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43) 누르딘 파라, 《지도》, 이석호 옮김, 인천문화재단, 2010.

누르딘 파라, 《지도》, 이석호 옮김, 인천문화재단, 2010. 출처=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1. ‘다시,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겸허한 물음 앞에

서울의 은평구에서 주관하는 2019년 제3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아프리카 소말리아 태생 ‘누르딘 파라’(Nurddin Farah, 1945~)가 결정되었다. 통역사인 아버지와 구술시인인 어머니와 함께 소말리아에서 보낸 그의 유년시절은 그의 문학적 원체험으로 자리하고 있다. 언어의 문제는 모든 작가에게 해당되는 것이지만, 특히 그에게는 그의 조국 소말리아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 직접적으로 부딪친 각종 폭력과 고통의 문제(민족, 인종, 부족 등)가 언어의 차원으로 한층 섬세히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소말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안팎의 분쟁에 대한 문학적 저항과 폭력에 대한 문학적 치유에 혼신의 힘을 쏟는 누르딘 파라의 이번 수상은 ‘다시, 문학이 무엇인가’란 겸허한 물음을 던진다.

그는 전 세계에 빼어난 작품을 많이 발표했는데, 오늘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1986년에 발간된 장편소설 《지도》이다. 

2. ‘응시’와 2인칭의 서술전략: 소말리아의 중층적 객관현실

《지도》를 읽는 것은 기존 낯익은 서구식 근대소설과 충돌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새롭기도 하면서 낯선 측면은 2인칭을 서술전략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같은 2인칭의 서술전략화를 서구의 미의식으로 파악한 나머지 (탈)모더니즘으로 이해해서는 번짓수를 잘못 짚어도 여간 잘못 짚은 게 아니다. 때문에, 작가가 2인칭을 서술전략화한 의도를 섬세히 읽어내는 일이 긴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2인칭으로 불리우는 작중인물 아스카르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아스카르는 “빼어난 상상력의 소유자로 조숙함의 징후를 풍성하게 지니고 있”는데(19쪽), 특히 아스카르만이 볼 수 있는 “어떤 계시”(22쪽), 즉 ‘응시(gaze)’의 권능을 갖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스카르의 ‘응시’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해야 한다. 아스카르의 ‘응시’를 서구의 합리적 이성의 ‘시선(see)’과 착종해서는 곤란하다. 아스카르의 ‘응시’에 대해 작가는 “중층적으로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시간성과 역사성을 함축한 직관”(12쪽)으로 파악한다. 이것은 존재를 분석 가능한 대상으로 나눠 인식의 유무에 따라 진리를 탐구하는 분별지(分別智)와 구분된다. 특히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명확한 구별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와 구분된다. 더욱이 계산가능성과 유용가능성의 합리적 준거틀을 갖고 세계를 파악하는 것과 구분된다. ‘응시’는 어떻게 보면, 서구가 발견하여 맹신하고 있는 합리적 이성의 문제틀과 전혀 다른 진리 탐구의 방법이자 태도이며, 그러한 차원에서 세계의 미를 탐구한다. 

여기서 이 ‘응시’의 권능이 아스카르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어린 아스카르를 친엄마처럼 정성스레 키워준 미스라에게도 ‘응시’의 권능이 있다. 미스라는 마치 주술사처럼 죽은 짐승의 내장을 통해 타자들의 일을 ‘응시’하는가 하면, 아스카르의 눈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응시’한다. 

서구의 합리적 이성의 측면에서는 이 ‘응시’를 모종의 마법적 주술로 치환해버리기 십상이다. ‘응시’ 자체만을 놓고 볼 때 이러한 판단을 하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쉽게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아스카르와 미스라의 ‘응시’에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끊임없는 전쟁과 피난 그리고 이산의 역사”(29쪽)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이다. 《지도》는 1977년 아프리카의 오가덴(Ogaden) 지역을 중심으로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아스카르와 미스라는 이 참혹한 전쟁의 와중에서 “파편화된 육체의 이야기들!/파편화된 이야기의 육체들!/상심한 가슴과 상한 영혼에 관한 이야기들!”(305쪽)을 보고 들어온 터에, 그들의 ‘응시’는 전대미문의 참상과 비극을 견뎌내는 정치적·윤리적 항체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이 ‘응시’는 역사와 현실을 비껴난 신비의 영역에서 마법화된 주술이 아니라 도리어 역사에 대한 핍진한 태도로 갈갈이 찢겨지고 흩어지고 소멸해간 뭇존재들의 슬픔을 위무해주는, 아프리카 특유의 ‘리얼리즘적 주술’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지도》의 주된 무대인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동북부에 위치한 이른바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우는 지역으로, 인도양과 홍해의 입구인 아덴만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지정학적 이유로 19세기 후반부터 서구의 식민 통치 아래 서구의 이해관계(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 따라 영토가 분할 점령당하였는가 하면, 1960년 소말리아공화국으로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군정파(軍政派)들의 심각한 대립 갈등으로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는 실정인데(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옛 소련의 간섭), 아스카르와 미스라는 이 같은 역사적 정황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응시’한다. 말하자면 그들의 ‘응시’는 이 복잡한 현실을 분석적 태도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작게는 소말리아가 처한 현실, 넓게는 아프리카가 처한 현실을 중층적으로 이해하고 그 문제의 해법을 서구의 일방통행식 이성에 의한 게 아닌, 아프리카가 지닌 문화와 역사에 기반한 ‘응시’를 통해 해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스카르의 비범함을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준다. 아스카르는 주변 인물들에게 고백한다. 아스카르의 섹스와 젠더는 남성인데, 그의 몸 안에 여자가 살고 있으며, 심지어 월경(月經)을 한다고 말한다.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스카르의 이러한 면모를 정신분열증 및 젠더적 측면으로 파악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아스카르의 이러한 정신분열증을 치유의 대상으로 설정하거나 성(性) 정체성의 측면에 초점을 맞춰서도 곤란하다. 아스카르가 실감하는 이 신체의 비정상적 징후야말로 이 지역의 격렬한 내전과 그로 인한 끔찍한 참상은 물론, 아스카르의 ‘응시’에 함축된 소말리아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 식민침탈로 인해 분할된 영토, 그래서 소말리아 인접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진 이산 등을 은유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게 온당한 해석이 아닐까. 말하자면 작가는 아스카르의 비범함 그 자체를 통해 소말리아의 중층적 현실을 매우 효과적으로 서사화하고 있다.

3. 아프리카 서사문학의 매혹: 구술성과 문자성의 공존

《지도》가 지닌 서사적 매혹의 비의성은 아프리카의 구체적 삶에 밀착한 소설의 양식이 구술성과 문자성의 오묘한 관계로부터 생성되고 있다. 가령, 아스카르의 비범함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목은 이러한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료적인 이놈의 나라가 요구하는 그 어떤 신분도 너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스카르! 네 이름 가운데 있는 ‘스’자를 사람들은 부드럽게 발음했다. 괜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카’자의 ‘ㅋ’은 발설되지 않은 소리의 비밀 속에, 웅크리고 있는 감미로운 혀 속에 휘감겨 있었다. 아스카르! ‘르’자의 ‘ㄹ’은 반나절 동안 신나게 풀을 뜯은 뒤 뜨거운 모래 위를 뒹구는 소와 같았다. 아스카르! (27쪽)

소말리어로 ‘아스카르’를 부를 때 조음기관을 통해 만들어지는 소리로부터 비롯된 느낌과 이미지가 아스카르의 비범성을 암시한다. 아스카르의 비범성은 ‘응시’와 양성(兩性)의 공존을 통해 뚜렷이 부각되는데, 여기에는 이처럼 ‘아스카르’를 소리로써 호명할 때 지니는 어떤 비의성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대지, 바람, 물, 그리고 살아있는 뭇존재와 공명(共鳴)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생성된다. 

《지도》에서 이 같은 면은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에티오피아인 미스라는 비록 소말리아인 아스카르를 친자식처럼 돌보며 소말리아 땅에서 살고 있으나 소말리아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드러내거나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상처받은 자신을 추스를 때마다 에티오피아어인 암하릭어를 몰래 읊조리곤 한다. 오가덴 지역을 중심으로 치열히 벌어지는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의 전쟁의 틈새에서 미스라는 소말리아에 살면서 남몰래 에티오피아어를 읊조렸던 것이다. 전쟁의 난민이나 다름없는 미스라에게 에티오피아어는 그녀의 현존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구술성은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삶 그 자체이다. 한때 서구 제국의 언어가 아프리카의 구술성을 외면하고 심지어 폭압적으로 금기하고 한갓 노예의 언어로서 취급을 하였으나, 아프리카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비전승한 구술성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지도》에 등장하는 아프리카의 서사문학적 산물들―신화, 전설, 민중가요의 중요성과 가치가 작중인물들에 의해 주목되는 것은 문자성을 주축으로 한 서구 제국의 언어 질서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정치적 욕망을 쉽게 간과할 수 없다. 또한 아프리카 스스로 근대국가의 기틀을 정비하고자 하는 정치적 욕망도 저버릴 수 없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서구의 식민 통치를 받은 아프리카는 신생 독립국가의 기틀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그들 특유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일방통행식의 특정한 문자성을 고집하기 어렵다. 물론 아스카르의 삼촌 힐랄은 근대국가의 공식 언어를 자리 잡기 위해 소말리어의 공식어 사용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문자성으로서 소말리어 사용이야말로 아프리카가 그토록 희구하던 근대국가의 정치적 욕망을 실현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리 간단히 파악할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지도》의 경우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해 근대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하루 속히 내전이 종식되고 근대국가의 체제 정비 일환으로 구술성보다 문자성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작가가 작중인물들의 말과 행동 사이에서 경계하고 있듯, 작가는 문자성의 맹목이 가져올 위험을 또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때문에, 작가는 아스카르와 미스라를 통해 구술성의 가치 또한 소중히 부각시킨다. 이에 대한 사례를 들 수 있는데, 아스카르는 화물차를 타고 가는 도중 소말리아인들이 1950년대에 애창되던 민중가요를 우연히 듣는다. 아스카르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현실과 이상 사이에 위치한 완충지대를”,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249쪽)는다. 처음 듣는 소말리아의 민중가요인데도 불구하고 아스카르는 그 노래를 듣고 잠자는 자신의 영혼을 깨운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영토가 분할돼 점령당하던 1950년대에 널리 불리운 민중가요가 아스카르의 영혼을 새삼스레 깨운 것은 지난 날 식민의 예속적 삶을 살아온 역사의 기억을 불러일으켜 그 고통을 재현함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치욕의 역사를 밟지 않기 위한 작가의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4. 평화적 연대의 창조적 지도 그리기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곰곰 숙고해보았다. 인도양과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아프리카는 지구 문명의 주요한 교차지로서 외래 문화가 두 대양을 통해 밀려오더니 서구 식민지로 전락한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들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구획된 경계선은 곧바로 신생 독립국가들을 구분하는 국경선으로 고착화되었다. 그렇게 아프리카 지도 위에는 반듯한 선들이 그어졌다. 아프리카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서구에 의해 반듯한 국경선들이 지도 위에 그려지는 과정에서 아프리카 약소자들의 신체, 즉 “몸이라는 지도”(156쪽) 위에는 온갖 언어절(言語絶)의 식민의 아픈 상처와 연루된 끔찍한 기억들이 깊게 패어 있다.

이 같은 지도에 아프리카의 삶은 구속돼 있다. ‘검은 대륙’이란 말에 숨은 오리엔탈리즘은 아프리카 지도 위에 고스란히 객관의 탈을 쓴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 누르딘 파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다른 작가들, 그리고 비서구의 작가들에게 문제적인 것은 서구중심의 지도에 끌려 다니는 게 아니라 비서구 작가들의 평화적 연대에 의한 창조적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이 지도를 갖고 우리는 삶의 아름다운 가치와 행복을 찾아나설 수 있으리라.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