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48. 백남룡, '60년후', 한웅출판, 1992.

사진=고명철. ⓒ제주의소리
사진=고명철. ⓒ제주의소리

1. 한국사회에 소개되는 북한문학

우리는 북한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북한문학 관련 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북한문학에 대해 문외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외한이기는커녕 오랫동안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후 서로 적대 관계를 유지해오면서 북한문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지니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흔히들 북한문학을, 북한 체제를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어용문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규정한다. 물론, 어느 면에서는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도 알듯이, 북한 사회는 체제 유지를 위해 북한 주민을 지배하는 현실 정치의 위력이 강하다. 그 과정에서 문학이 정치에 예속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북한문학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듯, 이러한 북한문학 자체를 반(反)문학 및 비(非)문학으로 재단 짓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적 인식으로만 북한문학을 너무나 안이하게 판단하는 셈이다. 사실, 이 짧은 대중 지면에서 이 점에 대한 논의를 상세히 펼칠 수는 없으나, 이것만은 상기하고 싶다. 우리의 현대문학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서구에서 발전시켜온 문학적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북한문학의 경우 북한 정권 초창기와 1960년대 중반 이전까지를 제외한 그 이후의 문학 동향을 살펴볼 때 북한 자체의 문화예술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우리의 문학적 인식만을 갖고 북한문학을 일방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북한문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보탤 뿐이다. 

사실, 한국사회에는 1980년대 후반부터 간헐적으로 북한문학이 한국 대중에게 소개되면서 북한문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선 이후 남북 관계의 진전에 따라 다양한 북한 작품이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 북한의 작가들 중 백남룡은 북한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다. 1992년에 그의 중편소설 <벗>이 처음으로 한국사회에 소개되었고, 지난 해 다시 그 작품이 새로운 모양새로 출간되면서 우리에게 널리 회자되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백남룡의 장편소설 <60년후>는 1992년에 <벗>과 함께 한국사회에 출간된 적이 있는데, <벗>이 그 당시 대중적 관심이 집중된 터라 상대적으로 대중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후>는 북한문학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데 <벗> 못지않게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2. 북한사회의 공업화에 매진하는 <60년후>

<60년후>의 핵심 줄거리는 이렇다. 

30여년 동안 제조업 공장의 지배인직 마감을 앞두고 있는 최현필은 심각한 고민거리가 있다. 그는 지배인으로서 퇴직하기 전까지 공장을 가동시키는 데 중요한 보일러를, 저열탄 보일러로 개조하여 공장의 생산력을 증대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이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그동안 온갖 기술적 노력을 통해 저열탄 보일러 개조를 시도했으나 여러 난제들로 인해 개발 성공을 거두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퇴직을 얼마 안 남겨둔 최현필이 이토록 저열탄 보일러 개조에 힘을 쏟는 데에는, 그가 몸을 담고 있던 이 공장은 “주민들의 식생활을 책임진 공장”(146쪽)으로, 공장의 생산력을 증대시킴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좀 더 풍족한 식생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그의 간절한 욕망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마음 편히 퇴직할 수가 없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임기 안에 보일러 개조를 성공하고 싶다. 설령 성공하기 힘들다 하더라도 공장 동료들과 후임이 자신의 뜻을 이어받아 저열탄 보일러로 개조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의지는 공장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는가 하면, 심지어 보일러 개조에 힘을 쏟는 보일러공 아들이 보일러 사고를 당하는 등 크고 작은 문제에 봉착한다. 

이렇듯이, <60년후>를 관통하고 있는 주요 문제의식은 공장지배인 최현필이 공장의 생산력 증대를 위해 보일러 시설 개조를 둘러싼 공장 노동자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우리가 우선 주목하는 인물은 최현필인데, 퇴직을 앞 둔 시점까지 공장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모습은 작품 속에서 마침내 퇴직을 보류하게 되고, 바로 그 공장에서 ‘명예 지배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출발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최현필은 “60년 후!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인생말년의 아름다운 노래를!”(263쪽) 다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작중에서 시당집행위원회는 최현필이 30여년 동안 공장 지배인으로서 헌신은 물론, 퇴임 무렵까지 공장 시설 개조를 위한 노력에 열중하는 모습 속에서 그의 뜨거운 열정과 전문가로서 경험을 다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렇듯이 최현필을 중심으로 한 이 작품은 북한사회의 공업화를 향한 단면을 말해준다. 최현필이 힘주어 직접 강조했듯이, 보일러 시설 개조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북한이 공업화에 얼마나 박차를 가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사례다. 공업화의 목적은 북한 주민의 식생활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한 것임을 이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최현필의 노력을 한층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작중에서 젊은 부기사장이 보일러 개조를 하는 것보다 고열량의 원자재를 사용하자는 제안에 대해 최현필은 그것보다 궁극적으로 기존 시설을 혁신적으로 개조함으로써 값비싼 원자재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것이 바로 국가의 공업화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현필과 관련하여 우리가 각별히 유의해서 살펴볼 게 있다. 작중에서 최현필은 일제 식민시대와 한국전쟁을 두루 거친 역사적 경험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다시 말해 최현필은 북한 정권이 들어서기 전 민족의 큰 수난과 역경을 몸소 경험한 세대로서 북한 정권 초기부터 북한사회의 공업화에 헌신해온 인물이다. 그러니까 최현필은 북한의 공업화에 매진해온 북한 정권의 기반을 이룬 세대의 전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은 냉혹하여, 현재 이 세대의 몫은 분명 다 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 있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작중에서도 동료들과 부하 직원들에게서 곧잘 목도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북한사회의 중요한 면이 간과될 수 없다. 최현필을 ‘명예 지배인’으로서 다시 현재적 공업화에 참여하도록 한 것은, 북한사회의 도덕적 및 역사적 정당성을 이룬 세대는 북한사회의 정치적 입장으로부터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작중에서 이렇게 그려지고 있는 최현필은 북한사회에서 어떠한 인간을 아름다운 인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이러한 최현필을 두고, 북한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당성에 충실한 인간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현필을 이것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인간의 어떤 진실한 모습과 진정성을 지니고 있다. 가령, 최현필은 그의 아들과 부기사장 딸이 사랑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이 맺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부기사장은 이러한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고, 부모들끼리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한다. 이에 대해 최현필은 “사람의 감정은 누르고 지배하지 못해”(156쪽)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부기사장에게 하면서, 젊은이들의 자발적이고 순연한 사랑의 감정을 왜곡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깨우친다. 

3. 최현필이 바라는 북한사회는 도래했는지

분명, <60년후>에 등장하는 최현필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 겉으로 볼 때, 최현필은 북한사회의 공업화에 전심전력을 쏟는 북한 당 관료의 한 전형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리하여 북한 주민의 행복한 삶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사회의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것은 북한식 사회주의적 근대를 위한 공업화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인바, 자신과 공장에 위선적이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하는 노동의 진정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들 사이의 순연한 사랑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최현필의 이 같은 모습은 생경한 것일까? 작가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구체적 현실을 외면할 수 없듯, 작가 백남룡은 <60년후>를 통해 북한사회의 현실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최현필이 간절히 욕망하듯, 북한 주민의 식생활이 조금이라도 향상되는 공업화가 지속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고 지배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별다른 문제없이 통용되고 있는지…….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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