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연극협회 제주도지회 창작 연극 '섬에서 사랑을 찾다'

17일 오후 3시 '섬에서 사랑을 찾다'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17일 오후 3시 '섬에서 사랑을 찾다'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와 한국연극협회 제주도지회(이하 제주연극협회)가 만든 연극 <섬에서 사랑을 찾다>가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도 제주 관객을 만났다. 실존 인물인 홍윤애, 조정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줄거리는 그대로다.

1777년(정조 1) 9월 11일 노론 벽파에 속했던 조정철(趙貞喆)이 제주로 유배돼 제주성 안에 있던 신호(申好)의 집에 귀양지를 마련했다. 홍윤애는 조정철의 귀양지를 드나들며 시중을 들었고, 1781년(정조 5) 2월 30일에는 조정철의 딸을 낳았다.

1781년 3월 소론의 김시구(金蓍耉)가 제주목사로 부임했다. 노론의 조정철 집안과는 할아버지 때부터 대립했던 김시구는 제주에 도착하자 조정철을 죽일 뜻을 갖고 죄상을 캐기 시작했다.

김시구는 홍윤애를 참혹하게 고문해 조정철의 죄상을 캐고자 했지만, 홍윤애는 모든 사실을 부인했고 끝내 자신의 죽음으로 조정철을 변호했다. 김시구는 죄상을 밝힐 증거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을 죽인 것을 은폐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유배인이 정조 시해 음모를 꾸민다는 장계를 올렸다.

조정에서는 제주순무안사시재어사(濟州巡撫按査試才御使) 박천형(朴天衡)을 제주도로 파견해 조사했지만 아무런 죄상이 드러나지 않았다. 조정철은 무혐의로 풀려나 1782년(정조 6) 1월 정의현으로 이배돼 그곳에서 9년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1790년(정조 14) 9월 추자도로 이배돼 13년의 세월을 보냈다. 1805년(순조 5) 귀양에서 풀려나고 관직도 복귀됐다.

조정철은 다시 기용된 지 7년 만인 1811년(순조 11) 제주목사 겸 전라방어사가 되어 제주에 부임하게 됐다. 자신을 위해 죽은 홍윤애의 무덤을 찾았고 자신의 명의로 묘비를 세웠으며 딸도 만났다.

- 출처 :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집필자 홍순만)

작품은 위 설명에 나오는 두 인물의 일대기를 차근차근 재현하는데 집중한다. 풋풋한 18세 홍윤애(배우 고지선)에게 뜻밖의 인연 조정철(이승준)이 찾아온다. 조정철에 붙은 대역죄인이라는 딱지 때문인지 첫 만남은 무섭고 낯설게 느껴지지만 어느새 사랑으로 이어지면서 아이까지 태어난다. 무자비한 신임 제주목사 김시구(이창익)의 탄압에도 의리를 지킨 홍윤애는 끝내 목숨을 잃지만, 그의 절개는 노년 조정철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섬에서 사랑을 찾다>는 약 240년 전 이야기를 관객들이 보다 가볍게 접하고자 여러 장치를 추가했다. 

1000년 구상나무에 깃든 구상낭할망·하르방 신(진정아·오상운)이 남녀를 이어준다는 판타지적인 설정, 서로 마주볼 때마다 부끄러워하며 손발이 오글거리는 분위기, 신나는 수다와 곡소리를 장착하고 극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아줌마 3인방(양순덕, 강종임, 고가영)과 아전(이병훈) 등은 관객에게 웃음과 여유를 선사한다.

작품 말미, 홍윤애는 제주목사에게 시달려 만신창이가 된 조정철을 모른 채 하면 큰 위협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망설임 없이 돌보면서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조정철이 제주에서 역모를 꾀했다고 증언하라’는 김시구의 회유를 거부하고, 이내 뒤따르는 고통스러운 고문에도 굴하지 않으며 “기억해 달라. 당신(조정철)의 삶은 나의 죽음”이라는 당부를 남기고 끝내 눈 감는다. 

‘김시구는 홍윤애를 참혹하게 고문해 조정철의 죄상을 캐고자 했지만, 홍윤애는 모든 사실을 부인했고 끝내 자신의 죽음으로 조정철을 변호했다’는 활자 기록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 할 의지와 사랑을 <섬에서 사랑을 찾다>는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특히, 조정철을 대역죄인으로 둔갑시켜 죽이려 하는 제주목사 김시구는 공권력의 무자비함을 실감케 한다. ‘산에 불을 지르고 내려오는 이를 모두 죽여라. 모두 반역자들이다’, ‘너 하나 죽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대사에서 변방의 고통스러운 숙명을 체감해야 했던 제주섬의 아픔들이 얼핏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조정철-홍윤애에 이어 갓난아이와 홍윤애 어머니까지 괴롭히겠다는 제주목사와 판관, 그리고 ‘없는 죄도 만든다’며 공권력의 무자비함에 떠는 주민을 보면서, 70곳이 넘는 무차별적인 압수수색에도 명확한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고 가족까지 압박해 대상의 숨통을 조이는 최근 작태가 자연스레 겹쳐보였다.

올해 <섬에서 사랑을 찾다>는 지난해보다 더 다양한 배우 구성으로 무대를 완성했다. 물론 연극협회장이 속한 가람의 비중이 제일 높았지만 극단 세이레, 퍼포먼스단 몸짓, 파수꾼, 예술공간 오이 등 다른 극단 배우들도 참여했다. 

홍윤애(배우 고지선), 조정철(이승준)은 초연과 그대로지만 악역 김시구는 조성진에서 이창익으로 바뀌었다. 조연이나 제작진에서도 일부 변화가 있었다. 초연 당시 공동 연출이었던 고동원은 단독 연출자로 총 지휘에 나섰다. 사단법인 국악연희단 하나아트의 연주는 ‘라이브’의 매력을 여실히 증명했다. 제주 안의 크고 작은 극단과 연극인들이 힘을 합치는 모습은, 민관(제주연극협회-제주시)이 함께 제주소재 창작연극을 개발한다는 사업 취지에 잘 어울린다.

다만,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차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배우 동선과 대사 모두 다음이 궁금한 호기심을 주기 보다는 충분히 예상되는 단조로움이 강했다. 아줌마 3인방의 재치 넘치는 연기가 그나마 분위기를 환기시켰지만, 김시구 등장 이전까지 흐름은 마치 고요한 물가를 보는 듯 했다. 일대기를 충실하게 따르는 진행이라면, 어느 요소라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는 생각이다. 

홍윤애와 조정철이 마주보며 서로 부끄러워하는 장면은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식상함을 줬다. 정조(고승유)를 암살하려는 자객과 신하(전혁준)의 격투신이나 포졸이 홍윤애를 고문하는 장면이 보다 역동적이면 관객에게 흥미롭게 다가오겠다는 사족도 더해본다. 17일 첫 공연에서 1분 가량 이어진 배경 화면 오류는 ‘옥의티’로 남는다.

앞서 말했듯이 <섬에서 사랑을 찾다>는 협회와 행정, 그리고 제주 연극인들이 다 함께 완성했다는 의미가 크다. 하나의 작품에 여러 극단 배우·제작진이 모이는 구성은 향후 탄생할 가칭, 제주도립극단의 활동을 일부 상상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열린 사고다. ‘제주소재 창작’이라는 틀은 비단 옛 고전이나 고정 레퍼토리인 해녀에 국한하지 않는다. 근현대사를 비롯해 현재 제주가 처한 문제까지 충분히 아우를 수 있다. 동시에 극본·연출·연기 등 여러 면에서 보다 젊고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낸다면, 제주 연극의 힘을 한층 더 키우는 계기로 발전하지 않을까. 

지난해 초연 예산은 1억원, 올해는 더불어-놀다 연극제, 대한민국 문화의 달과 맞물려 예산이 1000만원 넘게 줄었다. 1억원은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제주소재 창작연극 개발사업이 창작극이 메말라 가는 제주 연극계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제주 사회에 울림을 던지는 연극 예술이 탄생하는 계기로 발전하길 관객의 한 사람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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