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성찰하는 유물론자의 우주 대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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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30) 칼 세이건, 홍승수 역, 《코스모스》, 돌베개, 2018.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2006. 출처=알라딘. ⓒ제주의소리

“먼지 한 톨에도 우주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아빠와 딸로 만난 우리의 인연은 온 우주의 아름다운 꿈을 담고 있습니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청년에서 중년으로 거듭나며 우주와 삶의 이치를 배워나갈 은교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올해 새해 첫날 딸에게 선물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속지에 이렇게 썼다. 이제 중학생으로 올라가니 뭔가 이정표를 찍을 만한 정신적 교감을 위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고른 책이다. 나의 성장기 때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님이 텔레비전에 나와 들려주시던 우주 이야기도 당시에는 ‘칼 사강’이라고 불렀던 위대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이 책 덕분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 실상사의 도법스님이 떠오르곤 한다. 천문학자의 책과 불경을 공부하는 스님이 무슨 관계일까? 사실은 여느 종교와 달리 불교는 현대의 자연과학과 궁합이 잘 맞는다. 도법스님이 자연과학을 설파하는 건 아니지만, 그이가 전하는 의상대사의 <법성게>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震中含時方). ‘먼지 한 톨에도 우주가 담겨있다’는 우주적 서사다. 칼 세이건이 말한 <코스모스>의 혜안과 잘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 여러 종교들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종교가 불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서양에서 우주론(cosmology)이란 철학의 3대 의제였던 신과 인간, 자연 가운데 자연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자연철학을 의미했다. 근대 이후의 학문이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무게를 이동하면서 인문학이 나타나고, 이어 신에 관한 관심을 대체한 사회학이 나타나면서, ‘신과 인간, 자연‘이라는 세계관의 3요소는 ’인간과 사회, 자연‘으로 바뀌었다. 근대 이후의 과학은 자연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관통한다. 인간과학(humanities)와 사회과학(social science), 그리고 자연과학(natural science)에 이르는 학문체계로 진화했다. 

동아시아에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가지고 치열하게 논쟁한 것도 이(理)와 기(氣), 정신과 물질, 이데아와 질료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한 우주론적 개념을 설정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동아시아 철학의 논점을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 정의한 최한기의 <기학(氣學)>도 결국은 서양의 근대과학이 밝혀낸 우주론적인 철학을 수용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우주적 서사를 학문의 필수요소로 삼았던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서양에서 출발한 자연과학의 비약적 발전이 근대 이후의 우주론을 주도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코스모스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피타고라스가 ‘kosmos’라는 말로 우주를 설명한 데서 나왔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kosmos’는 조화와 질서를 뜻하는 말이었다. 피타고라스 이래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우주를 설명하는 일은 곧 조화와 질서로서의 우주를 설명하는 일, 즉 코스모로지(cosmos+logy)였다. 형이상학자 칸트도 이 말을 받아들였지만, 형이상(形而上)에 존재했던 그는 형이하(形而下)의 세계인 자연, 즉 우주적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없었던 탓에 불가지론(不可知論)으로 판단유보하고 말았다.

팽창우주와 우주흑체복사(宇宙黑體輻射)의 발견 이후 현대 과학이 밝혀낸 우주론의 대서사는 138억년 전에 일어난 빅뱅의 여파로 지금까지도 계속 팽창하고 있는 관측가능한 우주를 이야기 한다. 1,000억 개 이상의 은하가 존재하고, 100억 광년 거리의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빅뱅이후 지금까지 계속 팽창하고 있는 공간이 우주다. 스페이스(space)라는 말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우주다. 유니버스(universe)는 공간과 시간을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서의 우주를 가리킨다. 카오스의 상대개념인 코스모스(comos)는 질서와 조화의 세계로서의 우주론으로서 우주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가진 개념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나는 10대까지 유신론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20대 이후 과학적 유물론을 접한 이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비관적 견해 없이도 나름 건강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유물론자에게도 정신적 충격을 덜어줄 위안’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한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져 망연자실해 있을 때, 우주론은 나에게 깊은 위안을 주었다.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에 출연한 천문학자의 우주 이야기,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고, 세월호 아이들도 별로 돌아갈 것이다’. 이전에도 들어본 말이었지만, 세월호 아픔을 겪고 있던 당시의 상황은 더욱 절실하게 우주적 관점으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받아들이게 했다.

천문학자가 우리에게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칼 세이건과 같은 과학커뮤니케이터의 서사가 있기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과학계의 큐레이터이다. 과학적 진리를 감성적 공감으로 이끌어주는 선구자. 그를 통하여 우리는 물리적 공간이나 천문학적인 지식 차원을 넘어서는 우주를 만나서, 정신과 물질, 생명 등의 존재론과 인식론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칼 세이건의 우주론은 우리로 하여금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이 시를 다시 읽게 해준다. 이런 까닭으로 칼 세이건의 우주론은 나에게 ‘유물론자를 위한 복음서’이며, 우주적 영성의 원천이다.

“우리는 이제 사회, 정치, 경제, 종교라는 이름의 제도가 가르쳐 온 전통적 지혜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과감한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우리의 이웃이 지구 어디에서 살든 그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보이저 1호가 60억 킬러미터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촬영한 이미지를 두고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명명한 칼 세이건은 의상대사가 말한 한 톨의 먼지에 우주가 담겨있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그는 온갖 폭력과 고통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이곳 지구에서의 삶이 한 톨 먼지와 같이 미미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문명이라는 이름의 모든 관념들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광활한 우주 속에서 지구와 인간의 위치를 재설정하고 이에 따라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관념과 관습과 문화와 제도를 혁신할 원동력을 칼 세이건은 인간과 사회, 문명과 과학을 융합하는 우주의 대서사로 밝혀주고 있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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