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의 영화읽기]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흰색의 문을 통해 들어갔다가 붉은 색의 문을 통해 나온 것 같다.

세계적인 현대 무용가 피나 바우쉬가 직접 공연한 '카페 뮐러'와 '마주르카 포고'는 이 영화를 열고 닫는 문이다. 흰색의 옷을 입은 무용수의 슬픔이 사랑에 관한 이 영화를 시작하는 문이라면 마주르카 포고의 생동감 있는 춤 또한 사랑의 붉은 피를 상징하며 고요히 영화를 닫는다. 흰색의 슬픔과 붉은 색의 격정. 슬픈 고요와 따뜻한 말 걸기를 아우르는 이 두 개의 문은 삶에 지쳐 있는 우리의 영혼이 이 영화에 등을 기대며 마음을 열 때 문을 열어 우리에게 손을 건넨다.

사랑에 관한 몸짓과 표정이 음악과 색과 또 다른 이야기를 통해 변주되는 아름다운 이 영화는 영화의 공간을 여자의 음부처럼 은밀하고 포근하게 감싸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달래고 싶어한다.
7분 분량의 흑백 무성 영화 「애인이 줄었어요(Shrinking Lover)」는 사랑하는 사람의 절실함, 소통을 원하는 사랑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줄어든 남자가 마침내 여자의 음부 속으로 들어갈 때의 여자의 표정은 오르가즘의 기쁨이다. 사랑을 창조하고 싶어하는 베니그노의 욕망을 상징하는 이 장면은 현실을 뛰어넘는 영화적 상상력, 그 힘이 주는 아름다움이었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뮤지션 카에타노 벨로소가 들려주는 '쿠쿠루쿠루 팔로마(Cucurrucucu Paloma)'는 노래한다.

그는 수많은 긴긴 밤을 술로 지새었다 하네
밤마다 잠 못 이루고 눈물만 흘렸다고 하네

그의 눈물에 담아낸 아픔은 하늘을 울렸고
마지막 숨을 쉬면서도 그는 그녀만을 불렀네

노래도 불러보았고 웃음도 지어봤지만
뜨거운 그의 열정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네

어느 날 슬픈 표정의 비둘기 한 마리 날아와
쓸쓸한 그의 빈집을 찾아와 노래했다네

그 비둘기는 바로 그의 애달픈 영혼
비련의 여인을 기다린 그 아픈 영혼이라네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 걷는 듯한 이 노래는 감미로운 음성으로 이 영화를 감싸며, 사랑을 하고 있거나 잃었거나 늘 외로운 우리들을 감싼다. 마르코의 등에 기대는 리디아처럼 사랑에 기대어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지만.

   
이 작품은 두 남자의 우정, 인간의 고독과 그것을 이겨나가는 모습 등을 그리면서 두 커플의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보여준다. 「그녀에게」는 말에 의한 소통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기쁨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고독, 질병, 죽음과 광기 등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우리가 가진 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영화이다. 말은 내가 너에게 보내는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고요한 손놀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은 나의 어떤 노력에 대해서 상대가 마주하여 주는 보답이 아니다. 마치 들어가는 문과 나가는 문이 다르듯이 내 사랑은 내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하고 너의 쓸쓸한 등에 기대어도 너는 다른 문으로 나가 버릴 것이다.
마르코에게 리디아가 그랬고 베니그노에게 알리샤가 그랬듯 사랑은 결국 의도하지 않는 슬픔의 문으로 들어가 그 아픈 무게를 견뎌야 하는 우리의 삶이다. 슬픔은 외로움을 잉태하고 기다림을 생산하며 결국 그것으로 이 생은 버겁다. 눈물짓게 하는 것은 사랑이기보다는 소통되지 못할 때의 막막함이며, 베니그노를 가두어 놓은 감옥처럼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때의 삶의 무게이며, 원하는 곳으로 다가갈 수 없는 나의 미약함에 있다.
늘 눈을 감아 버리거나 딴 곳을 바라보기만 하는 너는 내 생에 무엇이었나?

그러나 영화는 나를 포옹하며 말을 거는 듯하다. 이 삶의 외로운 시간 동안에도 우리는 비둘기의 날개처럼 파닥이는 자유와 생명을 잠깐이나마 만날 수 있다고.

   
말없이 눈감은 애인을 돌보는 베니그노에게 찾아왔던 처음의 사랑이 그랬듯, 친구와 애인을 잃어버린 마르코에게도 새로운 생명이 다가온다.

기나긴 침묵의 시간을 깨고 나온 알리샤, 순진한 미소를 지닌 알리샤는 그를 마주보며 반짝 웃고 무대 위에선 실룩이는 근육의 힘으로 춤이 만발하다. 이 생은 슬픔만이 아니라는 듯 경쾌하고 발랄한 붉은 춤. 그 유혹은 리디아와 마르코를 만나게 하는 뱀처럼 두려운 것이지만 슬픈 사랑은 원한다. 이 생을 견디는 것 또한 사랑이니 내 마음에서 춤을 추어라. 그것이 슬픔 가득한 흰옷의 무희가 되어도 나는 그녀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사랑의 문을 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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