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리’ ‘차바’, 너무 비싼 수업료
태풍 ‘나리’ ‘차바’, 너무 비싼 수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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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시선] 한천 복개 구조물 철거 추진에 부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6년 태풍 차바 내습 당시 범람 피해를 입은 제주시 용담동 한천 복개구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7년 9월16일 제주 섬을 강타한 태풍 ‘나리’는 그야말로 잔인했다. 마치 악몽을 꾸는 듯 했다. 

목불인견. 곳곳에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하천 흙탕물이 공중으로 솟구치고, 차량들이 둥둥 떠다녔다. 도로가 끊기고, 교량이 맥없이 무너졌다. 급류에 밀려온 토사는 천지연폭포에 일종의 섬 하나를 만들었다. 제주도 전체의 3분의 2인 18만가구에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 하천 범람으로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날까지 멀쩡했던 어느 지인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대낮이었기에 망정이지 한밤중이었다면…. 상상 만으로도 끔찍했다. 나리는 대한민국에서 제출한 이름이었다. 꽃말이 ‘변함없는 사랑’인 백합의 순우리말이라는데, 너무 야속했다. 

기록적인 폭우 탓이 컸다. 이날 하루에만 420mm(제주시 기준)가 쏟아졌다. 1959년 ‘사라’의 1일 최대 강수량 267.5mm를 훌쩍 뛰어넘었다. 

하늘이 내린 재앙인데 버텨낼 재간이 있었겠나 싶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적정 용량의 배수시설에 대한 고려 없는 팽창 위주의 도시계획, 무분별한 하천정비, 중산간 난개발 등이 빚어낸 인재로 규정했다. 전문가 논리로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 인간에게 자연이 주는 ‘1차 경고’였다. 

당국이 선택한 해법은 저류지였다. 제주시 도심을 관통하는 4개 하천 상류에 저류지 12개를 설치했다. 예산 851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더니, 이제 100년에 한번 발생하는 폭우까지 견딜 수 있게 됐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복개 하천은 9년만에 또 범람하고 말았다. 2016년 10월5일 새벽 태풍 ‘차바’가 덮쳤다. 이번에도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 한천(漢川)이 직격탄을 맞았다. 복개 구간의 아스팔트가 뜯겨져나가고, 차량 30여대가 물에 휩쓸렸다.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나리 악몽’이 옐로카드였다면, 차바에 의한 생채기는 퇴장을 뜻하는 레드카드였다.

두 번의 태풍은 하천 복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복개가 능사가 아니라는, 나아가 가급적 원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인식이 싹 튼 것이다. 

사실 이들 하천은 복개가 추진될 당시에도 우려가 많았었다. 시민사회는 집중호우 때 역류 현상과 함께 도심 하천의 순기능이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주민 편의 보다는 생태 파괴 등으로 잃는게 많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됐다. 

그렇게도 말을 흘려듣더니 당국이 비로소 제대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제주시가 한천 복개 구조물을 철거하기로 한 것이다. 

물난리를 겪은 한천·산지천을 비롯해 병문천, 독사천, 흘천 등 5개 하천은 1982년부터 2004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복개됐다. 복개 구조물은 총 연장 6.25km에 달한다.

우선 철거 대상은 태풍 때마다 쑥대밭으로 변했던 한천교에서 제2한천교까지 300m 구간이다.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을 거쳐 빠르면 올해말, 늦어도 내년부터 공사가 이뤄진다고 한다. 여기에 드는 예산은 300억원. 이중 절반은 국비다. 국비가 없었다면 엄두도 못낼 판이었다. 

참 먼 길을 돌아왔다. 태풍 나리로부터 쳐도, 자연의 경고를 받아들이기까지 꼬박 13년이 걸렸다.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애초 복개를 안했다면 콘크리트를 걷어낼 일도 없었다. 중간에 저류지까지 지었으니 밑 빠진 독에 물(혈세)만 붓고 있었던 셈이다. 누군가 이 과정을 하늘에서 줄곧 내려다봤다면 한심한 인간 군상이 아닐 수 없다.  

제주시의 기본 방침은 5개 하천 복개 구조물 전면 철거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보니 방침만 서있지 추진 시기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철거 후 주차장과 도로가 줄어드는 만큼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다. 용역 과정에서 주민 설명회를 연다고 하니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슬기로운 해법을 찾길 바란다. 

‘반면교사’에게 치른 값비싼 수업료는 이만하면 족하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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