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34) 김해규, 최치선, 우대식 외 5인, <미군 평택주둔 약사 및 생활문화에 끼친 영향>, 평택시민신문, 2017.

김해규, 최치선, 우대식 외 5인, <미군 평택주둔 약사 및 생활문화에 끼친 영향>, 평택시민신문, 2017. 출처=평택시민신문 홈페이지.

얼마 전에 평택을 방문했다가 뜻밖의 횡재를 했다. <정태춘 박은옥 40프로젝트> 일을 하고 있는 터라 공연과 전시, 영화 관련 업무 협의 차 정태춘 선생 고향인 평택에 갔다가 한 귀인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눴다. 정태춘 선생의 고향 친구인 그는 시인이자 아키비스티이며 사학자인 평택문화원 최치선 상임위원이다. 그와 나눈 대화 중에 나의 무릎을 치게 한 말이 있었다. 2007년 당시 평택시의 느슨한 문화행정 때문에 기증 예정이었던 최평곤의 대나무 작품 <파랑새>가 평택에 자리잡지 못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제주도 알뜨르비행장에 가있다는 나의 전언에 대해 그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이다!” 

이러한 탁견을 가진 이가 필진으로 참가한 책을 선물 받은 것. 앞서 말한 횡재의 물증이다.

나에게 평택은 대추리다.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투쟁을 벌였던 대추리 주민들을 비롯해 수많은 활동가와 예술가들이 함께 했던 대추리평화예술마을 운동 때문이다. 가수 정태춘은 자신의 고향마을 주민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을 때, 고향마을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뜻을 담아 1000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평화예술운동을 펼쳤다. 2006년 5월 4일, 정부는 ‘여명의 황새울’ 작전으로 ‘올해도 농사짓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주민들을 가로막았다. 이듬해 마을을 지키려고 남아있던 주민들이 떠난 후, 10년이 지나고 확장 이전한 미군기지가 개관한 해에 평택에서 이 책이 나왔다. 마음 한 구석에 늘 남아있는 2007년의 대추리 퇴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그 무거운 마음을 대신 덜어낼 수 있었다. 

2017년 7월 11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를 비롯한 황새울 들녘에 자리 잡은 캠프험프리스에서 미8군 사령부 청사 개관식이 열린 날이다. 대추리 주민들이 마을을 비우고 떠난 지 꼭 10년만이 일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살던 마을에서 쫓겨났던 대추리 주민들은 6.25전쟁 직후 다시 한 번 쫓겨났다. 아산만 방조재가 생기면서 갯벌을 간척해서 풍요로운 들판을 일구고 살아오던 주민들이 또다시 쫓겨난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캠프험프리스의 개관은 ‘주한미군 평택시대’로 불리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동아시아 안보지형에 또 다른 이정표를 찍은 사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생략된 것이 있다. 바로 평택시민들의 삶이다. 미국과 중국, 남한과 북한의 안보지형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미군기지를 곁에 두고 그곳에서 사는 평택시민들의 시선과 목소리가 함께 들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평택시민들에게 큰 짐을 안기고 국민대다수의 안보를 보장받기로 했다. 국가폭력에 의한 것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평택시민의 희생을 담보로 국가안보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국민들은 평택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평택시민의 입장에서 주한미군기지 문제를 다룬 책이라는 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해외 주둔 미군기지라는 캠프 험프리스. 일제 강점기인 1919년 이래 지난 100년간 외국군대의 군사기지를 옆에 두고 살아온 평택시민들로서는 앞으로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함께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주한미군과의 공존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과제로 다가올 것이다. 평택의 숙명과 과제를 공감하고 공유하는 자세는 거창한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윤리이다. 

큐레이터로서 오키나와를 오가는 나의 행보는 10여 년 전 30대 말의 청년기에 겪은 대추리 체험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저 거대한 힘 앞에서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하고 힘의 논리에 따라야 했던 그 상황을 맞아, ‘①마을은 사라져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②예술은 국가의 공공성보다 시민의 공공성을 중요시한다’는 두 가지 핵심을 깨달았다. 세월이 흐른 후 제주도를 거쳐 오키나와를 찾아 ‘평화의 공명(共鳴)’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대추리를 찾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평택 사람들의 평택이야기를 만났으니, 그로부터 하나씩 실오라기 풀리듯이 과거의 응어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 대추리는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게 되었다. 패배한 싸움이 아니라 그 싸움이 있었기에 기억할 수 있는 평택의 삶이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한미군 평택시대’를 맞이한 2017년 현재의 현실을 역사와 당대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김해규(평택지역문화연구소 소장)는 <평택지역의 외국군 주둔과 미군>에서 평택에서 벌어진 전쟁과 군대주둔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근대 이후 군사지역으로서의 지정학적 위치에 주목했다. 같이 이의 글, <미군기지와 기지촌에서의 삶>은 오산 신정리와 팽성 안정리의 기지촌의 형성과 구조, 일상 등을 다뤘다. 최치선(평택향토사연구소 상임위원)의 <평택 미군기지 약사>는 안정리 캠프 험프리스와와 송탄 오산비행장의 역사를 다룬 후, 용산의 미군기지가 이전하기로 했던 1990년 이후의 과정들을 기술하고 있다. 강상원(평택평화센터 활동가)의 <미군기지 확장에 맞선 주민들의 저항과 주한미군 평택시대, 우리의 과제>는 대추리평화운동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 지금부터 미군부대와 공존해야 하는 평택의 삶을 이야기한다. 

위안부와 음식, 문학 등 미시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평택 이야기들도 풍부하다. 오유석(성공회대 교수)의 <미군 위안부의 역사>는 사회적 구조로서의 위안부 문제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하고 있는 문제이며, 이제는 할머니가 된 과거의 위안부들도 이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오향진(작가)은 <미군기지 주변 음식문화를 통해 본 문화적 다원화 – 미군을 만나면서 변화된 평택 음식 문화>에서 의정부와 쌍벽을 이루는 송탄의 부대지개와 햄버거 문화 등을 중심으로 음식문화 변천사를 정리했다. 기지촌 관련 문학에 대한 비평도 있다. 우대식(시인)은 <두 겹의 철조망 속에서의 외로운 증언 – 박석수론>에서 동두천과 의정부 파주 문산 등에 가려 있었던 송탄의 미군기지 문제를 깊이 다룬 시인이자 소설가 박석수를 깊이 파고든다. 

과거와 현실 앞에는 미래가 있다. 이 책의 말미에는 현실로부터 미래로 나아가려는 평택의제가 담겨있다. 이창은(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사회학 박사)은 <주한미군 평택시대, 지속가능한 도시 만들기의 조건과 과제>에서 주한미군과 공존하는 평택의 도시문제를 풀기위한 거버넌스를 제안한다. 황우갑(평택시민아카데미 회장)은 <미군기지 평택이전과 반환미군기지 활용 - 시민평생교육 활성화>에서 알파 탄약고를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대추리에 관한 우울함을 조금이나마 떨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평택의 도시와 삶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미군에게 내준 땅을 되돌려 받아서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공동선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과 평택을 다룬 이 책을 통하여 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평택에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실을 기록하며 앞일을 내다보는 예지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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