.

그렇다면 제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의 김경률 감독(설문대영상)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김 감독은 이 같은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분노를 토해낸다.

"국방부는 아직도 4.3을 무장폭동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남로당이 일으킨 무장폭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천명의 제주도민을 집단 학살해 놓고도 그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4.3보고서가 확정되고 대통령이 사과를 했는데도 말입니다. 보고서를 만들어 내고 대통령이 사과했다고 해서 4.3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저들의 행태가 계속되는 한 4.3의 아픔은 계속 이어질 뿐입니다"


"'끝나지 않은 세월'은 지금의 4.3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4.3을 통해 맺혔던 개인적

▲ 축문을 잃는 김경률 감독의 모습을 4.3 유족들이 지켜보고 있다.
인 한은 풀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군이 우리 조상들을 빨갱이라고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학살했고, 또 지금도 그 같은 주장이 되풀이하는 한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은 물론 산자들도 결코 4.3의 아픔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김경률 감독은 지금까지 단편 영화를 네 번째 촬영했다. 이번이 그이 다섯번째 작품이다. 영화는 '돈 먹는 하마'다. 또 엄청나게 돈을 쏟아 부어도 관객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쫄딱 망한다.

"총 제작비는 1억5000만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확보된 돈은 그저 그렇습니다"

사비를 털고 주변에서 약간씩 도와주기는 하지만 푼돈에 불과하다. 또 1억5000만원이라는 돈도 1시간30분의 영화를 찍기에는 어림 없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셈이다.

"돈만 갖고 하지 않습니다. 출연진도 출연료를 받지 않습니다. 모든 경비를 절약하려고 합니다. 첫 영화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돈이야 있으면 좋겠습니다만…제주도에 예산지원을 신청해 놓기는 했는데…."

돈 이야기가 나오자 말끝이 흐려진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 설문대영상이 제주도에 4.3영화 제작을 위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한 예산은 5천만원. 아직 지원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이날 영화촬영 현장에는 제주도 담당공무원과 영상위원회 사무국장도 함께 했다.

오죽했으면 취재중인 기자들이 제주도 담당자에게 "예산을 지원해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로비를 했을까…

김경률 감독의 의지는 대단하다.

"우리의 어른들은 좌우대립으로 목숨을 잃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56년을 헤매고 있습니다. 저승길에 못 가 떠도는 영혼와 영신을 위해 독립영화란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4.3당시 제주도민들이 군·경의 탄압에 맞서 맨주먹으로 일어섰던 것처럼 김 감독은 오로지 해야 한다는 '사명'하나로 메가폰을 잡았다.

"4.3정신이 있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 돌아가신 영혼들을 위해서도 잘 돼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죠. 그러나 열심히 할 것입니다. 많이 도와 주십시오. 10개월 후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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