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신 카슈미르의 고향 '아그라'(3)

타즈마할을 나와 내가 향한 곳은 아그라의 랄 낄라, 아그라 레드포트였다. 야무나강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성으로, 붉은 사암으로 지었기 때문에 레드포트라고 불린다는 곳, 그리고 샤 자한이 죽을 때 까지 유폐당해 있었던 곳.

타즈마할에서 아그라 레드포트까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2km가량 되는 구간이니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이날만큼은 특별히 퉁가를 타 보기로 했다. 혼자서 타기엔 아주 조금 두려움이 앞섰던 퉁가! 그렇지만 인도에서 만나 제법 친해진 다른 여행자 몇 명과 뭉쳐서 오르자 즐거움이 두려움까지 넘어서버렸다. 혼자 하는 여행도 즐겁지만, 다른 누군가와 함께 라는 것도 즐거웠다. 요즘도 가끔 가끔 택시를 타기엔 돈이 부담스럽고, 버스를 타기엔 노선을 돌아~돌아~ 가는 시간이 아쉬울 땐 릭샤와 퉁가를 생각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인도이기에 만들 수 있었던 이 소중한 인연과 추억이 생각나곤 한다.

퉁가를 타고 털털털 달려가서 내린 랄 낄라. 450년가량을 꿈쩍도 않고 서 있는 붉은색의 성채 앞에 서자 어째서인지 모를 설렘이 밀려들어왔다. 근데 티켓부스엘 가서 서니 입장료가 250루피라고요? 나 좀 봐주면 안 될까? 나 조금 전에 타즈마할에서 입장료로 700루피나 썼다고요. 그런데 250루피를 더? 입장료로 하루에 1000루피를 쓰라는 거예요 지금? 제발 나 좀 살려주세요. 응?
 
250루피.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5000원정도의 입장료. 역시 입장료와 인터넷 이용료만큼은 선진국과 동일수준이라는 인도다웠다. 사실 전의 타즈마할 입장료만 아니었다면 250루피쯤 기쁜 맘으로 지불할 수 있었겠지만 하루에 입장료로 2만원 이상을 쓴다는 건 글쎄 아니올시다 라서 무지막지하게 고민이 됐다. 들어갈까 말까. 사실 델리의 랄 낄라나 아그라의 랄 낄라나 랄 낄라는 다 랄 낄라지 뭐~ 하려는 마음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껏 인도까지 비행기타고 날아가서 보지 않는다는 것도 마음이 좀 그렇고.
 
그런데 그때 다른 여행자가 하는 말. '여권 없다고 우겨 봐.'
 
사실 절대, 절대, 절대로!!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만15세 이하인 사람에게는 입장료를 단돈 1루피도 걷어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현지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이 대를 맞추는 데에는 영 젬병이라는 점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아저씨 제가 여권을 게스트하우스에 놓고 와서- 그런데 내일 바라나시로 떠나걸랑요. 여기까지 와서 아그라의 랄 낄라를 못 본다는 게 말이나 되남요? 그러니까 우리 프로끼리 이러지 말고 좀 좋게 좋게 넘어갑시다. 나 열 네살 맞다니까? 맞아요! 응? 아저씨가 왜 날 믿어야 하냐고요? 봐요! 나 예쁘잖아. 나처럼 예쁜 사람 말을 안 믿으면 누구 말을 믿는다는 거예요! 뭐요? 그냥 돈 내라고? 아이 아저씨 왜이래요. 나 가난한 배낭여행자라고요. 나 예쁘잖아요. 나같이 예쁜 사람 부탁을 안 들어주겠다는 거예요 지금?"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문법을 무시한 영어로 따발따발 쉬지도 않고 말 해대는 게 불쌍했는지, 아니면 얼굴하나 붉히지 않고 '나 예뻐! 그러니까 보내 줘!'를 말해대는 나의 넉살에 질렸던 건지, 통과시켜주기 전까지는 절대 자리를 뜨지 않을 듯 한 똥배짱에 탄복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250루피를 아꼈다는 것 아니겠는가!

즐거운 맘으로 아미르 싱 게이트를 통과! 디와니암(샤 자한에 의해 건설된 왕의 공식 접견실)의 규모에 한 번 놀라고, 디와니카스(역시 샤 자한이 건설한 개인 접견실)는 디와니카스인지도 모르고 통과했다가 나중에 가이드북을 뒤적여보고 나서야 아, 거기가 디와니카스였구나!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대했던 무삼만 버즈.

우리나라말로 번역하자면 포로의 탑이라는 뜻이란다. 샤 자한이 마지막 8년간을 유폐당해있었던 장소라는 말을 가이드북에서 읽었던 터라 조금은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타즈마할에서 샤 자한의 '몽니'와 잔혹성에 질리기도 했고, 그렇게 타즈마할을 건설한 데에는 왕비에 대한 사랑 이외에도 국력을 과시한달지, 자신의 권력 과시한달지 하는 이유도 많이 섞여있었을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 자한이 그 왕비, 뭄타즈 마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추측 해 보는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우리집 돈 많아요~ 나 잘났어요~ 라고 과시하는 사람이라도 별 것 아닌 일에 쓸데없이 돈을 퍼붓지는 않을 테고, 그러니 뭄타즈마할의 죽음 또한 '별 것 아닌 일이 아니었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 포로의 탑 '무삼만 버즈'에서 바라본 타즈마할
지금은 있지도 않은 샤 자한에게 감정이 이입되어서 그랬던 것이었을까? 무삼만 버즈에 서서 바라보는 타즈마할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어쩌면 병들고 늙었던 그에게는 유폐되었다는 사실보다, 뭄타즈 마할이 그 순간 그의 곁에 없다는 사실이 더 쓰렸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한참을 서서 타즈마할을 바라보았다는 위치에 서서 바라보는 타즈마할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인 샤 자한을 유폐시키고 그렇게도 못살게 굴었다는 아우랑제브 역시, 필요에 의해 샤 자한을 유폐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를 그렇게 미워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샤 자한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무덤 가까운 곳에, 그래서 그 사람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에 유폐시켰다는 것, 그리고 샤 자한의 사후엔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뭄타즈마할의 옆에 안장시켰다는 것. 그 자체가 어쩌면 아우랑제브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고.
 
한국에 돌아온 후 만났던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그 녀석은 '너무 로맨틱한 생각 아니야?' 라고 타박을 주었지만, 나는 왠지 타즈마할이나 샤 자한, 무삼만 버즈 등의 키워드가 떠오를 때 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같이 생각나곤 한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봄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아직 사춘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열여덟 여학생이라는 점에서 해답을 찾기로 했다. 아름다운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무슨 일이던지 아름답게 해석하면, 마음고생할 일은 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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