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작가회의, 무장대-토벌대 전투 벌어진 노루오름 일대 문학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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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제주작가회의는 제주시 애월읍 노루오름 인근을 찾아 4.3 문학 기행을 가졌다. ⓒ제주의소리

그 어느 날, 총성이 울리고 선혈이 낭자하던 한라산 계곡 언저리. 죽고 죽이는 갈등 속에 쓰러져간 모든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주 작가들이 힘을 모았다.

제주작가회의(회장 이종형)는 13일 ‘도민과 함께하는 4.3문학 기행’을 개최했다. 15년 가까이 매해 4.3유적지를 찾아간 제주작가회의는 올해 김석범의 4.3대하소설 <화산도>에 등장하는 제주시 애월읍 ‘노루오름 전투’ 현장을 선택했다.

정확한 기록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증언으로 전해지는 노루오름 전투는 1949년 3월 8일 경에 벌어졌다. 증언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4.3을 말한다 6권》에 따르면 당시 군은 산길을 잘 아는 주민들을 앞세워 대대적인 무장대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계곡에 매복해 있던 무장대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는다. 애월읍 상가리 주민 강태수(39) 씨는 당시 민보단원으로 군인의 길잡이 역할을 하다가 희생됐다.

<화산도> 12권에는 노루오름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계곡의 공기가 일변하며 집단이 들어왔다. 일렬로, 우익 청년단, 민보단원들의 첨병부대가 차례차례 계곡 바닥을 메우면서, 제1진, 제2진 밑을 통과했다. 다음은 토벌대의 짐을 짊어진 민보단원의 보총부대인가 했더니, 철모를 쓴 무장본대가, 그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군화의 묵직한 발소리를 울렸다.

선두가 제1진 밑으로 지나 안으로 들어서고, 제2진 밑으로 접어들었을 때, 골짜기 밑을 겨누고 일제히 사격이 시작되었다. 좁은 계곡에서 폭발, 튀어오르는 총성이 빗게오름의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좁은 계곡은 아비규환의 도가니로 변했다. 적은 마구 발포했지만, 응전은 되지 않았다. 계곡의 바위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시체를 밟고 넘어 계곡 밖으로 도망치는 군복의 등 쪽에 총탄이 명중해 구멍을 냈다.

와아―. 와아―. 우와―. 그때 총성의 틈새를 비집고, 오름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이 들려왔다. 전투를 거의 구경하고 있었다고 해도 좋은 남승지와 천 동무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많은 사람의 고함이 오름 너머에서 나고 있었다. 세차게 울리며 이어지는 군중의 박수가 멀리서 천둥소리처럼 메아리를 동반했다.

“피난민이다.”

“어, 맞다. 피난민이야.”

근처까지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창을 든 게릴라들도 오름 쪽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총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노래가, 대합창이 들려왔다. ‘민중의 노래’였다. 전투 중인 게릴라에 대한 가족들과 피난민의 성원이었다. 마치 무슨 축구시합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 어둠의 동굴에서 나온 피난민들이 흐린 하늘이지만 가슴 가득 대기를 실컷 들이마시면서 총성이 울리는 방향을 향해 대합창과 박수의 성원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 <화산도> 12권 가운데

초록이 돋아나는 봄날, 문학 기행 일정은 바리메오름에서 시작해 안천이오름, 산물내를 돌아 출발지로 돌아왔다. 참가자들은 가파른 오르막길, 때로는 길 흔적 없는 조릿대 숲을 헤치면서 노루오름 일대 능선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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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오름 전투지로 가는 길.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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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오름 가는 길 안내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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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오르막길.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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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높은 나무 숲을 지나는 모습. ⓒ제주의소리

이날 기행은 시민단체 ‘4.3통일의 길 마중물’에서 활동하는 배기철, 안동수 씨가 안내했다. 4.3통일의 길 마중물은 2017년부터 4.3 당시 무장대들이 활동했던 지역을 답사하는 단체다.

배기철 씨는 “보통 4월이면 학살지를 방문하면서 아픈 역사를 돌아본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 의지를 가지고 일어섰던 도민들 역시 존재한다. 증언을 바탕으로 무장대들이 머물고 싸웠던 제주 곳곳을 돌아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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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통일의 길 마중물’에서 활동하는 배기철 씨가 길 안내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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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열창하는 최상돈 씨. ⓒ제주의소리

제주작가회의는 전투가 벌어졌던 산물내 계곡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당시 모든 희생자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 제문은 강덕환 시인이 쓰고 낭독했다. 4.3 노래를 지키고 알리는데 앞장서온 가수 최상돈 씨는 소설 <화산도>에서 피난민들이 불렀다는 김순남의 <해방의 노래>를 비롯해 백난아의 <찔레꽃> 등을 부르며 큰 박수를 받았다.

돌이켜보면 무지막지한 세월이었습니다. 해방된 나라에서 베롱허게 잘 살아보고자 했습니다. 외세에 의한 분단이 획책될 때 3.1정신 계승해 통일조국 전취하자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한라산에 가솔린을 뿌려 30만 제주도민을 태워 죽여도 그들만의 건국에 지장이 없다며 신령스런 한라산의 목젖까지 조여 왔습니다.

여기에 굴하지 않은 민족해방 전사들은 빗질작전으로 싹쓸이하려는 세력에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이곳 노루오름 전투 산물내 현장에서 맞서 싸웠습니다. 탄압이면 항쟁이었고, 항쟁에는 민중들의 염원을 담았습니다.

서로의 상처가 흉터로 변하도록 너무 늦게 찾아온 저희들을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시산혈천.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내를 이루던 참혹한 세월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누가 누구를 탓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우리 편, 남의 편 가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한라산 아래 첫 동네에서 이슬처럼 사라져 간 모든 영혼들의 안식을 빕니다.
- 강덕환 시인

이종형 제주작가회의 회장은 “세상을 떠난 군인과 무장대, 그리고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 모두 좌우대결로 인한 피해보다는 4.3의 광풍에 휩쓸린 죽음이었다. 이념적인 이분법 가치를 넘어 모든 영혼을 위해 소박하게 인사를 올린다”면서 “앞으로도 제주작가회의는 4.3의 역사 속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아 더 이야기 들어야하는 장소를 찾아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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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대와 토벌대의 전투가 벌어졌던 산물내 계곡.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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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기행 참가자들이 달고온 깃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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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도' 가운데 노루오름 전투 장면을 낭독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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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혹은 4.3 때 사용했던 진지를 살펴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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