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행방불명인 진혼제’봉행…유족·시민 등 500여명 참석건입동 옛주정공장 터에서 희생자 3740신위 영면 기원

▲ 2일 제주시 건입동 옛 주정공장터에서 '제주4.3행방불명인 진혼제'가 제주4.3희생자유족회 주최로 봉행됐다. 유족,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진혼제에서 59년전 행방불명된 채 원통하게 숨져간 수많은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사진은 희생자유족회가 봉행한 초혼제 모습.

어의야 어야로다 어의야 어야로다 / 제비나비도 숨어버린 그 아득한 대낮에 / 밥상머리 앉아 숟가락 들다가 / 늦도록 자갈밭을 괭이로 갈다가 / 사이렌 소리에 동네 삼촌들도 모두 모였습니다
어의야 어야로다 어의야 어야로다 / 눈물이 말라 흐르질 않습니다 / 가슴이 막히고 말문이 막힙니다 / 동네 고샅길 넘어 삼촌들 함께 / 포승줄에 묶여 질질 끌려가던 날 / 동백무리가 뚝뚝 꽃잎을 흩날렸습니다
어의야 어야로다 어의야 어야로다 / 어느 곳에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 막막 저승이 대체 웬말입니까 / 저 아늑한 섬곶 끝자락에서 / 보였다 사라졌다 하던 무심한 당신들
어의야 어야로다 어의야 어야로다 / 망망대해 파도를 맨발로 넘을까요 / 비애 끓는 소소리바람 따라 나설까요 / 빈 꽃상여 메고 저 멧부리 따라 / 일가친척 영이별하고 산천벗님 영이별한 / 당신들은 오늘, 황천으로 인도합니다 / 어의야 어야로다 어의야 어야로다

시인 김관후의 4·3시(詩) ‘어의야 어야로다’가 낭송되자 칼칼한 바람보다 더 매운 슬픔이 유족들 가슴을 후벼 파고 든다. 여기저기서 목이 메고 연신 눈물을 훔쳐 낸다. 그러나 눈물도 말라버려 마른 울음만 컥컥댄다.

▲ 진혼제가 봉행되는 동안 유족들이 여기저기서 마른 눈물을 훔쳐내고 목까지 차오른 울음에 복이 받쳐 흐느꼈다.

지울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이 사무치게 다시 떠오르는 게다. 그때나 지금이나 ‘잔인한 4월’은 변함없나 보다. 4·3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이날 FTA 최종협상에서 감귤의 ‘계절관세’적용 소식으로 제주사람들은 또 한 번 울어야 했다. 잔인한 4월...

‘제8회 제주4·3 행방불명인 진혼제’가 4·3유족회 주최로 2일 오후 3시30분부터 제주시 건입동 옛 주정공장 터에서 봉행됐다.

지금부터 59년전 비극적인 4·3사건으로 인해 영문도 모른 채 주정공장에 수용돼 고통 받다 전국 형무소로, 정뜨르 비행장으로, 바당으로 끌려가 희생당한 3740신위 영령들에 대한 진혼제다.

이날 유족들은 마포형무소 387신위, 인천형무소 242신위, 대전형무소 300신위, 대구형무소 499신위, 목포형무소 466신위, 광부·부산·김천·마산·부천형무소 등 533신위, 파악되지 않은 1313신위 등 4·3 행방불명인 영령들이 노여움을 풀고 유족들의 정성을 받아 영면하길 간절히 기원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김두연 회장을 비롯해 김태환 지사, 양대성 도의장, 고충석 제주대총장 등 각급기관장들과 유족, 시민 등 500여명이 함께 자리한 이날 행사는 초혼제·진혼제·추도사·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김두연 회장은 진혼사를 통해 “영문도 모른채 이곳 주정공장 수용소에 끌려와 처참히 숨져간 님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유족들의 정성을 모아 제단을 마련했다”면서 “행불 영령들이시여! 왜 모진 탄압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까?”라고 허공에 물었다.

김 회장은 이어 “영령들은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아니면 젊다는 이유로 사형, 무기징역, 징역살이를 해야 했다. 시신도 찾지 못한 채 반세기동안 영령들은 통한의 세월을 보냈다”면서 “그러나 4·3특별법 제정, 진상보고서 발간, 정부와 노 대통령이 위령제를 찾아 영령들과 유족들에게 직접 공식사과하기에 이르렀으니 님들이 영면하시길 축원드린다”고 했다.

이어 김태환 지사는 “4·3행불인 희생자들 생사의 기로가 갈린 곳이, 분노와 원통함이 맺혀있는 곳이 바로 이 주정공장 터”라면서 “희생자들이 전국형무소로 끌려간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고, 형식적 재판에 의해 희생된 것이 억울한 것이 아니며, 온전한 몸으로 어머님의 땅 이곳에 발을 딛고 돌아오지 못한 것이 원통하고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면서 추도했다.

▲ 헌화 분향한 후 묵념하는 김태환 도지사(오른쪽) 양대성 도의장(가운데) 김두연 희생자유족회장

김 지사는 또 “이제 제주4·3은 아픈 역사를 뒤로 하고 새 역사의 장을 맞고 있다. 반세기 동안 풀리지 않았던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가 회복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화해와 상생의 길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 이상 비극과 슬픔이 얼룩지지 않도록 제주를 평화와 번영의 섬으로 바꿔가자”고 말했다.

양대성 도의장도 추도사를 통해 “새봄이 찾아 왔지만 4·3의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영령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면서 “영령들이 고향땅에서 마지막 밟으셨던 이곳 주정공장터에서 진혼제를 올리며 머리숙여 명복을 빈다”고 했다.

양 의장은 “이제 4·3의 아픔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킨 제주도민의 역량으로 비극의 역사를 희망의 역사로 만들어 가고 있다”며 “100만 제주도민의 이름으로 희생자들의 영면을 기원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과 시민들은 옷깃을 여미어 저마다 하얀 국화송이를 살포시 제단에 바치고 향을 사루며 머리 숙였다.

때로는 목울음으로, 때로는 통곡소리로, 때로는 굳은 입술로, 모두 이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4·3영령들을 향해 유족과 시민들은 진심을 다해 영령들을 위로했다.

포승줄에 묶여 질질 끌려가던 날, 동백무리가 뚝뚝 꽃잎을 흩날리던 날, 59년전 그날의 희생과 원통함은 흐드러지게 핀 4월의 유채꽃도 잠시 움츠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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