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47. 홍지석, <북으로 간 미술사가와 미술비평가들 : 월북 미술인 연구>, 경진출판, 2018.

출처=알라딘.
홍지석, '북으로 간 미술사가와 미술비평가들 : 월북 미술인 연구', 경진출판, 2018. 출처=알라딘.

이여성, 한상진, 김주경, 김용준, 강호, 박문원, 정현웅, 조양규. 

여덟 명의 공통점은 20세기 초중반을 한반도에서 살아낸 미술인이라는 점이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질 때, 다수의 사람들은 제 살던 곳에서 살았지만, 그럴 수 없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위의 인물들은 북한으로 넘어간 월북 미술인들이다. 이 책은 월북 미술인들이 해방공간에서, 또는 분단 이후 북한에서 발표한 미술사와 미술비평 텍스트들을 조명하고 재해석한 글들이다. 

예술학을 전공한 필자는 한국 근대미술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강의를 해온 바, 이 책은 미술사의 영역에 해당하는 역사적 자료들을 모아서 분석하고 비교 검토하여 한명 한명의 미술인들의 글들을 면밀하게 다룬 것으로서, 미술사의 틀을 넘어서는 연구서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학과 미술사는 학문적 방법론이 워낙 달라서 양자 간의 틀을 넘어서기란 그리 쉽지 않은데, 이 대목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10여년간 자료를 모으고 다듬어온 필자는 북한문화연구라는 큰 틀 아래 미술문화, 특히 월북 미술인들의 예술 창작과 비평적 인식을 들춰봄으로써 근대미술사 연구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주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월북 미술인들은 화가와 디자이너, 무대미술가 등으로 활동한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미술비평과 미술사연구자 역할을 했던 이들이다. 이 책은 이들의 작품보다는 글 작업에 초점을 맞췄다. 그것은 월북 미술인들이라서 작품을 접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기도 한데, 따라서 이 책은 자연스럽게 비평에 대한 비평, 연구에 대한 연구로서 메타비평으로서의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이 가운데 가장 늦게 월북한 조양규는 재일교포로서 일본 화단에서 전후 리얼리즘의 주여 작가로 조명받았던 화가인데, 월북 이후 그의 작품과 글들을 토대로 1960년대 이후 북한 사회의 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이 책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월북 이전과 월북 이후의 작품과 텍스트를 분석하여 그 차이를 읽어냈다는 점이다. 수십 년 동안 월북이라는 금단의 언어 때문에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던 존재들을 낱낱이 호출하여 온전하게 재조명했다는 데 있다. 인물에 대한 관심 자체를 터부시하거나 월북 이전의 작품과 비평만을 다루었던 불구의 상황을 극복한 것이다. 그것은 개별 월북 미술인들에게 한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인물과 작품, 비평 하나하나에는 분단 이전과 분단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상이 오롯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20세기 한반도는 읽어내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와 관점을 제공한다. 

물론 저자가 주목한 월북 이전과 이후의 비교를 통하여 읽어낸 변화상은 동일성이나 이질성과 동질성을 동반한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을 읽어내는 일은 곧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분별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실 우리는 북한사회의 내면을 잘 알지 못하면서 뭉뚱그려서 정치 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북한 사회가 단일한 가치아래 통일된 의식과 정서를 가진 폐쇄적인 사회로 굳어졌다는 인식은, 설령 그것이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 하더라도, 북한 사회의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지 않은 상태라면, 여전이 불구의 편견이거나 왜곡일 가능성이 크다. 

이 대목에서 저자의 탁견이 빛나는 것은 월북미술인들이 북한 사회에서 좌절하거나 절망하여 제 역할을 못했을 것이라는 편견을 상당부분 불식시킨다는 점이다. 저자의 연구 결과는 월북 미술인들이 월북 이전, 즉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보여준 자신들의 입장과 견해를 월북 이후에도 지속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스스로 세운 월북 이전의 생각과 감각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새로운 사회 건설에 주역으로 동참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가운데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했지만, 그동안 월북 이후의 행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대목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주목했다.

바야흐로 한반도의 남과 북이 화해와 상생, 평화공존의 새 길로 나아가는 일대 전화의 시점이다. 심지어 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도래할지에 대해 아무도 예견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로 극변의 정황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이 연구서가 오늘날 더욱 소중한 이유는 바로 남과 북이 갈라져 살아온 긴 세월에 대해 심층적인 연구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학자로서 북한문화 연구를 지속해왔고 그 결과의 하나로 해방 전후의 시각예술 또는 시각문화에 관한 깊은 성찰을 길어 올렸다는 점에서 이 책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한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경기문화재단 '평화예술대장정' 프로젝트 총감독 겸 정책자문위원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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