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정몽헌 회장 사망 등 우여곡절 끝에 남북민족통일평화체육축전 개최 일정이 마침내 확정됐다. 남과 북은 금강산에서 실무회담을 갖고 오는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제주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남북평화축전은 남과 북 서로 합의에 의해 최초로 개최되는 민족끼리의 체육축전이다. 그동안 북한이 국제대회에서 참가국의 일원으로 우리나라에 온 적은 있었으나 우리민족 공동행사에 대표단을 구성하여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제주도의 입장에서는 ‘평화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북한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민족끼리 어우러져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얘기할 수 있도록 정부는 국민역량을 총결집시키고 대(對) 북한과의 관계에 금이 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제주도는 남북평화축전 개최 장소이기에 보다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북한선수단과 응원단 그리고 공연단들이 마음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숙박·음식 등에서부터 체육축전과 관련한 시설준비까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가지 문제로 야기된 도민갈등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관주도의 행사에서 벗어나 도민의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여 민과 민이, 민과 관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만반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제주에서의 남북평화축전은 걱정이다.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발생한 보수단체의 반북시위 때문이다.

지난 24일 30여개 단체로 구성된 북핵저지시민연대는 ‘언론의 편향된 북한 보도’에 대한 내용으로 유니버시아드 대회 미디어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김정일을 죽어야 북한동포가 산다’, ‘김정일 타도하여 북한주민 구출하자’등의 플랭카드와 피켓을 들고서 시위를 했다. 이때 그 앞을 지나가던 북한기자가 플랭카드를 보고 격분하면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북한선수단은 "재발 방지가 안되면 선수단 철수도 고려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고, 보수단체는 "북한기자를 국내법에 의해 사법처리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단 이번 사태는 북한측이 당초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하면서 진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대구충돌 사태의 1차적 책임은 보수단체에 있다. 생각해보자. 북한은 인공기 문제와 대통령의 사과 등 순탄치 않은 상황에서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그런데 난데없이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유니버시아드대회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지도자를 죽여야 한다는 내용의 플랭카드를 보고 누가 가만 있겠는가?
입장을 바꾸어 보자. 세계 올림픽이 개최되는 곳에 가서 그것도 대회장 한복판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험담을 한다면 기분 좋겠는가? 한 단계 넘어서 국가지도자를 죽여야 한다고 하면 격분 안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번 보수단체 행동은 손님을 초대해 놓고 모욕을 주는 행위다. 이것은 정치와 이념을 떠난 예의(禮意)의 문제인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번 대구충돌사태에 대해 포털사이트인 미디어다음이 네티즌 4291명을 상대로 온라인을 통해 설문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0%가 ‘반북시위가 대회취지를 훼손하는 부적절한 행위’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동향과 분석’이라는 격주간지에서, 지난 8·15 행사 때 보수단체들이 인공기를 불태우며 반핵·반김정일 시위를 벌인데 대해 71.6%가 ‘공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특히 보수성향이 비교적 강한 대구경북지역에서‘인공기 소각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4.2%에 달했다고 한다.(전국 성인남녀 700명, 전화설문조사)

인터넷 한겨레가 실시한 온라인 설문결과도 마찬가지다.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보수단체 시위의) 때와 장소가 부적절하다’고 답한 사람이 41.7%(932명)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보수단체가 초청손님들에게 결례를 했다’고 답한 사람이 24.6%(549명)로 보수단체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응답이 전체의 66.3%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나듯이 보수단체의 반북시위는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물론 보수단체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가타부타 논쟁하고 싶지도 않다.그러나 국제대회를 엉망으로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할 만큼 우리사회가 그렇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러한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구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보수 인터넷매체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는 29일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어 북한기자들의 시민 폭행 규탄과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촉구하며 다시 한번 인공기를 태울 것이라고 한다.

세계 대학생들의 축제가 정치·이념 논쟁으로 난장판이 될 상황이다. 난감하다. 국제대회도 이 난리인데 우리끼리 제주에서 개최하는 남북평화축전이야 오죽 하겠는가?

보수단체들에게 진언(嗔言)한다.
참된 보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이성을 되찾기 바란다. 남과 북이 한데 어우러지는 평화와 공존의 도도한 흐름에 동참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만약 제주에서 열리는 남북평화축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긴다면, 시대의 질곡을 온몸으로 맞서 싸우며 평화를 지켜온 제주도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진실의 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