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살아내는 장애인의 ‘통합적 감각-통각(統覺)’
어둠을 살아내는 장애인의 ‘통합적 감각-통각(統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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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56. 손병걸,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애지, 2011.

1.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몹시 힘들고 어려운 한계 상황을 만나 해법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눈앞이 캄캄하다’는 말을 내뱉곤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절망의 사위로 에워쌓인 암담한 상황을 빗대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본다/볼 수 있다’와 연관된 시각은 신체의 감각 기관 중 하나인 눈으로써 대상을 감각한다는 것 이상, 즉 인간의 인지와 실천에 직접 연동돼 있다. 물론, 인간의 인지와 실천에 연동돼 있는 감각이 시각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심지어 이들 감각 너머에 있는 어떤 초월적 감각 역시 인간의 삶과 분리해서 곤란한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널리 알듯이 근대로 접어들면서 이들 감각 중 시각이 광학 기술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다른 감각들보다 우월한 위상을 점유하게 되더니, 심지어 시각을 특권화하고 맹목화하면서 다른 감각을 시각에 복속시키는, 이른바 감각들 내에 위계 질서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감히 알도록 하라’는 근대 계몽이성의 의지가 바탕을 이루는바,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빛을 비춤으로써 어둠의 미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근대 계몽이성의 이분법적 폭력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가 분명히 해둘 점은 시각을 맹목화하는 근대 계몽이성의 이분법적 폭력의 논리이지, 시각과 근대 계몽이성을 막무가내로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를 보다 넓고 깊은 시야로 응시하고 성찰함으로써 야만과 혼돈의 아수라를 부정·극복·해결하려는 욕망과 의지를 갖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인 손병걸의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를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시각 장애인이다. 스물아홉 살에 ‘베체트씨병’을 진단받고 발병 일 년 만에 시력을 잃었다. 시력을 잃기 전 그는 신체 건강한 비장애인으로서 결혼을 하여 딸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베체트씨병’은 청천벽력이었고 시력을 잃은 후 그의 삶은 그의 시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듯 시각 장애인 이전의 삶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고투의 치열한 현장이다. 그것은 시각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과 다른 감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시각 장애 시인으로서 비장애 시인과 다른 문학의 언어를 스스로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 문학이 만나는 세계의 진실은 비장애인 문학의 그것과 때로는 포개지기도 할 것이고, 때로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특이성이 드러나기도 할 것이다.

2.
가령, 손병걸 시인의 이 시집 표제작을 곰곰 음미해보자.

직접 보지 않으면/믿지 않고 살아왔다//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까지/두 눈동자를 굴렸다//
눈동자는 쪼그라들어 가고/부딪히고 넘어질 때마다/두 손으로/바닥을 더듬었는데//
짓무른 손가락 끝에서/뜬금없이 열리는 눈동자//
그즈음 나는/확인하지 않아도 믿는/여유를 배웠다//
스치기만 하여도 환해지는/열 개의 눈동자를 떴다
―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전문

시력을 잃기 전까지 시인도 그렇듯 “직접 보지 않으면/믿지 않고 살아왔”단다. 우리 눈으로 본다는 것이 갖는 시각의 절대성은 근대 과학문명이 지닌 증명의 권위와 맞물리면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진실 혹은 진리와 무관한 영역으로 치부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시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눈을 통한 시각이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리에 닿을 수 없을까. 손병걸 시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눈이 매개된 시각의 절대성으로부터 해방된, 그리하여 눈 없이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여유를 배웠다”고 한다. 그것은 눈으로 볼 때와 다른 “두 손으로/바닥을 더듬”는 “짓무른 손가락 끝에서/뜬금없이” 눈동자가 열렸고, 이제는 어떤 대상을 “스치기만 하여도 환해지는/열 개의 눈동자를” 지닌 것이다. 물론, 시인이 이 ‘열 개의 눈동자’를 어느 날 갑자기 갖게 된, 시쳇말로 득도(得道)한 것은 아니다. 시각 장애인으로서 시인은 일상 속에서 눈으로 보는 것 이외의 다른 감각의 생명력을 한층 발견함으로써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소홀히 간주된 생의 진리를 통각(統覺)하는 환희를 만끽한다. 

가던 걸음 멈추고/몸을 낮추니/이름 모를 풀잎들 날갯짓 소리/출근길 와글와글 풀벌레 소리/시퍼렇게 살아 있다//
더는 흐를 수 없는 물일지라도/아래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끝내는 푸른 몸으로 일어나는 것이어서/제아무리 하찮은 목숨일지라도/그만큼의 소리를 지니고 있었구나!//
내 몸을 관통한 소리 따라/스르르 일어서는 바람,/캄캄한 길 뒤틀린 관절/유쾌한 소리로 일어설 수 있으려니/어둠 속 풀 한 포기라도 괜찮겠다
― '소리를 보다' 부분

아마도, 시력을 잃기 전에는 세상 소리에 이렇게 귀를 귀울이지 않았을 터이다. 설령 귀를 기울였다 하더라도 가청 범주 안에 있는 소리 정도를 들었을 뿐이지, 그 범주 밖 소리는 아예 들을 수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이 된 후 시인은 이 모든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는다. 이 능력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감히 말하건대, 이것이 바로 비장애인 문학과 구분되는 장애인 문학에서 벼리된 이른바 ‘장애 감수성’의 문학 형상화가 아닐까. 그것은 장애인의 여러 감각 기관들이 각기 분리된 채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의 온몸 자체가 감각 기관들 사이의 경계를 횡단하는 하나의 ‘통합적 감각-통각’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분리된 감각으로는 세계의 진실을 온전히 포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비의성을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이 ‘통합적 감각-통각’을 통해 이러한 한계를 거뜬히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각 장애 시인의 “몸을 관통한 소리 따라/스르르 일어서는 바람”이 지닌 ‘통각’이 “제아무리 하찮은 목숨일지라도/그만큼의 소리를 지니고 있었구나!”란 세계의 비의성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어둠 속 풀 한 포기라도 괜찮겠다”는, 근대 계몽이성의 이분법(어둠·밝음, 미개·문명, 거짓·진실)에서 맹목적으로 부정된 ‘어둠’과 ‘어둠 속 존재’에 대한 상투화된 시야로부터 해방된다. 시각 장애인 시인에게 ‘어둠’과 ‘어둠 속 존재’는 문학적 메타포로서 기능을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삶의 실재로서, 그는 이 ‘어둠’과 애오라지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둠’이 그의 삶의 바탕이자 현실이며 현장이기 때문이다(“얼떨결에 뻗은 손/손가락 끝에 닿는/가느다란 꽃대 끝 꽃 한 송이,/어둠을 움켜쥔/뿌리의 힘!”―'검은 꽃' 부분).

3.
이렇듯이 손병걸 시인은 비장애인이 지닌 두 개의 눈동자보다 많은 열 개의 눈동자를 갖고 어둠의 감옥 속에 갇힌 수인(囚人)이기보다 그 어둠을 무화시키고 어둠을 넘어서는 통각의 힘을 통해 장애인의 실존을 살고 있다. 그의 시들은 비단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모두에게 근대 계몽이성의 편견과 맹목으로 왜곡되고 은폐된 뭇존재들의 진리와 진실, 그리고 그것들이 자연스레 지닌 아름다움의 가치를 성찰하도록 한다. 손병걸 시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때론 주체할 수 없는 눈물/때론 환한 웃음 짓는 것/숭덩숭덩 뚫린 몸이 아니면/불가능한 일이겠지//
그래 파이고 뚫리지 않고서야/어찌 애달픈 곡조가 흘러나오겠어/그래 바람 찾지 않는 계곡에/어찌 아름다운 노래가 있겠어//
아무렴 살아 있으니/멈출 수 없는 노래지
― '하모니카 소리' 부분

아마 그럴지도 몰라/한세상 산다는 건/썩지 않을 아픔 하나씩/가슴 속에 꼬옥 끌어안고/아무렇지 않은 듯 발걸음을 내딛는 거
― '새벽비는 그치고'
 부분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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