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45. 존 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민음사.

출처=알라딘.

가끔 재미있게 보는 TV 프로그램 중에 <나 혼자 산다>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비교적 젊은 연예인들이 혼자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예능이다.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세태에 맞게 최근에 가장 인기 있는 예능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프로그램 제목은 ‘나 혼자 산다’이지만 출연자들은 혼자 사는 모습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혼자 사는 즐거움을 보여주는 것 못지않게 혼자 사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출연자들이 ‘무지개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여럿이서 모여 함께 놀고 정을 나눈다. 그러니 혼자 살기보다 차라리 함께 살기, 즉 사회적 유대에 관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최근 생물학이나 심리학에 관한 대중적인 저술들을 보면 ‘협력의 진화’나 인간 종의 ‘사회성’을 다룬 책들이 무척 많이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의 사유는 이제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슨)의 경쟁 시대를 지나 협력하는 사회적 인간의 시대로 ‘진화’해온 것일까. 심리학자 존 카치오포와 과학 대중서의 편집자이자 협력작가인 윌리엄 패트릭의 공저인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겠다.

존 카치오포는 ‘사회신경과학’이라는 생소한 연구 분야를 창시한 학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한다. 사회신경과학(social neuroscience)이란, 쉽게 말하자면, 사회심리학 연구에 신경과학(뇌과학)의 방법론을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실제로는 신경과학은 물론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생물 심리학, 동물 행동학 같은 다양한 과학적 연구 성과들도 상당히 많이 동원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에 관한 과학적 탐색이라고 하면 사회신경과학이나 저자의 연구를 잘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가운데서도 이 책은 ‘사회신경과학으로 본 인간 본성과 사회의 탄생’이라는 책(번역서)의 부제처럼 ‘외로움의 과학적 탐색’에 바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책의 제목이 묻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인류의 조상은 서로 간의 사회적 유대감에 의지해 안정을 도모했고, 그 결과 대대손손 자신의 유전자를 전파할 수 있었다. 그런 보호망이 손상되거나 사라졌을 때를 빨리 알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외롭다’라는 느낌이었다.” (16쪽)

인류의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을 떠올려 보자. 사자 같은 위협적인 맹수들이 주변의 인간을 그저 점심 도시락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사자의 이빨과 위력에 비해 인간은 너무도 힘이 약하고 이렇다 할 몸의 무기도 없었을 터.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무리에서 멀리 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행동은 바로 사자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외로움이란 바로 그런 위험 신호와도 같다. 그렇게 보면 사회적 유대감이란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단언할 수 있다. 

무리에서 고립된 채 의기양양하게 맹수나 그 밖의 여러 외부 환경의 위협을 무시했던 사람들은 아마도 후손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무리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협력하면서 함께 사냥을 하고 음식을 나누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조상이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될 때 불안감과 외로움을 느끼며 다시금 무리로 돌아가 안정을 회복하고자 했을 것이다. 인간은 함께 있게 되면 즐거움을 느끼고 안전한 느낌이 들도록 진화했다. 이 같은 설명이 이 책의 핵심 주제이고, 진화론적 측면에서 바라본 외로움의 정체이다.

물론 외로움을 더욱 잘 느끼는 사람이 분명 있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 활동이 거의 없어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이라도 어울리지 못하면 괴로워하는 사람도 많다. 친밀한 인간관계의 욕구가 강한지 약한지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비교한 연구로 알게 된 결과, 유대감은 유전자의 기여도가 48%라고 한다. 다시 말해 나머지 52%는 우리의 주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 주변 환경이란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유대감을 향한 인간의 유연함 역시 적응을 통한 생존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에서 설명한 사회적인 사람과 외로운 사람을 비교한 내용. 출처=알라딘.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는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서 외로움이 어떻게 우리의 심신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증언한다. 책의 차례 뒤에 곧장 등장하는 인포그래픽은 외로운 사람이 정서적, 심리적 측면만이 아니라 건강과 경제적 측면, 그리고 사회적 만족도에서도 사회적인 사람에 비해 얼마나 손해를 보거나 어려움을 겪는지 보여준다. 너무 적나라해서 자칫 고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할까봐 걱정이 될 지경이다.

나 또한 외로움의 폐해에 대해 깨닫게 된 일이 있다. 어느 날 혼자 사는 처지의 어느 선배와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된 것 한 가지. 혼자 살게 되면서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면 이상하게 더 허기진다는 사실. 단순히 저녁을 먹은 지 오래 되어서만은 아니라는 게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연구 결과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더 많이 섭취할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울 때 뇌의 쾌락 중추에 달콤한 물질을 주입해 그 고통을 달래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외감으로 고통을 받도록 유도된 참여자들은 ‘초콜릿 쿠키’ 평균 아홉 개를 먹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이 일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참여자들은 절반 정도만 먹었다. 사회적 단절감이 비만을 초래하는 음식에 대한 식욕을 돋우었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소외감은 쿠키의 맛도 더 좋게 느끼도록 했다.” (64쪽)

이런 비슷한 심리학 실험을 한 연구들이 하나 둘이 아닌 모양이다. 심지어, 미래에 외롭게 될 것이라는 심리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자기 조절의 어려움이 높아져 사고력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크기까지 했다. (61쪽) 소외감을 느끼도록 유도된 참여자들은 타인을 가혹하게 평가하거나, 벌칙을 더 많이 가했다. 또한 소외감을 느낀 사람들은 기부를 하지 않고 타인을 돕는 일에도 꺼렸다. 그들은 비합리적이고 자멸적인 위험을 무릅쓰거나, 시험 준비보다는 재미있는 놀이에 탐닉했다. (66쪽) 일시적인 실험에서는 안심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고독에 노출된 사람들이 걱정인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러한 실험 결과들을 보고 외로운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역시 삼가야한다.)

우리가 예전보다 ‘더’ 외로워진 까닭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을 상품으로 보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우리는 사회적 유대감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대형교회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도 그런 만연한 고독과 고립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교회를 제외한다면 사회적 교감을 나눌 만한 곳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오늘날 ‘고독 퇴치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높아진 관심 역시 고독이 한몫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외로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인간이 아닌 것을 의인화하려는 경향이 더 크다고 한다. 요즘엔 ‘귀여움의 과학’이란 게 있어 엔지니어들은 아기처럼 껴안고 싶어지는 로봇을 만들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외로움을 지우기 위해 사이버공간에서 아바타로 만나고, 동물과 로봇들에게도 절박하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 모든 현상들 배후엔 혼자서는 살 수 없게 태어난 인간의 본성이 자리한다. 우리가 무력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의존하면서 어울려 살 수밖에 없다는 인간 본성의 또 다른 핵심을 말해준다.

▷ 노대원 제주대 교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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