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피고 새롭게 비평해야 할 민중성
다시 살피고 새롭게 비평해야 할 민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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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38) 김종철, 《大地의 상상력》, 녹색평론사, 2019.
김종철, 《大地의 상상력》, 녹색평론사, 2019. 출처=알라딘.

1.
첨단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각종 콘텐츠가 급팽창하고 온갖 정보의 향연을 즐기는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오죽하면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구분해야 하고, 특정 방송사의 뉴스에서는 ‘팩트 체크’라는 코너를 두고 한국사회 안팎에서 초점이 되는 사안에 대한 사실 여부와 그 정보가 쓰이는 맥락을 꼼꼼히 검토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사실에 대한 주체적 판단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까, ‘맞다·틀리다’ 또는 ‘옳다·그르다’의 단순 이분법적 선택에 머무는 게 아니라 분명한 사실을 가려내고, 그 사실을 가려내는 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주체의 가치 판단, 말하자면 윤리적 판단에 이르는 존재의 ‘경이로운 순간’을 만나는 길을 안내한다. 

사실, 이러한 길은 달리 말해 ‘비평’을 실천하는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한국사회가 지금, 이곳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비평’의 일상화다. 비평은 비평가란 전문가의 독점적 전유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돌이켜보면, 비평이 비평가만의 전유물이었던 때가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비평의 시대’라고 불렸던 때가 있었다. 대중이 비평의 언어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다. 비평은 사회와 공명하였고, 무엇보다 이른바 삼반(三反)이라고 한, 반(反)민족‧반(反)민중‧반(反)민주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가열차게 실천한 비평행위는 잠자는 대중을 깨웠을 뿐만 아니라 깨어있는 대중으로 하여금 스스로 비평행위를 실천하도록 하는 비평의 감각과 논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비평행위는 아주 빠른 속도로 금세 휘발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최근까지 비평의 명맥은 유지되고 있되, 아니 비평의 시장은 미디어와 콘텐츠 시장의 급팽창으로 한층 활기를 띠고 있지만, 그 활기는 대중의 주체적 비평행위로써 한국사회 안팎의 크고 작은 현안들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기반하고 있는 것보다 문화산업이란 미명 아래 각종 콘텐츠 시장에서 재빨리 소비되는 지식상품으로서 자족하는 비평만이 남루할 뿐이다. 바꿔 말해 이제 비평은 지식상품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고 그때그때 일회성으로 순간 자극적 ‘앎’ 또는 비판의 흉내를 낸 ‘지적’ 정도로 대중은 비평을 소비할 뿐이다.

2.
김종철의 《大地(대지)의 상상력》은 한국사회에서 전락해가고 있는 비평을 대상으로 한 비판적 성찰을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대지의 상상력》에 실린 글들 대부분이 최근에 씌어진 게 아니라 1980년대에 씌어졌다는 점이다. 참고로, 저자 김종철은 책머리에서 밝혔듯이, 애초 영문학도이자 문학비평가로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91년부터 격월간 <녹색평론>을 발행하면서 지금은 생태론에 바탕을 둔 채 구미중심의 근대화(공업화 및 산업화)에 대한 발본적 비판을 가열차게 실천하고 있는 지식인이자 운동가다. 《대지의 상상력》을 읽으면서 <녹색평론>이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대지의 상상력》에서 언급되고 있는 문학인과 사상가 및 운동가들, 가령 블레이크, 디킨스, 매슈 아놀드, 프란츠 파농, 리처드 라이트, 이시무레 미치코 등으로부터 김종철이 주목하고 있는 비평의 쟁점과 그 쟁점에 대한 그의 예각적 분석과 웅숭깊은 성찰은 구미중심의 근대의 맹목이 초래한 악무한에 대한 준열한 비평행위로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대지의 상상력》에 실린 비평을 접하면서 앞서 내가 문제제기한 작금 한국사회의 비평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비평의 언어에서 시효만료 선언을 하기에 급급한 민중과 관련된 비평의 감각과 논리를 다시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사실, 김종철의 글들이 1980년대의 엄혹한 시기에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비평의 정치적 실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그래서 그 당시 진보적 역사의 주된 구성원으로서 ‘민중’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김종철의 이러한 비평은 비단 1980년대에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물론 역사의 진전에 따라 상당히 진척된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염두에 둘 때 민중을 에워싼 역사의 변이를 고려해보면, 21세기의 민중과 1980년대의 민중이 동일한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반역사적 태도도 없을 터이다. 민중의 역사성은 분명 달라졌다.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민중에 대한 비평의 감각과 논리는 1980년대의 그것과 질적 차이를 갖는다. 하지만 민중에 대한 역사적 변화가 있다는 것과 민중 개념이 함의하는 것이 낡고 진부하기 때문에 진보 담론 내부에서도 심지어 이제는 민중 자체가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별개의 문제로서, 《대지의 상상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 이곳에서 새롭게 그리고 다시 마주해야 할 민중이다.

3.
이와 관련하여, 김종철이 디킨스를 파악하는 대목은 디킨스의 문학세계를 정통 영문학의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 포착되지 않는 비판적 독서로 이해함으로써 디킨스의 문학을 풍요롭게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 한국문학에서 현저히 위축된 채 점차 소멸해가고 있는 민중문화적 특질을 창조적으로 융합시킬 수 있는 어떤 혜안을 시사해준다는 점에서 현재성을 띤다. 김종철은 이것을 “민중문화 혹은 민중의 예술과 연희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이러한 저항적인 요소와 유토피아적인 요소의 동시적인 병존”(120쪽)인데, “민중예술이 늘 유토피아적 비전을 내포하는 원인의 하나는, 그것이 노래나 이야기 혹은 축제 등 어떤 형태로 표현되든지 간에 민중예술은 공동적 유희를 언제나 그 본질적 일부로 삼고 있다는 점”(120쪽)에 있음을, 디킨스의 문학에서 읽어낸다.

사실, 김종철이 디킨스로부터 발견해낸 민중문화적 특질은 최근 내가 구미중심의 세계문학으로는 온전히 포착될 수 없는 비서구문학에서 두루두루 관찰되는 문화적 요소다. 비서구문학의 유구한 흐름에서 곧잘 발견되는 문학은 구미중심의 근대문학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문자성(文字性) 위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구연성(口演性), 즉 구술성(口述性)과 연행(演行性)이 함께 어우러져 이뤄진다. 여기서 구연성은 민중문화의 골격과 피와 살덩이인 민중의 삶에 바탕을 둔 춤, 노래, 연주, 이야기(민담, 전설, 신화)가 혼효된 이른바 퍼포먼스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비서구문학의 실상은 ‘문자성+구연성’으로 이해해야 온당하다. 다시 강조하건대, 비서구문학은 구미중심의 문학처럼 문자성으로만 해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서구문학은 구미중심의 폭력적 근대가 비서구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비서구의 민중이 야만으로서 일방적으로 매도된 채 구미제국주의에 의해 민중은 정치경제적으로 억압되면서 그에 따라 민중문화도 철저히 탄압‧파괴‧왜곡 속에서 민중문화의 구연성은 자연스레 활기를 잃고 박제화되거나 뿌리뽑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구미중심의 문학은 문자성의 압도적 문화의 힘을 통해 문자성의 정교함을 문학의 모든 것인 양 미학화한다. 그리고 비평은 그것의 미학을 정당화하는 데 적극 공모해오지 않았던가. 

따라서 김종철이 새롭게 주목한 디킨스의 민중성, 곧 구연성은 종래 문자성과의 창조적 융합을 통해 구미중심의 세계문학과 다른 차원에서 오랫동안 그 본래의 가치가 왜곡됐던 비서구의 문학을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지닌 “대안적인 삶에 대한 가능성”(121쪽), 달리 말해 해방성이 지닌 정치적 실천을 적극 모색하는 것이다. 때문에 김종철은, “파농은 중앙집권화를 배격하고 지방분권화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는데, 그 점에서 우리는 파농이 구상하는 것이 결국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라는 것을 알 수 있다”(254쪽)를 읽어내는 비평은 자연스럽다. 물론, 이를 위해 김종철은 “민중의 자치능력이 전제”(255쪽)되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말할 필요 없이 이것은 파농이 강조한 ‘민족문화론’에 연결되는데, “진정한 민족문화란 자기 전통에 집착하는 문화가 아니라 민중생활의 진보에 봉사하는 것임을 역설”(258쪽)한다. 이것은 또한 자기폐쇄적 민족주의를 부정하고, “다른 민족사회와의 개방적인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며, 자연스레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충분히 민주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273쪽)에 이른다. 종합해보면, 우리가 다시 살피고 새롭게 비평해야 할 민중성은 한국 민주주의를 둔탁하게 실천하는 역사의 변혁적 주체로만 자족하는 게 아니라 민중의 자치능력을 길러내는 지방분권화 속에서 민중의 자기인식 바탕 아래 다른 민족 민중과의 개방적 연대를 통해 해방의 가치를 추구하는, 그래서 “생의 근원적인 행복과 풍요에 대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생생한 감각”(339쪽)을 공유하는 것이다.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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