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각' 맞춰질수록 조여오는 목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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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이짬컴퍼니 연극 ‘조각’

예술을 계절에 맞게 즐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름이면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을 주는 트로피칼 하우스(Tropical House)나 시티팝(City Pop) 같은 음악 장르가 사랑 받는다. 반대로 크리스마스 즈음 쌀쌀한 겨울이면 포근한 로맨스 영화가 극장가에 내걸린다. 이런 경향은 대중·순수예술 가리지 않는다.

여름의 단골손님은 공포 장르다.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두 팔의 솜털이 쭈뼛쭈뼛 서는 공포물은 무더위 기운을 잠깐이나마 날려버리는 데 제격이다. 제주에 모처럼 공포 연극이 등장했다. 바로 제주 공연기획사 ‘아이짬컴퍼니(대표 김용규)’가 주최·주관한 <조각>이다. 극본 전종현, 연출 정민자이다.

<조각>은 지난 2015년 서울 대학로에서 위로컴퍼니가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아이짬컴퍼니가 판권을 구입해 제주 여건에 맞게 재구성했다.

서울 <조각>은 지난 2016년 11월 19일부터 지금까지 상시 공연(오픈런)을 이어가고 있는데, 인터넷 예매 홈페이지 순위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마침 25일 제주 초연에 참석한 원작자 겸 위로컴퍼니 대표 전종현은 기자를 만나 “<조각>이 대학로에서 공포 연극으로는 1위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했다.

원작자의 자신감처럼 <조각>은 으스스한 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연극이다. 

경기도 시흥시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은행 강도 사건이 벌어진다. 용의자는 희태(배우 이광호)와 순철(신진우). 두 사람은 누구도 오지 않을 으스스한 분위기의 폐가로 잠시 숨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여인 영희(정윤선)가 집 안에 있다. 돈 가방을 품에 안았지만 희태는 ‘심인성 기억상실증’으로 현실과 정체모를 환상을 점점 헷갈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세 사람은 폐가에 담긴 섬뜩한 사연을 알게 되면서 숨겨진 진실의 조각이 하나 둘 맞춰진다.

작품은 ‘공포’라는 감정에 충실히 접근한다. 컴컴한 어둠과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효과음, 종종 관객을 스쳐지나가는 촉각 자극과 검은 망자의 깜짝 등장 같은 인간의 원초적 오감을 십분 활용한다. <조각>은 희태가 혼란스러워하는 중후반까지 이런 방식을 비중있게 사용하는데, 그리 어색하거나 지루하지 않아 관객들의 호응을 적절히 이끌어낸다. 어두컴컴한 소극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은 자연스레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숨겨진 뒷이야기가 밝혀지는 후반부 들어 <조각>은 원초적 자극뿐만 아니라 줄거리에서 우러나오는 심리적 공포까지 나아간다. 느끼는 대로 즉각 반응하는 그것과는 다르게 머리 속을 거쳐 등줄기 아래서 타고 올라와 팔과 뒷목까지 쩌릿해지는 느낌. 특히 ‘모든 것’이 밝혀지고 나서 희태가 작품 첫 장면을 재현하는 순간은 내면의 공포가 최고조에 이른다. 

<조각>은 공포만큼이나 유머에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나사가 하나 빠진 듯 한 어리숙함(순철), 버럭하지만 은근 허당(희태) 성격을 각각 부여하면서 적절하게 웃음을 뽑아낸다. 웃음과 공포라는 상반된 감정이 수시로 교차하는데, 관객이 긴장을 풀면서 모든 감정을 '120%' 느끼고 표출 할 수 있게 만드는 제작 의도로 보인다. 객석을 거의 가득 채운 첫 공연을 함께 지켜본 결과, 이런 의도는 효과적으로 발휘됐다.

25일 첫 공연을 마친 '조각' 출연진. 왼쪽부터 신진우, 정윤선, 이광호. ⓒ제주의소리
25일 첫 공연을 마친 '조각' 출연진. 왼쪽부터 신진우, 정윤선, 이광호. ⓒ제주의소리

내내 신경질적인 희태 역의 이광호, 웃음의 상당부분을 책임지는 순철 역의 신진우, 이질적인 존재 영희 역의 정윤선. 출연진 모두 관객을 몰입시키는 연기력을 펼쳤다. 세 명이 보여준 합은 공들여 준비한 지난 시간을 짐작케 했다. 이광호와 신진우는 타 지역, 정윤선은 제주 출신으로 서울 대학로 등에서 배우 경력을 쌓았다. 현재는 모두 제주에 거주 중이다. 특히 정윤선은 밝은 미소 속에 은근히 한기가 배어있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망자가 무대 위에 비교적 긴 시간 노출될 때는 다른 장면에 비해 공포감이 줄었다. 비슷한 유머를 되풀이할 때도 마찬가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표현을 달리해서) 엄청난 일을 겪고 처참한 장면을 보고도 ‘당구나 한 게임 치자’고 말하는 희태 모습은 너무 많은 것이 생략·압축된 것이 아닌가 싶어 다소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작품 이야기의 핵심인 '심인성 기억상실증'(심리적인 이유로 생기는 기억상실 정신질환)과도 맞물리는 중요한 분기점이라서, 보다 설득력 있는 구성이 필요해 보인다는 사족이다. 영희가 희태에게 고함치는 장면은 공포나 위압감을 더 확실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겠다. 전체적으로 작품 속도를 높여도 좋겠다는 소소한 의견도 덧붙인다.

25일 첫날은 만석에 가까운 많은 사람들 찾아왔다. 젊은 여성들이 상당수를 이뤘고, 남녀가 함께 온 비율도 높았다. 공연이 끝나고 소극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박”, “친구에게 추천 해야겠다”는 반응을 너도나도 쏟아냈다.

섭외, 각색, 무대 제작 등 전방위적으로 활약한 김용규 대표는 "<조각>은 현재 서울 대학로에서 가장 인기 높은 공포 연극 가운데 하나다.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알고있기에 제주도민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겠다 싶었다"면서 "이번 계기를 통해 관객들이 연극과 소극장의 문턱이 높지 않다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주 5일(수요일~일요일) 9월 29일까지 한 여름 동안 세이레아트센터에서 공연할 <조각>은 더위를 식힐 공포 연극으로 손색이 없다. 제주 자원이 합심해서 완성했기에 더욱 반갑다.

문의
1688-4878
인터파크 티켓, 예스24, 옥션 티켓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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