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취임 1주년 맞는 제주도립미술관장 최정주 

“3개월이 됐다 싶으면 6개월, 6개월이다 싶으면 9개월에 어느새 1년이 후딱 지났네요.”

오는 10월로 취임 1주년을 맞는 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은 지난 시간을 정신없이 보냈다고 돌아봤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10월 8일 임용돼 업무 파악을 할 새도 없이 곧바로 도의회 행정사무감사를 맞았다. 자신 만의 계획을 그려보기도 전에 냉정한 ‘행감’ 발언대에 서야했으니 혹독한 적응기를 보낸 셈이다.

추석 명절을 앞둔 지난 10일 <제주의소리>와 만난 최 관장은 “살림하고 정리정돈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보람되고 좋은 시간이었다. 직원들과 서먹한 것도 전혀 없고 다들 한 식구가 됐다”고 자신 있는 미소를 보였다. 

최 관장이 새로운 미술관 안주인이 됐을 때는 여러모로 미술관 사정이 복잡할 시기였다. 관장과 몇몇 직원들의 갈등, 국제행사 ‘비엔날레’ 추진 등 공·과 모두 상존하지만 결과적으로 논란이 불거진 상태였다. 더욱이 관장 입장에서는 본인 의지를 반영해 내년 사업 계획을 만드는 게 아닌 이미 만들어진 내년 살림살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전반적인 업무 파악에 이어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계획하고 비엔날레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면서 행정사무감사 지적 사항도 처리하는 복합적인 일이 맞물렸다. 기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시간이었다”는 말에 묵직함이 실린 이유다. 

그래서 일까. 인터뷰에서 한 번 트인 말의 물꼬는 좀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할 말 많은 시간이었다'는 무언의 하소연처럼 느껴졌다.

10일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가진 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 ⓒ제주의소리
10일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가진 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 ⓒ제주의소리

최 관장은 자신이 있는 동안 ‘공공성’, ‘전문성’, ‘특성화’라는 줄기를 최대한 든든하게 세우는데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한해를 건너 뛴 제주비엔날레는 여전히 빠듯한 일정이지만 예술감독과 준비 대행사를 투명하게 선정한 만큼 만전을 기하겠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 누가 관장으로 오든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현재 학예 인력 수로 공립 미술관을 꾸리는 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라면서, 인력 충원을 필수 불가결한 과제로 꼽았다.

더불어 빡빡한 업무에 시달리지만 “자연이 좋고 사람도 좋다. 기회가 된다면 더 제주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는 제주살이 소감을 덧붙였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 10월 7일이면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소감이 궁금하다.

A. 일 년이 후딱 지나갔다. 취임 한 달 후에 기자간담회를 열어서 언론과 자주 소통하겠다고 했는데 할 말이 없다. 3개월 됐다 싶으면 6개월이 지나있고. 6개월이다 싶으면 9개월에 어느새 1년이다. 살림하고 정리정돈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보람되고 좋은 시간이었다. 직원들과 서먹한 것도 전혀 없고 다들 한 식구가 됐다. 제가 임용된 시기가 지난해 10월 8일인데, 일주일 뒤에 도의회 행정사무감사가 시작했다. 2주일 만에 업무파악을 마치고 행감 발언대에 올라갔는데 계획이든 뭐든 간에 혼나고 시작했다. (웃음)

Q. 취임 기자회견에서 ‘기본 틀을 갖추는 것이 현재 도립미술관의 급선무’라고 밝혔다. 지금은 어떤가.

A. 전반적인 업무 파악에 이어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계획하고 비엔날레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면서 행정사무감사 지적 사항도 처리하는 복합적인 일이 맞물렸다. 기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시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술관 소식지 ‘널른팡’ 최신호에 미술관 10주년을 기념하고 정돈하면서 소감을 적어봤다. (널른팡 링크 http://jmoa.jeju.go.kr/kor/index.php/contents/news/ebook )

내가 생각하는 미술관의 비전은 크게 세 가지 숙제로 나뉜다. 시민 친화적인 공공성, 제주 미술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전문성, 그리고 섬이라는 성격에 부응하는 특성화이다. 
  
Q.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한다.

A. 일단 그 전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제주도를 찾아갔는데 열심히 읍소한 덕분인지 예산을 배정해줬고 인원도 많지는 않지만 한 자리 ‘티오’(table of organization, 정원)도 늘어나 올해 하반기에 들어올 예정이다. 비엔날레 전담 조직도 필요한데 현재는 학예사 1명이 지원근무 형식으로 배속돼서 비엔날레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사실 없는 인력에 미술관을 꾸려가려니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한다. 나도 관장 직을 내려놓고 콘텐츠 만드는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한 배를 탄 입장에서 서로 당기고 밀기를 잘하는 중이다.

물론 고비도 여러 번 있었다. 지난해 관장으로 온 시기가 내가 예산을 계획하는 때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10주년 사업을 하기도 마땅하지 않았고, 종합해 볼 때 10주년인 올해 예산이 오히려 평년보다 더 힘든 구조였다. 추경을 포함해서 제주도에서 예산을 많이 확보해준 덕에 10주년 기념 사업들을 할 수 있었다. 

먼저 지난 전시를 통해 설명하고 싶다. 이번 전시(제주작가 조명전 <99+1>)이 끝나면 <프렌지 모던>이라고 국제전을 진행한다. 그전에는 미디어 설치를 포함한 인터렉티브 성격의 복잡 장르 전시 <생·활>(生·活)과 국립현대미술관 순회전 <내가 사랑한 미술관-근대의 걸작>을 열었다.

<생·활> 전은 시민들에게 꽤 반응이 좋았다. 10년이라는 미술관 역사가 쌓였듯이, 작가들의 매 순간 일상과 도민들의 매 순간이 쌓여서 역사가 됐고 하나의 시너지(synergy)가 됐다는 의미를 담았다. 나아가 도민의 손을 잡고 미술관이 함께 가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제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미디어, 영상 작품들이 호응을 얻었다. 많이 올 때는 하루 800명도 넘게 찾았다. 이런 점에서 도민들이 제주도립미술관에 무엇을 기다렸는지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제주도립미술관의 전시 '생-활'에서 소개한 정세용의 'Constellation', 2013, 철판, T5라이트, LED라이트, 250x130x60(5pcs).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제주도립미술관의 전시 '생-활'에서 소개한 팀보이드의 '원을 그리는 기계', 2018, Pojection, Mechanical system.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다음 전시인 <근대의 걸작>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해 개관 80주년을 기념하면서 진행. 한 특별전이다. 본 전시는 80점 수준이었는데, 나는 100점으로 늘려 국내 근대미술사를 최대한 보여주자고 판단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개관 이래 이정도의 대용량 반출이 없었다고 놀랐지만 난 좋은 기회라고 봤다. 근·현대 명작을 도민들에게 보여주자는 기회는 다행히 호응이 좋았다. 도민뿐만 아니라 국내 미술사 전공 학자들도 여럿 찾아와 호평했다. <근대의 걸작>은 소장품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시를 보신 분은 기억날 수도 있겠지만, 전시장에 ‘소장품은 미술관의 얼굴이며 미래 세대에게 넘겨야 할 가치이자 문화적 자긍심’이 문구가 있었는데 내가 써놓은 글귀다. 

참고로 얼마 전, 미술관 차원에서 공개 작품 수집을 진행했다. 3년 만인데 어마어마하게 신청이 들어왔다. 현대미술관도 합쳐 445점 가량 신청했다. 공개 수집을 추진하면서 ‘많이 기다렸다’, ‘기회를 줬다’는 의견을 들었다. 작품 질도 나쁘지 않았다. 동시대 미술에 대해서 여러 장르를 소화해 호흡하는 소장품을 구입했는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도립 10점, 현대 15점 포함 25점을 선택했다.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제주도립미술관의 전시 '근대의 걸작'에서 소개한 고희동의 '자화상', 1915, 캔버스에 유채, 61x46cm.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제주도립미술관의 전시 '근대의 걸작'에서 소개한 박광진의 '토끼장', 1962, 캔버스에 유채, 112.1x145.5cm.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99+1>은 제주작가들이 존재했기에 미술관도 있었다는 점을 부각하며 준비했다. 작가들의 공이 크고 앞으로 미술관 발전을 위해서는 제주 작가들과 같이 가야하는데, 잔치처럼 가능하면 많은 작가들이 초대하자는 뜻에서 99라는 숫자를 붙였고 ‘+1’은 관람객을 상징한다. 그동안 미술관 업무에 매진하느라 제주미술계 사정을 잘 몰랐다. <99+1>를 기회 삼아 제주 작가들과 소통하며 유대관계에 기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제주미술사를 제대로 다루진 않았기에 아쉽다는 의견도 있는데, 앞으로 조사·연구를 기반으로 제주미술을 조명하려 한다. 잔치를 한 번 했으니 이제는 깊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마지막 기념전인 <프렌치 모던>은 국제전이다. 서양미술의 기본이 되는 핵심 작품을 가져온다. 1850년부터 1950년까지 근대 미술의 혁명기에서 가장 ‘핫(Hot)’한 프랑스 파리 작품들이 뉴욕 브룩클린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 소장품 중 일부가 제주에 온다.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과 일반인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시민 친화적인 작품도 한 번 했고, 한국미술사도 살펴봤고, 제주미술도 근간을 조명했으니 국제전까지 마무리하면 10주년 전시 사업은 고루고루 아우른 셈이다.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제주도립미술관 전시 '99+1'에서 소개한 강요배의 '운광(雲光)', 2019, 181.5x259cm, 캔버스에 아크릴릭.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제주도립미술관 전시 '99+1'에서 소개한 변시지의 작품 '풍파', 1986, 145x112cm. 캔버스에 유화출처=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

Q. 하나씩 돌아보니 의도를 담은 전시 구성이다. 

A. 중요한 것은 호응이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제대로 의도가 전달됐는지가 중요하다. 도민과 관광객들이 전시 콘텐츠를 공유하면서 자기 것이 됐는지가 관건이다. 내밀하게 확인하진 않았지만 미술관 관람객 수는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내년으로 앞둔 비엔날레도 잘 하면 더욱 호응이 좋으리라 본다.

여러 전시가 있겠지만 미술사를 중심으로 한 전문성, 시민친화는 미술관 운영의 핵심 가치로 꼭 챙겨 가져갈 것이다. 제주미술사는 아직 정리가 많이 안 돼 있다. 기본적으로 미술사는 공부를 해서 들어가야 하기에 쉽지 않다. 여기에 DB(Datebase)도 구축해야 한다. 원로 분들은 연세도 있으니 구술 같은 작업도 필요하다. 조사·연구를 통해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데 단기간에는 어려우니 인력이 필요하고… 늘 인력 문제에 부딪힌다. 

Q. 현재 도립미술관 학예 인력은 몇 명인가?

A. 3명에 비엔날레 지원 단기 인력까지 포함하면 4명이다. 올해 연말경에 1명이 추가 배치돼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비엔날레부터 내년도 계획 등 가장 바쁜 시기인 현재는 학예연구과장 포함 다섯 명이라는 큐레이터 인원을 아무리 들여다보고 고민해도 한계가 분명하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추진해야 하는데, 조사·연구라는 기본조차 참 힘들다.

시대가 빠르게 바뀌고 시민들의 요청이 많아지는 시대에 미술관은 내용·기능·역할은 때로는 깊게 때로는 넓게 유동적으로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시민 친화와 전문성은 관장이 바뀌더라도 반드시 도립미술관이 가져가야 한다. 이 커다란 줄기가 빠지면 공립미술관으로서 역할은 상실하기 마련이다. 얼마나 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임기 2년이 끝나는 내년까지 이런 숙제를 잡고 미술관을 안정화하는 것을 내 임무라고 여긴다.

Q. 10년이 지났지만 도립미술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보인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제주 작가들과 더 많이 만나고 더 고민해야 하는데 아직 그 부분이 미약하다. 그래서 지난 8월에 열린 제주미술협회 제주미술제 컨퍼런스에도 참석하고 여러 자리를 마련하려 고민 중이다. 물론 한 기관의 요청만 들을 수는 없고 전체 흐름 속에 무엇이 필요한지 접점을 찾는 시기다.

일단 기본적으로 제주 작가들을 안에서만 움직이게 하지 말고 외부로 보냈으면 좋겠다. 제주라는 공간은 제주 작가들에게 안정적이다. 서로 도우면서 기회를 만드는데, 다 좋지만 여기에만 있으면 한 단계 이상의 발전은 힘들다. 개인적으로 작가는 성공도 중요하지만 실패의 경험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혼자 고민해야 성장하는 존재들이다. 타인과 섞이면서 때로는 고독하게 어려움도 겪고, 열심히 노력해도 뜻하는 대로 이루지 못하는 현실과 부딪히면서 상처가 나면 왜 났는지도 판단하고 스스로 진단하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해외가 아니어도 국내 다른 도시에 제주 작가를 보내는 계기를 만들고 싶은데, 이곳저곳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 우리가 작가를 보내는 것은 괜찮은데 받을 수가 없다. 이런 교류는 주고받아야 하는데 우린 예산도 작가를 받을 공간도 없다. 당장 만들어진 것은 없지만 제주 작가를 위한 고민을 계속할 예정이다. 다른 기관과 함께 하는 방안도 찾을 수 있겠다. 내년에 시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Q. 도립미술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A. 관장 공모에 참여할 때는 ‘여기에 가야겠다’고 작정하기 보다는 박사 논문을 마치고 나서 그때까지 쌓은 경험을 기관에서 종합적으로 사용할 기회를 찾았다. 나이나, 경력으로 볼 때 운영·경영에 대해 익힐 시기가 됐었다. 그래서 제주도에 대해 잘 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들어와서 부딪혀보니 솔직히 말해 미술관 인력 문제가 현실적이지 않다. 다른 지역 공립 미술관을 보면 학예부서 안에도 전시 1팀, 2팀이 있을 정도다. 학예사 3명이서 미술관을 꾸려갔다는 말에 너무나 놀랐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예산이 아무리 많아도 구현하지 못한다. 큐레이터는 연구해서 그 결과를 전시로 보여주고 동시에 수집도 하는 '연구직'이다. 그런데 도립미술관 큐레이터는 연구할 시간이 없다. 전시 하나를 마칠 때마다 소진해서 쓰러지고 쉴 새 없이 다음 전시를 준비한다. 동시에 교육도 하고 작품 수집도 한다. 사실상 부서 개념이 없는 구조다.

10일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가진 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 ⓒ제주의소리
10일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가진 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 ⓒ제주의소리
관장실 벽을 보면 월별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제주의소리
관장실 벽을 보면 월별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제주의소리

‘지금까지 그랬다’고 여길 게 아니라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천재 관장이 와도 소용없다. 미안한 말이 될 수 있지만 미술관의 수준도 나아지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컨텐츠, 비전을 이야기한들 인력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이다. 그래서 발언대에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미술관 인력 문제를 강조한다. 내 생각에는 한꺼번에 인력을 대거 보강해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갈한다면 미술관이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계속해서 볼멘소리를 하니까 제주도에서도 예쁘게 보진 않는 것 같다. (웃음) 그러나 내 역할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Q. 제주비엔날레 준비는 어떤가?

A. 학예연구과장 자리가 잠시 공백이 생기면서 관련 조례 발의가 늦어졌다. 비엔날레를 전담할 인력이 여전히 없으니 지난 번처럼 용역 방식을 쓸 수밖에 없다. 예술감독은 조례에 근거해서 비엔날레 자문위원회가 다 함께 의논해서 결정했다. 비엔날레 내용은 철저히 예술감독이 만들고, 관장은 행정 지원만 맡는다. 역할을 분명히 구분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조화하면서 비엔날레에 대한 우려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내년 5월을 목표로 하지만 변동 가능성도 있다.

Q. 최정주가 그리는 도립미술관의 모습은 무엇인가?

A. 간단하다. 전문성과 시민 친화적이라는 기본 가닥을 굳건히 잡고, 동시에 제주 작가들을 돕는 기관이다. 

Q. 제주 생활은 어떤가?

A. 중산간에 집을 마련해 살고 있다. 자연이 정말 좋고 사람도 좋다. 기회가 된다면 더 오래 머물고 싶다. 

10일 '제주의소리'와 인터뷰를 가진 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 ⓒ제주의소리
'99+1' 전시장 입구에 선 최정주 관장. 뒤로 보이는 인물 그림은 99명의 제주작가들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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