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43) 바다 앞의 집/ 김병택

돌아오는 않는 이를 기다리는 의자. ⓒ김연미
돌아오는 않는 이를 기다리는 의자. ⓒ김연미

썰물 때는 서운함이, 밀물 때는 풍요로움이 
가슴 언저리에 다가오곤 했다

썰물 때도, 밀물 때도 바다는 
출렁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를 태운 낡은 어선이 바다 한가운데로
미끄러지듯 나아갈 때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손을 흔든 뒤
먼 바다 쪽으로 길고 긴 소망의 줄을 던졌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마당 한 구석에 놓인
평상에 앉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를 기다리며 금성라디오를 들었다

무더운 여름날을 견디던 나는 겨우 열 한 살이었다

- 김병택 <바다 앞의 집> 전문-

바다를 마당에 두고 살아온 한 평생이 불현듯 무너지고 난 뒤,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신 어머니. 바다 아직 저렇게 푸르고, 가끔 배들이 지나가고, 물속을 같이 숨비던 동네 어른들의 숨비소리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도.

이미 부재중이셨던 아버지를 대신해, 동틀 무렵부터 밤늦도록 이어지던 어머니의 노동. 힘듬과 고단함 속에서도 소년은 자라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소년의 짝이 되어 찾아뵈었던 첫인상은 목소리 우렁우렁한 너울성 파도 같은 모습이셨다. 바람불지 않아도 당신 먼저 우주의 리듬에 몸을 맡길 줄 아시는... 

섬에 살아도 바다가 낯선, 중산간 태생인 며느리에게 하루 종일 물질해서 마련한 성게알을 떠먹여 주시던 어머니. 그 성게알의 달콤함이 아직도 입안에서 맴돌다 문득 바다를 향하게 한다. 썰물 때면 먹거리 가득하던 바다. 밀물 때면 알지도 못하는 감정이 마당 앞까지 차오르게 해서 밤잠을 설치게 하던 바다. 나보다 더 예민하게 굴던 파도의 성격을 맞춰가며, 길게 이어지는 숨비소리 사이로 어머니의 숨소리를 골라 보곤 했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당신의 바다 한쪽을 아낌없이 떼어내 내게 나눠주시던 중이셨는데...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기다림을 멈출 수 없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그리움이 깊어진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긴 소망의 줄’이 이 한편의 시로 해서 다시 내 손에 놓여 있는 것이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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