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취급을 받으려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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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인간] 23.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Ooh, You Make Me Sick), 손원평, 2005

‘영화적 인간’은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질 들뢰즈의 말처럼 결국 영화가 될(이미 영화가 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글이다. 정상적인 영화 리뷰의 전형성을 지양하고, 생산적 측면에서 영화를 통한 글쓰기를 지향한다. 영화 잡지 <키노>를 애독했으며, 영화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처럼 뚱뚱하고, 영화 <해피 투게더>의 장국영처럼 이기적인 사랑을 주로 한다. [편집자 주]

영화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나는 나를 알 수 없다. 나에 대한 판단은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길을 걷다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고, 원하지 않아도 전화가 온다. 친하면 친한 대로, 친하지 않으면 친하지 않은 대로 오해한다. 내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 될 확률은 아주 적다. 각자 자기 식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나 역시 예상하기 힘들다. 사실 나는 내가 아닐 수 있다. 나는 그저 이 사회에서 만들어진 나다.

나는 과연 좋은 인간일까. 내가 생각 없이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어 나를 생각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떤 말에 상처를 받아 다음 날에 내게 상처를 준 그 사람에게 그 일에 대해서 말한 적 있다. 그는 그 점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며 너스레를 떠는데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모두가 좋아하지는 않는다. 거의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데 몇 사람은 지지리 복도 없는 그를 좋아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은 과연 좋은 인간인가, 안 좋은 인간인가. 두 의견으로 토론을 하면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그 인간을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다. 우리는 대상을 한 쪽만 보며 말하기 쉽다. 사실 입체적으로 보면 더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에게 그런 면이 있었어?” 우리는 그 사람의 그런 면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인식한 그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엔 내가 판단한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이 편리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그런 여지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시집 제목을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 제목은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집에만 머물러 있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원래 의도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고 여기에 머물러 있겠다는 말이었는데 케렌 앤의 노래를 좋아하는 몇 사람 빼고는 다르게 해석한다. 내가 어딘가에 가면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면서 여기엔 어떻게?” 하며 의아해 한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이 말의 뜻을 바꿔 말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말했다.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는 말은요. 정말 가야할 곳만 선별해서 가겠다는 말이었어요.”

그러다 그 뜻도 식상해져 요즘은 이런 식으로 말하고 다닌다.

“사실은요.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는 말은 반어법이에요. 난 어느 곳이든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내 의도조차 이렇게 바뀌는데 해석은 오죽하랴.

그래서 내린 결론. 나는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 인간은 사실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사람들은 정이 안 가는 인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 인식까지 내가 다 바꿀 수도 없다. 그러니 나라도 그 인간을 사랑해줘야지. 피아노는 조율사의 조율이 가능하지만, 인간이라는 이 악기는 너무 복잡하고 불안정하다. 불안한 소리를 내는 악기가 있으면 그 악기의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조용히 그의 귓가에 대고 말해 줘야지.

“당신이 내는 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군요.”

현택훈
시인. 세 권의 시집을 냈는데 두 권은 절판되었고, 현재 구입 가능한 시집으로는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가 있다. trace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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