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42) 한성훈, 《전쟁과 인민-북한 사회주의체제의 성립과 인민의 탄생》, 돌베개, 2012.

한성훈, 《전쟁과 인민-북한 사회주의체제의 성립과 인민의 탄생》, 돌베개, 2012. 출처=알라딘.
한성훈, 《전쟁과 인민-북한 사회주의체제의 성립과 인민의 탄생》, 돌베개, 2012. 출처=알라딘.

1945년 8월, 일본 군대의 무장해제라는 명목으로 그어진 지도상의 38선은 그로부터 3년 후 분단의 상징선이 되었다. 전쟁은 휴전선으로 분단을 공고히 했고, 언어의 분단마저 가져왔다.  분단 체제에서 남한은 ‘국민’, 북한은 ‘인민’으로 불리고 있다.    

저자는 휴전선 너머의 북한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국가의 구성원이 되었는가? 즉 어떻게 사회주의 국가의 ‘인민’이 되었는가? 북한 주민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인민’이라는 정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 것인가? 저자는 이를 질문하고, 다양한 자료 분석을 통해 답해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국민과 인민 개념은 분단국가 수립과정에서 정치적 함의를 지닌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남한과 북한은 법률적 사회적 용어에서 각각 국민과 인민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분열상을 보여주었다. 인민은 냉전과 이데올로기 대립, 남북 분단의 우리 현대사와 맞물려 있는 말인데 북한은 인민 개념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건설의 정치적·계급적 주체로 상정했다. 국가권력에 조속되는 국민이 아니라 "인간 평등의 원초적 정서"가 포함된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대중적이고 기층민중적인 성격"과 "반엘리트주의적 동원에 활용"되었다. 그렇지만 북한이 이런 인민적 의미를 실현하는 데에는 현재까지 실패하고 있다.
  - 《전쟁과 인민-북한 사회주의체제의 성립과 인민의 탄생》, 32-33쪽

인민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북한 사회주의 국가의 ‘인민’이 해방과 정부수립, 한국전쟁을 거쳐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인민이라는 근대국가의 정치적 주체가 등장하는 출발점은 해방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이 연구는 북한의 전쟁 수행과 인민들의 체험, 그리고 생산관계의 변화와 계급투쟁 등을 고찰함으로써 이 과정을 살펴보았다. 전쟁의 결과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 성립이 완료되는 1950년대 말까지 인민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았다.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 보면 해방 후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한 북한에서 국가공동체 구성원의 범위나 기준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식민지에서 광복이 된 이후 새로운 국가의 구성원을 규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과거청산이었다.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선시해야 하는 기준은 계급관계였다. 국가건설의 주역은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 계급으로 한정되었고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친일세력이나 지주에게는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북한 정권은 주민감시와 통제, 규율을 강화하고 내부의 적과 반동분자를 처리해나갔다.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통합과 배제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북한에서 교육은 인민형성의 가장 일반적인 과정으로서 국가 성원을 동일한 집단으로 만들고 본질적인 자격을 부여하는데 있다. 집단주의 교육과 애국사상은 해방 후 교육의 기초가 되었는데 사회주의와 민족교육이 그 핵심이었다. 인민들은 정치사상교육과 학습 등 각종 규율과정에서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자각적 인식, ‘인민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한국전쟁이라는 전시는 무엇보다도 군사적 전일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지배체제를 요구했다. 전시권력은 통치자의 체제유지나 새로운 재생산을 위한 헤게모니 창출 노력과 함께 미시적인 수준에서 인민정치를 확대한다. 북한에서 전쟁을 치르기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과 주민학살, 피점령, 전시규율, 반혁명 상황 등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 사회변화, 주민들의 삶과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개전 초기 남한지역 대부분을 점령했던 북한은 미국이 참전한 이후 38도선 이북지역을 오히려 점령당함으로써 체제가 몰락할 위기를 겪었다. 이 위기는 해방 이후 성취한 친일반민족자 청산과 토지개혁, 남녀평등법 시행 등 민주개혁 조치를 위협하는 반혁명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 정권은 주민감시와 통제, 규율을 강화하고 내부의 적과 반동분자를 처리해나갔다. 더불어 군인과 로동당(원)을 중심으로 민청과 사회단체 등을 통해 중앙권력을 말단 지방에까지 침투시키는 전일적 체제를 구축해나갔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이데올로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되는 인민의 모습에 반영되었다. 

전쟁과 전후 경제복구, 농촌협동경리 과정을 거치면서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의 계급적 성분 강화가 절실해졌다. 계급성분을 핵심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혁명애국열사 유가족과 제대군인, 인민군 후방가족, 피살자 가족 등으로 당성과 국가관이 철저한 부류들이다. 이 계층은 한국전쟁 과정에서 로동당으로 진입하거나 인민의 모범으로 선전되었다. 그러나 이 성분별 집단의 인민형성 과정은 위계화 되어 진행되었다 최상층에는 혁명열사 유가족과 군인가족이, 다음으로 로동당원과 군인집단, 여성을 포함한 노동자와 농민이 가장 일반적인 인민을 구성했다.

‘인민’이라는 북한의 정치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은 국가건설과 사회주의 체제의 수립이라는 비교적 긴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이루어졌다.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 계급의 확대, 생산관계의 협동화 그리고 인민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인민의 구체적인 모습 또한 형성되었는데 해방과 정부수립, 전후 사회주의적 생산관계가 완료되는 1950년대 말에 이르러 일정한 정형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계급투쟁과 생산관계의 협동화 완료 그리고 공산주의 교양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면서부터였다. 

저자는 또한 북한 인민의 특징은 개인적 주체를 억압하고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었다고 비판한다. 근대 보편적이면서 진보적 개념을 가진 ‘인민’이 북한에서는 정치적 동원의 대상이자 피동적인 존재로 변해왔다. 인민은 수령의 지도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변질되었고, 당-국가 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 속에 침전되었다. 권리의 주체이자 주권자로서 존재하기 보다는 집단으로 대중화됨으로써 체제의 강고한 토대를 구축하게 만들었다. 

이 시간 북한사회에서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인민’의 언술은 공허한 메아리일 것이다. 무산대중의 나라를 주장했던 그 곳은 도리어 그들을 지배 권력의 부속품으로 대상화 했다. ‘인민’의 소중한 개념은 이제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 양정심

현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전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학술위원장.
전 고려대, 대진대,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며 제주4.3과 한국전쟁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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