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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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광의 제주 산책] 13. 일미진중 함시방일미진중 함시방 일체진중 역여시

소설(小雪)을 이틀 앞둔 새벽, 한라산 꼭대기에 눈이 하얗게 내렸다. 올 겨울 들어서 처음 보는 눈이다. 

한라산에 눈이 내렸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다. 이른 봄, 서귀포에 정착해 아침에 반사하는 바다 물결과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는 정취와 열정. 그리고 주변에 4.3사건의 이야기를 문화원장에게 들으면서 발로 찾아가며 제주사람들의 삶이 어쩌면 나의 조그마한 일기가 시작됐었다.

햇볕이 따스한 날, 추사 김정희 유배지의 수선화가 흐드러지게 핀 뜰과 바람, 햇살에 고즈넉이 도란도란 흔들리는 모습도 정겹기만 했다.

봄바람이 싸하게 불어 대면, 성산 일출봉 주변은 유채꽃이 노랗게 아이들처럼 손사래 치고 울긋불긋 선글라스를 걸친 외부 손님들이 유채꽃 가운데에 들어가 서로 몸을 기대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마음이 한가한 날, 어딘가 오름에 올라 저 멀리 한라산을 중심으로 주변에 수많은 오름들의 광활한 자태는 한 폭 꿈속과 같은 스펙트럼이다.

그것뿐인가. 

5월의 흥미진진한 각종 꽃들의 잔치와 귤꽃들의 향기에 취해 있을 즈음 6월부터는 시작되는 남풍들은 비와 바람 그리고 태풍으로 처마 밑에 밀려왔다. 

본격적인 바다 바람은 밤새 지붕을 걷어 올리기도 하고, 창문을 들썩 거리기도 했으며 빗방울이 창틀에 스며들어 벽에 물이 흘러들어오기도 했다.

사진=정은광. ⓒ제주의소리
사진=정은광. ⓒ제주의소리

주변에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올해 태풍이 다른 해 보다 유난히 심했고 비도 많이 왔다 한다.

서귀포 주변에는 귤 농사가 으뜸이라 귤밭에 몰려든 바람이 자꾸 치대고 보면 어린 열매들이 상처를 입고 늦가을에 귤을 수확할 때 1등품의 귤이 적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가끔 신도님들이 가져다주는 귤들이 하늘의 농사와 농민의 마음 그리고 손과 땀이 젖은 열매이며 자연이 만들어주고 사람이 정성을 쏟은 결과물이라는 것도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11월 하순, 이제부터 귤을 열심히 수확하고 육지나 타지로 귤을 보내는 본격적인 수확철이다. 내년 1월까지 차례로 귤을 딴다고 하니, 지금이 가장 바쁜 일철이다.

육지에 사는 내 친구는 귤을 사먹기만 해서 귤꽃 향기가 온 마을을 은은하게 적신다느니 또는 귤나무에 귤이 주렁주렁 달린 사진을 보내면 신기하다고 한다. 마치 쌀밥을 먹으면서도 쌀 나무 벼가 어떻게 생긴 지 모르는 유치원 아이들과 같다.
비가 너무 내려도 당도가 떨어지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도 태풍으로 가지가 뒤틀려서 상처를 받고 또 9월 10월에 햇살이 쨍쨍하게 비치고 은연중에 비가 한 번씩 내리고 이런 조화가 이뤄져야 귤농사가 풍년이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세상사는 것은 모두 깨달음의 시간과 공간들이다.

일미진중 함시방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 含十方) 일체진중 역여시(一切塵中 亦如是).

법성게의 구절처럼, 즉 작은 것에는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 속에 고스란히 숨어 있는 진리가 되며, 세상의 모든 이치는 크고 작은 것과 함께 모두 연관되어 있다는 말씀이 여실하다.

세상사가 복잡하다는 것도 알고 보면 각자 마음자리가 분분하다는 것이며, 이것이 마음자리인 ‘心地’(심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는 원래 요란한 것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수행함으로써, 자성의 참되고 고요함을 스스로 체득하자고 하는 것이 원불교 수행법의 하나이다.

이제 새벽 기도시간에 찬바람이 불어 한 겹 옷을 더 껴입을 수밖에 없다.

# 정은광은?

정은광 교무는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학(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불교 사적관리위원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며 중앙일보, 중앙sunday에 ‘삶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년간 우리 삶의 이야기 칼럼을 집필했다. 저서로 ‘그대가 오는 풍경’ 등이 있다. 현재 원불교 서귀포교당 교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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