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28)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전혜린 역, 범우사, 1973.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전혜린 역, 범우사, 1973. 제공=고명철. ⓒ제주의소리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전혜린 역, 범우사, 1973. 제공=고명철. ⓒ제주의소리

1.
압록강도 봄을 반갑게 맞이하는 양 잔물결이 수줍은 듯이 일어나고 강변의 미풍은 뺨을 스친다. 겨우내 온몸을 후려치곤 하던 맵짠 강변 바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 기세를 한껏 누그러뜨린다. 바다를 주로 대하면서 성장해온 섬사람인 내게 대륙, 아니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접경지대의 봄은 이렇게 찾아온다. 

중국의 단동을 여행객으로서 몇 차례 짧게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에 압록강이 그리 낯설지 않지만 이번에는 무척 새롭다. 비록 일 년이란 기간도 짧지만, 어쨌든지 여행객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단동 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압록강은 예전의 모습과 다르다. 가뜩이나 요즘처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정세를 상기할 때마다 압록강이 지니는 정치경제 및 사회문화적 중요성은 한층 더 주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예로부터 동아시아의 크고 작은 일을 도모할 때 압록강은 교류의 주요 관문 중 하나로서, 최근에는 북미정상 회담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이 압록강 철교를 건너 중국 대륙 남쪽을 거쳐 베트남의 하노이로 향한 바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숱한 항일독립지사와 항일혁명가들이 압록강을 목숨을 걸고 드나들었으며, 한국전쟁 시기에는 압록강을 경계로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미국, 중국, 옛 소련) 사이에 전면적 충돌도 있었다.

2.
압록강과 관련된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읽고 싶은 작품이 있는데, 이미륵(1899~1950, 본명 이의경)의 장편소설 <압록강은 흐른다>가 그것이다.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 이미륵은 그리 친숙하지 않은 작가일 터이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에서 문단 생활을 펼친 게 아니라 독일 문단에서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한데다가 한국문학계에 미처 알려지기 전 생애를 독일에서 마쳤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미륵의 존재와 그를 한국문학계가 주목하게 된 계기는 전혜린이 <압록강은 흐른다>를 한국어로 처음 번역 소개하면서부터이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한국에서의 소년시대’라는 부제가 단적으로 말해주듯, 이미륵이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까지 자신의 삶을 써내려간 일종의 자전적 성격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그의 출생 시기와 성장 시기, 그리고 독일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기, 즉 1899년에서 192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공간 속에서 그가 경험한 근대 전환기의 풍경들이다. 물론, <압록강은 흐른다> 외에도 이 시기를 다룬 빼어난 한국문학 작품들이 있다. 가령, 한국문학사에서 가족사연대기 소설로 불리우는 걸출한 작품들(김남천의 <대하>, 한설야의 <탑>, 이기영의 <봄> 등)에서 이 시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작품들이 그 공간이 한반도 안쪽으로 제한돼 있다면, <압록강은 흐른다>의 경우 조선에서부터 시작하여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그리고 인도양을 건너 홍해를 지나 유럽에 이르는 공간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어 이 시기에 극동의 조선인이 말 그대로 전 지구화를 온몸으로 겪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이 소설의 공간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만 눈에 띄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륵의 분신인 1인칭 화자 ‘나’의 고향 해주에서 겪는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경성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마주하는 온갖 근대적 지식, 특히 서양의 의학과 해부학을 접했을 때의 문명적 충격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전면적으로 충돌하는 당시 조선의 사회문화적 풍경을 가감 없이 드러내준다. 서구의 근대의학을 배우는 ‘나’에게 신체 곳곳을 해부하여 그것들이 지닌 과학적 지식을 익히는 것은 구태의연한 조선의 전근대로부터 벗어나는 성장통이었다. 그러던 ‘나’는 3.1혁명에 적극 동참하게 된다. 의학도로서 정치적 사안에 참여를 하는 것은 대부분 꺼려왔으나, ‘나’를 비롯한 동료 의학도들은 조선이 일본에 결코 지배당해서는 안 되는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민족적 자긍심에 대한 토론 이후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만세 흐름에 적극 동참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일경에 수배를 당하고 어머니의 권고로 압록강을 건너게 된다. 이 대목에서 ‘나’의 어머니는 ‘나’의 압록강 월경이 도피가 아니라 더 크고 넓은 세계에 나가 자식의 웅대한 뜻을 펼칠 것을 기대한다. 

이제 압록강은 ‘나’에게 엄중한 국경선으로 다가온다. 일제의 경비가 삼엄한 압록강을 건넌 후 언제 또 다시 압록강을 건너 어머니가 있는 조국으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다. 민족의 완전한 독립국가를 이룬 후 해방의 열정으로 압록강을 건너 어머니를 재회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역사는 냉혹하다. 민족의 주체적 역량으로 독립해방을 쟁취하지 못한 채 작중인물 ‘나’, 즉 작가 이미륵은 결국 압록강을 다시 건너지 못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방에서 맺어야 했다. 기실 돌이켜보면, 이미륵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삶들이 20세기 전반기에 지구촌 곳곳에 흩뿌려져 있음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도할 수 있다.

3.
개인적으로는,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신경을 곧추세우고 읽은 대목 중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에서, 이후 ‘나’에게 펼쳐질 디아스포라의 삶을 내다보는 듯한 ‘나’의 통찰에 멈칫하였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 고국을 이 무한한 만주 벌판과 분리시키고 있는 국경의 강은 막을 길이 없이 흐르고 흘렀다. 이 편은 모든 것이 크고 음침하고 진정되었으나 저편은 모든 것이 잘고 쾌활하였다. 빛나는 초가집들이 언덕에 산재해 있었다. 많은 굴뚝에서는 벌써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산맥과 산맥이 달아 물결치고 있었다. 산은 햇빛에 빛났다. 또 다시 황혼의 아름다운 빛에 물들었다가 서서히 푸른 노을에 잠겨갔다. 나는 먼 남쪽의 골짜기며 시내가 있는 수양산을 눈앞에 보는 듯 했다. 소년시대 언제나 저녁 음악을 들었던 이층탑 건물도 눈앞에 선했다. 나는 한 번 더 저 남쪽에서 들려오는 황홀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착각했다.
- <압록강은 흐른다> 170쪽 가운데

압록강을 건넌 ‘나’에게 압록강 이 편과 저 편은 명확히 분리돼 있다. 이 편은 중국 쪽이고 저 편은 조선쪽이다. 광활한 만주 벌판이 펼쳐진 이 편은 ‘나’에게 앞으로 도래할 온갖 모험이 있는 “음울한 하늘”(170쪽)이 드리운 곳이라면, 저 편은 비록 일제의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지만, 조선어와 조선의 삶이 있는 곳이고 유소년 시절 고향에서 음악을 듣곤하던 건물이 있는 정겨운 것들이 있는 곳이다. 이제 이 정겨운 것들과 이별해야 하는 ‘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여기에다가 난생 처음으로 마주한 광대무변한 만주벌판은 더욱 ‘나’의 심정을 복잡하게 만들었으리라.

이렇게 중국 대륙을 거쳐 유럽 유학을 가는 배 위에서 ‘나’는 중국어와 인도어가 뒤섞인 혼돈 속에서 본격적으로 세계를 만난다. 배 위의 젊은이들은 각자 청운을 품고 당시 근대 세계의 중심인 유럽으로 향했고, ‘나’는 프랑스를 경유하여 독일로 최종 유학지로 정해 독일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여기서 끝나며, 마지막 문장은 ‘나’의 누나로부터 어머니의 죽음 소식을 듣는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 문장을 쓴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은 곧 자신의 소년시대의 죽음이고, 이것은 조국으로 귀국하지 않은 채 타향에서 이후 삶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자기 암시하는 것일지 모른다. 

4.
사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독일에서 출간되었는데, 그 당시 2차 대전 후 독일 문단에서는 이 작품이 극찬을 받는다. 전문가의 의견을 빌리자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겪은 독일 사람들은 작중인물 ‘나’를 통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엇보다 유소년 시절의 비정치적 아름다운 기억을 기반으로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북돋는다는 점에서 독일 사람들의 전후 내면의 상처를 이 작품이 치유해준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주된 소재와 내용이 지극히 민족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자연스레 품고 있는 것은 소년시대로 성장하기 전까지 과정과 특히 ‘압록강’으로 상징되는 어떤 경계 넘기의 문학적 진실이 전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모르긴 모르되, 아마도 작가 이미륵은 조선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마침내 가슴 벅찬 해방의 기쁨을 유럽에서 만끽하면서 <압록강은 흐른다>를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 팽배해 있는 전후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시아인과 유럽인 사이에서, 그리고 한국인과 독일인 사이에서…….   (끝)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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