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제주 동부지역 시간당 80mm 기록적 가을 폭우에 농가 '망연자실'

제주시 구좌읍에서 만난 농민 신현민 씨는 폭우로 물에 잠겨버린 당근 밭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구좌읍에서 만난 농민 신현민 씨는 폭우로 물에 잠겨버린 당근 밭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9월 이 맘때 이렇게까지 비가 퍼부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차라리 싹이 트기 전에 내리던가, 당근이 좀 더 자란후에나 오던가 하지... 휴...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한숨만 나옵니다."

때아닌 가을 폭우. 발만 동동 굴러야하는 농민들은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2일 제주 전역에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제주 동부지역에는 이날 오전 시간당 80mm를 훌쩍 넘어선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한 당근밭에서 만난 농민 신현민씨는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자신의 농작물 곁을 쉽게 뜨지 못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든 진흙밭 속에서도 행여나 건질만한 당근이 남아있을까 이곳저곳으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밭의 절반 이상은 물에 완전히 잠긴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파종된 어린 당근 싹들이 빗물에 쓸려나가 한 해 농사를 고스란히 망치게 된다. 수해를 이겨내 기어코 뿌리를 내리더라도 자라난 당근은 제대로 크지 못해 상품성을 잃게 된다.

폭우도 폭우지만, 시기가 참 고약하다. 당근은 현재 한창 발아가 이뤄지는 시기다. 구좌읍 곳곳의 당근밭에서는 2~3cm 남짓한 갓 발아한 당근 싹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금만 이른 시기에 비가 왔다면 재파종 할 기회가 있었고, 조금만 늦춰졌다면 당근이 어느정도 자란 상태에서 스스로 버텨낼 힘을 지닐 수 있었다. 하필 당근을 솎아내는 작업도 이뤄지기 전인 초가을에 느닷없는 비가 내리면서 농민들 속만 멍들고 있다.

기록적 폭우로 거대한 호수처럼 변해버린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당근밭. ⓒ제주의소리
2일 내린 가을장마 폭우로 최근 파종이 이뤄진 구좌읍 일대의 당근밭들이 대부분 쑥대밭으로 변해버렸다.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뿌리까지 드러낸 발아된 당근밭 모습 ⓒ제주의소리

신씨는 "당근이라는 작물이 꽤 억센 작물이긴 하지만, 밭에 고여있는 물이 이미 발목까지 차올랐다. 이 정도면 흙이 쓸려 내려갈 수준이어서 당근이 버텨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며 깊은 한숨을 내몰아 쉬었다. 

구좌읍 일대의 평대리와 송당리 등 1만평 가량의 토지에 경작 중이던 신씨의 당근밭과 감자밭은 70% 이상이 물에 잠겨있는 상태였다. 

땅 속에서 자라고 있어야 할 감자 역시 허연 속알맹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파헤쳐진 상태였다. 감자도 당근보다 파종시기가 조금 늦긴하지만, 현재 발아가 한창 이뤄지는 시기다.

신씨는 "우리 밭만이 아니다. 곳곳의 밭이 다 물에 잠겨있는데, 대책이 없다는 것 때문에 미칠 노릇이다. 이 기세로 이번 주말에 또 태풍이 온다는데 비가 내리면 동쪽지역 농민들은 죄다 망하게 생겼다"며 물에 잠긴 밭을 한참동안 응시했다. 

기자가 둘러본 구좌읍 일대의 밭이란 밭은 해안가와 중산간 할 것 없이 죄다 물에 잠겨있었다. 가뜩이나 월동무, 감자, 당근 등 뿌리작물을 재배해 온 제주섬 동쪽 지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폭우가 쉽사리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제주는 남쪽해상에 위치한 정체 전선에서 동반된 비 구름대가 발달하면서 강한 비가 쏟아지고 있다. 이날 오후 1시 40분을 기준으로 제주도 동부 지역에는 호우경보가 대치 발효됐다.

1일부터 오늘 오후 3시 현재까지 구좌 263.5mm, 송당 287.5mm, 교래 250.0mm 등을 기록했다. 시간당 80mm를 넘어선 기록적 폭우다. 윗세오름 97.0mm, 성판악 181.0mm 등 산간지역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피해를 추스를 겨를도 없이 이번 금요일 오전부터는 또다시 제13호 태풍 '링링'이 제주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태풍의 오른쪽에 제주가 위치해 있어 비뿐만 아니라 강한 바람의 영향도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비로 농작물 뿐만 아니라 주택·도로 등이 침수되는 등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2일 새벽 0시부터 낮 12시까지 총 82건의 급수지원과 3건의 안전조치가 이뤄졌다. 침수차량에 운전자가 고립되는 인명사고도 4건에 달했다.

제주시 관계자는 "비가 어느정도 그친 후 농작물 피해 신청 접수를 받게될 것"이라며 "구좌읍이 평소 물이 발 빠지는 지역이긴 하지만, 이번주 내내 비가 오면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어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농민 신현민 씨가 구좌읍 자신의 밭에서 물에 잠긴 당근씨앗을 살펴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기록적 폭우로 물에 잠긴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당근밭. ⓒ제주의소리
제주시 구좌읍에서 만난 농민 신현민 씨는 폭우로 물에 잠겨버린 당근 밭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구좌읍에서 만난 농민 신현민 씨는 폭우로 물에 잠겨버린 당근 밭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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