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39) '예술과 사회 이론', 오스틴 해링턴 지음, 정우진 옮김, 이학사, 2014년.

'예술과 사회 이론', 오스틴 해링턴 지음, 정우진 옮김, 이학사, 2014년. 출처=알라딘.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여러 정의는 역사 속에서는 물론이고 동시대 현실의 지평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질문과 해답을 생산해내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에 남긴 지인의 한 마디가 깊이 와 닿았다. ‘주권자라는 아티스트가 사회를 그려내고 조각한다. 그것이 정치다’라는 문장이다. 이 말에 따르면 정치의 주체는 주권자다. ‘주권자가 사회를 그려내고 조각하는 것이 정치’라는 이 논리를 ‘사회를 그려내고 조각하는’ 아티스트에 비유했다. 오키나와 출신의 화가 타이치 요나하(Taichi Yonaha)의 이 말 한 마디, ‘예술가가 사회를 그려내고 조각한다’는 이 짧은 문장 속에 사회와 관계 맺는 현대예술의 핵심과 본질이 담겨있다. 

필자는 지난 10여년간 사회예술 연구자로서 꽤나 많은 공을 들여왔는데, 바로 이 사회예술이라는 용어의 낯선 느낌 때문인지, 종종 사회(적인)예술이 정치(적인)예술과 어떤 차이가 있는 개념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물론 예술은 언제나 그 자체로 사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인 속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 걸음 내디딘다면 예술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일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는 것 또한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참에 페이스북 친구의 말을 계기로 사회예술에 대한 정의를 하나 더 쌓아 두고자 한다. 

“사회예술은 예술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그려내고 빚어냄으로서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실천을 이끌어내는 예술이다.”

사회적인 실천을 도출하는 예술. 그것은 기실 오늘날 사회예술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별도의 예술개념인 것처럼 언급해야만 할 정도로 예술이 사회적 실천과는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영역으로 진화해 왔음을 반증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물론 근대예술의 초창기부터 예술이 예술 그자체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예술론, 즉 ‘예술의 위한 예술(L'Art Pour L'Art)’ 논의가 생장해왔고, 그와 대척점에서 서서 예술이 사회적인 실천과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예술(L'Art Social)’ 논의가 함께 이어져왔다. 

사회학자인 저자 오스틴 해링턴(영국 리즈대학교 교수)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이 오랜 논쟁들을 모아서 그 맥락을 재정리했다. 이 책 《예술과 사회 이론》은 사회학적 에술연구를 총망라한다. 베버와 짐멜 등 지식사회학의 초창기 거장들로부터 벤야민과 아도르노 등 프랑크프루트학파의 흐름을 정리하고, 이어서 푸코와 부르디외, 하버마스 등에 이르러 사회 구조 속에서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에 천착하는 사회학적 방법론에 주목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으로터 근대 이후의 예술이나 탈근대 예술을 논하는 과정에 보드리야르, 리오타르 등의 논자들의 필수불가결하다. 나아가 루만과 제임슨 등 사회체제와 예술체제 연구로 동시대에 깊이 간여하고 있는 사회학자들의 예술 관련 논점들을 정리해준다. 

사회학적 토대로부터 나오는 예술 논의의 출발점은 대체로 예술을 지식으로 간주하는 데에 있다. 예술이라는 정보의 생산과 매개와 향유를 가능하게 하는 일련의 메커니즘을 전일적인 지식체계로 보고 그 현상과 본질을 파악해보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생각이다. 사회학의 관심사인 사회 구조가 어떻게 예술 개념의 형성과 제도 확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은 기본에 해당한다. 예술이 사회 구조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연구들, 예술 제도 자체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과정과 결과를 추적하는 연구들, 그것이 일종의 문화정치로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들, 예술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아 재생산 구조를 확립해온 과정들에 관한 연구들 등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이 등장한다. 그것은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던 시절부터 최근의 사회학적 쟁점들에 이르기까지 예술을 다뤄온 사회학적 연구들을 변증법적 관점으로 재인식하게 해주는 예술사회학 연구의 총체이다.

이 대목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사회학적 논의들의 학문적 지위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책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예술이지만, 그 경로는 아직 미학이라는 범주에 갇혀있다. “Art and social theory :sociological arguments in aesthetics”라는 원저작과 “예술과 사회 이론 : 사회학적 미학의 길잡이”라는 번역서 이름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다. 이 책이 예술과 사회를 이론적으로 다루면서도 사회학적 “미학 논쟁”이라는 수사를 동원하는 것은 학문 영역의 혼선 때문이다. 예술학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미학 논쟁’이라는 이 관점에 깃든 불편함을 감추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이 다루는 대부분의 논점들은 예술에 관한 것인데도, 그 논쟁의 준거를 예술이 아닌 미학으로 잡고 있다는 게 석연찮기 때문이다. 

이렇듯 학문 이름이 18세기에 머물고 있는 까닭은 ‘예술’에 관한 연구가 아직 학문적으로 제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성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이성을 연구하는 이성학으로서의 철학이 존재하고, 감성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감성을 연구하는 감성학으로서의 미학이 존재한다면, 현존하는 물질이자 제도인 예술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예술학이 존재할 수 있음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아직 예술학은 아직 미학의 틀 아래 갇혀있다. 그래도 이 책이 고마운 이유는 미학자들이 아닌 사회학자들이 예술 연구를 통하여 예술학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주었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 제도의 성립과 변화를 큰 틀에서 규정하는 것 이외에 취미와 계급, 자본과 후원, 대중과 언론 등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과 지점들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미시영역에 천착한 예술사회학 연구의 미덕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예술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형이상학과 사회학, 인문학,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 문화유물론, 탈근대주의, 분석철학, 인류학 등의 관점이 어떻게 예술연구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정리해보는 것이 그것이다. 사회주의, 여성주의, 탈식민주의 등의 가치 지향과 예술의 관계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의 계급구조와 사회진화, 후원체제, 예술시장, 국가와 시장, 예술기금 등의 사회경제구조 차원에서 예술생산과 매개, 향유를 조망하는 흐름도 있다. 다음 단계는 칸트의 미학으로부터 예술의 자율성, 문화자본, 예술소비, 취향의 사회적 구조화 등의 논제들을 통하여 예술의 존재형태를 살피는 일이다. 이렇듯 사회학이라는 광범위한 연구 영역에 기대고 있는 예술연구는 미시적인 분야와 영역으로 깊이 들어가면서도 동시에 구조론적 관점, 즉 큰 틀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거대담론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예술이라는 관점도 뿌리 깊다. 독일관념론 이래 마르크스와 루카치로 이어지는 예술철학,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의 위치가 예술심리학과 문화산업 비판으로까지 나아간 과정과 그 결과도 들어있다. ‘근대성과 근대예술’은 보들레르의 모더니티 선언 이래 베버와 짐멜 같은 초기의 연구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져왔으며, 지금까지도 식지 않는 논제이다. 이 책의 마무리는 필연적으로 탈근대 논쟁이다. 근대의 확립은 근대의 해체나 대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근대 이후의 예술을 찾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의제이지만, 신자유주의 세계질서 아래서 예술의 흐름을 사회학적으로 해명하고 새 길을 찾는 일은 참으로 난망할 일이다. 필자의 미덕은 바로 이 지점, 사회학적 예술 연구를 일별하는 과정마다 동시대성을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는 데 있다. 

* 사족 : 글 앞머리에 언급한 필자의 지인은 일본 국적인데, 요즘 일본 정부의 행동으로 인해 이래저래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기에 몇 마디 첨언하자면, 오키나와는 일본과 다르다고 생각하므로, 현재 한국 사회의 일본에 대한 기억과 감정, 느낌,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필자는 오키나와를 사랑한다. 또한 필자는 내셔널리스트가 아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 아베 정권의 장책에 대한 적대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일본 민중, 일본 시민사회와의 적극적인 연대와 동맹이 절실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한국인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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