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에서 평화의 미래를 꿈꾸다 ①
알뜨르에서 평화의 미래를 꿈꾸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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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13) 일제, 4.3의 아픈 기억 낙인 찍힌 알뜨르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세 나라 세 섬의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어 이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세 섬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로 국외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어 일어, 영어, 중국어 번역 원고도 동시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알뜨르 전경. 사진=박경훈. ⓒ제주의소리
알뜨르 전경. 사진=박경훈. ⓒ제주의소리

알뜨르는 제주도의 남서부에 위치하여 바다를 바라보는 너른 평원지대를 말한다. ‘알’은 아래쪽, ‘드르’는 들(평원)을 말하는 제주어다. 한라산록 중산간 지대에 비해 낮은 곳에 위치한다 해서 붙은 지명이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항공기지 유적지’이다. 토지는 국방부 소유이며, 이곳의 격납고들은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 2010년 가을 나는 이곳에서 <경술국치 100년 :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라는 개인전을 가졌다. 10개의 격납고 유적과 주차장 부지 등에서 총 11점의 설치작품을 가지고 전시를 열었다.

알뜨르의 경관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다. 광활한 경작지에 드문드문 남아 있는 일제의 콘크리트 격납고들. 그것은 마치 끝끝내 살아남아 무엇인가를 증언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무엇이라 단정적으로 형언하기 어렵지만, 일종의 묵언의 시위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는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기억하니?” 라고 되묻듯 했다. 결국 알뜨르에 들릴 때마다 들었던 이 묘한 느낌은 2010년 나를 평원으로 끌어내었고, 기억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서의 작업을 한 셈이다. 당시 제작한 도록에는 그때의 단상이 실려 있다. 

“더 이상 제로센(Zero-sen)도 없고, 노란 군복의 일본군의 호각소리도 없는, 기억의 흔적만 남은 80만 평의 알뜨르비행장. 이곳에서 우리는 마치 데자뷰 같았던 지난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오키나와가 제주의 데자뷰일 뻔 했던 것처럼, 역사는 반복된다는 고전적인 경구를 떠올리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만일 우리가 지난 역사, 지난 시간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뼈 속 깊이 인식하지 못한다면,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잔해들의 존재는 무의미할 것이다.”

사진=박경훈. ⓒ제주의소리
제로센애국기매국기(愛國機賣國機), Patriotic or Unpatriotic Aircraft, 愛國機賣國機, 철근, 동판, 1200×900×120cm, 2010. 철골 동체 표면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의 이미지와 이름이 북식된 동판을 붙였다. 사진=박경훈. ⓒ제주의소리

알뜨르의 풍경은 묘하다. 75년 전에는 격납고와 격납고 사이, 활주로와 격납고군 사이마다 콘크리트 유도로(誘導路)가 펼쳐졌을 대지 위를 푸른 생명들이 뒤덮고 있다. ‘죽임’의 시설인 격납고 사이에 ‘살림’의 생업인 농사가 이루어지면서, 부단한 주민들의 수고롭게 옮겨온 흙더미들은 농토로 다져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농토가 점차 기지터를 침범해 들어가면서 완강했던 군사경관은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 위에 시간의 더께가 켜켜이 층을 이루면서 만들어진 풍경이니 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알뜨르만의 독특한 역사문화경관을 이루고 있다.

2010년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해였다. 제국주의 대열에 뒤늦게 뛰어든 일제가 이웃나라들을 도륙하기 시작하면서 서세동점의 시대, ‘대한제국’으로 갓 간판을 갈아 단 조선왕조의 마지막 명줄을 끊었던 그해 1910년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해였다. 국치 이후 100년의 한국사는 민족사상 전대미문의 식민의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일제에 의한 강점은 한국현대사 전체를 도탄에 빠트렸다. 문제는 강점기가 끝나고 나서도 그 강점의 역사로 인하여 이후 100년이 철저하게 왜곡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나는 1910년 경술년의 기억을 소환해, 지난 100년과 다가올 100년을 성찰하고 싶었다. 

사진=박경훈. ⓒ제주의소리
기원, 경술년갑오년, Origin, the Year of 1895 and 1910! / 起源, 甲午年庚戌年!, 대나무, 광목천, 천 위에 디지털프린트, 패널 설치 중 부분, 1000×1400×400cm, 2010. 사진=박경훈. ⓒ제주의소리

알뜨르에서 전시를 하자고 마음먹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인 단체관광객들 때문이다. 그들이 제주를 찾으면 이곳을 꼭 들러서 선조들의 제국주의 영광을 회고한다는 것이다. “이곳이 우리가 난징을 폭격할 때 쓰였던 비행장이었습니까? 아하!!!” 중국대륙을 도륙했던 일제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그러면 그런 그들이 찾아왔을 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과거의 역사유적은 그 스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역사에 대한 해석이 붙어야만 그 유적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이 전시가 이루어지는 두 달여의 기간동안에도 소형관광버스를 타고 단체관광객들이 몇 번 찾아왔다. 특히 4번 격납고의 작품이었던 <야스쿠니> 설치 작품을 보고 환호하며 다가왔다가 ‘이건 뭔가 아니다’ 싶었는지 당황하고 떠나는 일을 직접 목도하기도 했다. 비평없는 역사유적은 반성과 성찰을 유발하지 않는다. 

과거에 경복궁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물기 전에도 일본인 관광객들의 단체관람 명소로 꼽혔다. 그들 역시 “아! 이곳이 우리가 조선을 점령했던 심장이다” 라면서 관람했다던 일화가 전해진다. 결국 김영삼 정부 들어 건축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차 없이 철거해 버림으로 해서 이제 그 풍경은 반복되지 않지만, 역사유적은 곧잘 이런 과거 지배자의 회고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곳의 일제 군사 유적도 총독부건물처럼 일거에 없애는 것이 나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경복궁은 워낙 민족적 국가적 상징성과 조선시대 정궁의 복원이라는 의미가 또 달리 있었기에 나는 철거한 입장에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이곳의 유적은 역발상으로 접근하여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유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쓸모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박경훈. ⓒ제주의소리
‘야스쿠니 신사’, Yasukuni Shirine / 靖國神社, 철, FRP, 천 위에 나염. 1400×300cm / 200×120cm / 300×350cm, 2010
격납고를 건물 삼아 야스쿠니신사를 연출한 설치작품. 사진=박경훈. ⓒ제주의소리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전략상의 입장에서 보면 제주도는 동북아시아의 난바다에 우뚝 솟은 불침항모(不侵航母)로서의 지정학적 가치가 크다. 오키나와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러한 군사전략적 가치는 언제나 그 섬을 가만두지 않는다.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군사전략적 가치를 단절시키자는 의도 때문이다. 이 비극의 연결고리를 잘라내지 않는 한 제주는 언제나 세계의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치군사상의 변화에 의해 늘 출렁거리는 ‘바람타는 섬’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동북아시아에는 중화굴기(中華屈起)를 욕망하는 대륙국가 중국과 냉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이 각축하는 거대한 대립이 존재한다. 또한 군국주의의 완전한 부활을 꿈꾸는 일본과 중화굴기를 두려워하는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다. 눈을 북으로 돌리면 한민족의 반쪽 북한과 러시아가 있다. 이들 역시 미국과 극단적인 대립과 화해의 기회를 오가는 온열탕의 주인공들이다. 이런 상황은 하루 아침에 풀리지 않을 미래의 현재적 조건들이다.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시아의 바다는 100년 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은 우리가 직접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박경훈. ⓒ제주의소리
‘아시아로 날다’, Flying to Asia / アジアへと飛ぶ, 스티로폼, 합판, 한지 800×300×25cm 2010. 사진=박경훈. ⓒ제주의소리

그런 의미에서 알뜨르는 여전히 살아 있는 장소적 의미를 가진다. 제국주의시대 남경에 대한 도항 폭격 기지였던 내력을 지닌 폐허의 땅, 동아시아 각축의 시대에 조성된 남아 있는 군사기지 유적들은 제주가 평화의 섬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어 유용할 남겨진 유산들이다. 

거기에 더해 알뜨르에는 또 다른 슬픈 역사가 겹으로 쌓여있다. 일제가 기지 내의 탄약고로 사용하다가, 1945년 미군의 무장해제부대가 와서 폭파하여 꼭대기 부분이 날아가 버린, ‘섯알오름’ 탄약고터의 이야기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인 1950년 7월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나야 하는 그날, 이승을 등지고, 가족을 등지고, 칠흑의 시간을 말 한마디 못하고 섯알오름 탄약고터로 끌려가야만 했던 이들의 억울한 내력이 있다. 끌려가던 그들은 심야에 행해지는 은밀한 죽음의 행로를 누군가에게는 알려야 하겠기에, 달리는 트럭 위에서 비행장 벌판 위로 각자 신고 있던 신발들을 내던졌다. 결국 끌려간 주민들은 당시 군에 의해 무차별 학살당했다. 더욱이 죽어서도 주검을 거둘 수 없게 한 당국의 조처로 6년여 동안 학살터에 방치되어 정작 수습할 때는 누가 누구의 가족인지 알 수가 없어, 이름하여 100사람의 조상에 하나의 후손이라는 ‘백조일손지묘(白祖一孫之墓)’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생을 마감했던 섯알오름 예비검속자(豫備檢束者) 학살의 내력은 오늘도 우리의 귓바퀴를 맴돈다. 지금 그 자리에 제삿날 병풍처럼 서있는 조형물과 간략한 안내판이 그들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다.

결국 끌려간 주민들은 토벌군들에게 무차별 학살당했다. 더욱이 죽어서도 주검을 거둘 수 없게 한 당국의 조처로 6년여 동안 학살터에 방치되어 정작 수습할 때는 누가 누구의 가족인지 알 수가 없어, 이름하여 백인의 조상에 하나의 후손이라는 ‘백조일손지묘(白祖一孫之墓)’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생을 마감했던 섯알오름 예비검속자(豫備檢束者) 학살의 내력은 오늘도 우리의 귓바퀴를 맴돈다. 지금 그 자리에 제삿날 병풍처럼 서있는 조형물과 간략한 안내판이 그들의 죽음을 증언하고 있다.

일제와 4.3의 아픈 기억이 강력하게 낙인을 새긴 터, 알뜨르. 제주는 노무현 대통령이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매년 지금은 제주포럼으로 간판을 바꿨지만 이를 기념한 ‘평화포럼’을 개최해 왔다. 그런데 ‘평화의 섬’의 가장 핵심적인 장소적 가치를 지닌 이곳 알뜨르는 작은 시도들은 있었지만, 아직도 일제와 4.3이 겹으로 더께가 쌓인 이곳의 장소적 가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논의와 노력에 머무르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2부에 계속

박경훈 작가는 제주대학교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사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4.3목판화를 중심으로 미술운동을 했으며, 각 출판사를 설립해 200여종의 인문학 서적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탐라미술인협회 회장, 제주민예총 이사장,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비영리예술공간 포지션민제주 운영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夢想著阿圖爾和平的未來

朴京勳

阿圖爾(Alddeureu)位於濟州西南部,是一個俯瞰大海的寬闊平原。 “ al”在濟州話中的意思是“田地”,“ ddeureu”是田野。這是它的地名,因為它位於漢拏腳下的山區以下。這個地方的正式名稱是“日本空軍基地遺跡”。該土地歸國防部所有,這些機庫於2002年5月31日被指定為第39號註冊文化遺產。在2010年秋天,我在這裡舉辦了個展《 <庚戌國恥100年::在阿圖爾看見亞洲》。在10個機庫遺址和停機坪現場共展出了11件裝置作品。

阿圖爾的風景總是讓我著迷。日本帝國的混凝土機棚散佈在廣闊的耕地上。它勉強的保存了下來,喚起了為某事作證的錯覺。很難說什麼,但是那種沉默的展示氛圍似乎問觀眾「似曾相似嗎?」最終,我每次去阿圖爾(Alddeureu)時都會感受到這種奇怪的感覺,在2010年,終於帶我到平原上來回答這個「似曾相似嗎?」的問題。當時印製的畫冊也收錄著彼時基礎的圖像。

沒有零式戰鬥機,也沒有穿著黃色軍服日本士兵的吹哨聲。在這裡,我們必須能夠通過回憶過去的歷史來思考亞洲的未來,就好像它是一場似曾相識的戰爭。我們不必考慮歷史會重演的經典警句,因為沖繩是濟州的déjà vu 。如果我們不能深刻地認識過去的歷史,即從我們身體深處的去反思反悔回顧過去的時間,那麼阿圖爾機庫的殘骸存在也是毫無意義。

阿圖爾的風景很奇妙。七十五年前,綠色覆蓋了群山,在機庫、跑道和機庫群之間散佈著一條混凝土跑道。在作為「殺戮」設施的機庫之間進行了農業,將其作為「生活」的生計,並由居民的不懈努力將泥土和沙土切割成農田。這樣形成的農田逐漸入侵了基地的廢墟,強大的軍事景觀開始消失。它只能被描述為奇怪的,因為它是由頂部的時間沉積層組成的景觀。但是現在,彼此和諧地成為阿圖爾獨特的歷史文化景觀。

2010年是光貴恥辱(日本併吞韓國)100週年。 自1910年起進入日本帝國主義的日本帝國主義者距今10年來已經開始屠殺鄰國,並打破了朝鮮王朝的最後一道防線,當時他們將標語更改為徐世棟時代的“大帝國”。一年過去了。朝鮮受到民族侮辱後的100年曆史不得不忍受著史無前例的殖民歷史。日本對朝鮮的佔領使整個國家的近代歷史陷入極度的苦痛之中。問題在於,即使在殖民時代結束之後,由於其占領的歷史,未來的100年也將處於完全曲折的道路上。當時,我想回憶一下1910年,並回顧一下過去的100年和未來的100年。

實際上,我決定在阿圖爾舉辦展覽的直接原因是日本遊客。每當他們訪問濟州時,他們總是停在那兒,以回憶其祖先的帝國主義的榮耀:「這是用來轟炸南京的飛機場嗎?」「啊!回顧統治中國大陸的日本天皇的歷史,我害怕自己錯過了過去的輝煌。」那麼當他們進來時他們能顯示什麼呢?歷史遺址本身什麼也沒說。無論採用哪種方法,對歷史的解釋都使我們能夠充分了解該遺址的歷史意義。即使在我的展覽舉行的兩個月中,團體遊客也多次乘坐小型觀光巴士前來。特別是,他們為安裝第四機庫的《靖國神社》歡呼雀躍,我親眼目睹他們匆匆離開,因為他們注意到“這不是我們想要的”,因此感到尷尬。沒有批評的歷史遺跡不會引起反省。

過去,在景福宮的朝鮮總督大樓被拆除之前,該遺址被認為是吸引日本觀光團的旅遊勝地。遊客重複訴說:「“啊!這是我們佔領朝鮮的心臟嗎?」最後,儘管有建築保留的爭議,金泳三政府仍不懈地將其拆除,現場一無所留,但歷史文物經常成為過去統治者反思的地方。但是,最好將日本軍方的所有遺跡,如同總督官邸的遺跡全部清除嗎?事實並非如此。由於景福宮在國家和民族象徵意義以及朝鮮王朝的王宮具有不同的含義,因此,我同意拆除(總督府大樓)的想法。但是,我認為以逆向思維來思考保留阿圖爾遺址,並將其用為反思過去歷史的遺跡更為有效。

從威脅和平的軍事戰略的角度來看,濟州島作為聳立於東亞海域的不沉航母,具有巨大的地緣政治價值。與沖繩島一樣,這些軍事和戰略價值並不總是使這些島嶼保持不變。濟州島成為和平之島的最重要原因是其意圖切斷這種軍事和戰略價值。要不切斷與這場悲劇的聯繫,濟州將永遠是世界大國縫隙中的政治和軍事變化所動搖的「孤島」,在世界強國之間的政治和軍事變革中飄搖。

眾所周知,渴望成為中國崛起的大陸國家與美國(自冷戰以來成為唯一的超級大國)之間存在著巨大的對抗。此外,夢想完全復興軍國主義的日本與擔心中國崛起的東亞國家的利益交織在一起。向北看,將會發現北朝鮮和俄羅斯也是滾燙熱水中的參與要角,他們與美國進行著極端對峙與和解。這種情況是未來無法解決的當前狀況,100年後,亞洲的海洋仍然與100年前一樣。但是,不同的是我們可以直接選擇做某些事。

從這個意義上說,阿圖爾仍然具有其存在的含義。在東亞時代建造的軍事遺跡和帝國主義時期曾是轟炸基地的廢墟,是濟州追求其作為和平之島價值的寶貴遺產。而且,阿圖爾還有另一個悲慘的歷史。這是「Seodaloreum 芝麻」彈藥庫遺址的故事,日本在基地內用作彈藥倉庫,該遺址在1945年被美軍轟炸頂部被炸毀。在1948年7月的七夕那天,當牛郎和織女相遇時,他們被迫離開了這個世界,離開了家人,沈默無語的他們不得不經歷那令人遺憾的歷史。

當他們被帶走時,他們把鞋子扔在跑道上,進入機場的曠野,以便讓某人知道將在午夜發生的死亡之路。最終,被征服部隊無視地屠殺了被俘虜的人。此外,由於政府當局採取不予許屍體被認屍,這些受難者的遺體被遺留在了屠殺場中約6年之久,而當遺骸被家屬收集時,他們完全無法辨認骸骨也無法指認出他們的親人。他們只好為百個先人立了一個「一孫之墓」來紀念。這樣殘害生命的大屠殺歷史至今仍在我們耳邊迴響。如今僅剩類似節日的折疊屏風和簡單的告示板等站立物品證明了他們的悲慘死亡。

阿圖爾(Alddeureu),一個以日本帝國和4.3事件的回憶被深深烙印的地方。盧武炫總統指定濟州為和平之島。今天,每年並舉行“和平論壇”以紀念濟州論壇的宣示。在這裡做出努力,試圖在和平島上提出重要價值。但令人遺憾的是,與阿圖爾(Altteureu)應受到重視的價值相比,被人重視的程度仍然遠不如日本軍國遺址和4.3慘案。


アルドゥルで平和の未来を夢見る。

パク·キョンフン

アルドゥルとは、済州道の南西部に位置し、海を見はるかす広い平原地帯をいう。「アル」は下、「ドゥル」は野原を意味する済州語だ。漢拏山麓の山間地帯に比べて低い所に位置することから付けられた地名である。その公式名称は「日本軍航空基地遺跡地」だ。土地は国防部所有であり、これらの格納庫は2002年5月31日登録文化財第39号に指定された。2010年秋、私はここで<庚戌国恥100年:アルドゥルでアジアを見る>という個展を開いた。10の格納庫遺跡と駐車場の敷地などに計11点のインスタレーションを展示した。

アルドゥルの景観はいつも私を魅了した。広大な耕作地に点在する日帝のコンクリート格納庫群。それは、かろうじて生き残り、何かを証言しているような錯覚を呼び起こした。何とも断言し難いが、一種の沈黙のデモをしているかのような雰囲気は、それを見る人々に「覚えているか?」と聞き返しているように思えた。結局、「アルドゥル」と聞く度に感じたこの妙な感覚が、2010年に私を平原に引っ張り出して、「お前は覚えているか?」という問いへの答えとして作業させたわけだ。当時制作した図録には、当時の基壇のイメージが収録されている。 

もはや零戦もなく、黄色い軍服の日本兵の呼び声もない、記憶の痕跡だけが残る80万坪のアルドゥル飛行場。ここで我々は、まるでデジャヴのような過去の歴史の記憶を通してアジアの未来を考え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ならない。沖縄が済州のデジャヴだったように、歴史は繰り返されるという古典的な警句を思い浮かべずとも、私たちは知っている。もし我々が過去の歴史、過去の時間に対する反省的省察を骨身で深く認識できないのなら、アルドゥル飛行場の格納庫の残骸の存在は無意味だろう"。

アルドゥルの風景は奇妙だ。75年前には格納庫と格納庫の間、滑走路と格納庫群の間にコンクリート誘導路が広がっていた敷地の上を、青い生命が覆っている。「殺戮」の施設である格納庫の間に、「暮らし」の生業である農業が営まれ、住民たちの不断の苦労で運ばれた土砂は農土に固められた。こうして形成された農地が次第に基地跡を侵犯し、頑強な軍事景観は消え始めた。その上に時間の堆積が層を成してできた風景だから、奇妙としか言いようがない。しかし今は、互いに調和して、アルドゥル独特の歴史文化景観となっている。

2010年は庚戌国恥(注:韓日併合)100年を迎えた年だった。帝国主義に一歩遅れて加わった日帝が隣国を虐殺し始めた西勢東漸の時代、「大韓帝国」に看板を付け替えたばかりの朝鮮王朝の最後の命綱を切ったその年から100年が過ぎた年だった。国辱以降100年の韓国史は、民族史上前代未聞の植民の歳月に耐えねばならなかった。日帝強占は韓国の現代史全体を塗炭の苦しみに追い込んだ。問題は、植民地時代が終わった後も、その強占の歴史によって、以後の100年が徹底的に歪んだ道を歩んでいるという点だ。当時、私は1910年の庚戌年の記憶を召喚し、この100年そして来るべき100年を省察したかった。 

アルドゥルで展示しようと決心した直接のきっかけは、日本人団体観光客にあった。彼らが済州を訪れると、必ずここに立ち寄って先祖の帝国主義の栄光を回顧するというのだ。「ここが南京を爆撃する時に使われた飛行場ですか?」ああ!中国大陸を蹂躙した日帝の歴史を回顧しつつ、過去の栄華(?)を懐かしむという事実にぞっとする。では、そんな彼らがやってきた時、何を見せられるだろうか? 過去の史跡そのものは何も語らない。いかなる方法であれ、その歴史に対する解釈があってこそ、その遺跡の歴史的意義を十分に読み取ることができる。私の展示が行われた約2ヶ月間にも、小型観光バスに乗って団体観光客が数回訪れた。特に、4番格納庫の作品だった<靖国>のインスタレーションに歓呼しながら近づいたものの、「これは何か違う」と思ったのか、慌てて立ち去るのを直に目撃したこともある。批評を伴わない史跡は反省と省察を誘発しない。 

かつて、取り壊される前の景福宮の朝鮮総督府の建物も、日本人観光団体の観光名所と言われていた。ここでもまた「ああ!ここが朝鮮占領の心臓部か」と観覧したというエピソードが伝わる。結局、金泳三政権に入って、建築界の論争にもかかわらず容赦なく撤去してしまったため、その情景はもう繰り返されることはないが、しばしば史跡はこのように過去の支配者の回顧の場になったりする。だからと言って、アルドゥルの日本の軍事遺跡も総督府の建物のように一挙に取り去るのがいいだろうか。そうではなさそうだ。景福宮は、民族的·国家的象徴性と朝鮮時代の正宮の復元という異なる意義があるから、(総督府建物の)撤去という立場に私は同意する。しかし、アルドゥルの遺跡は逆の発想でアプローチし、過去の歴史への反省と省察の遺跡として活用するのがより有用だと思う。

平和を脅かす軍事戦略上の立場から見れば、済州島は北東アジアの沖にそびえる不沈空母としての地政学的価値が大きい。沖縄の場合もそうだが、このような軍事戦略的価値は常にこのような島を放っておかない。済州が平和の島にならねばならない最も重要な理由は、まさにこの軍事戦略的価値を断ち切ろうという意図のゆえだ。この悲劇のつながりを断ち切らない限り、済州は常に世界の強大国の間で政治・軍事上の変化によって揺れる「風の立つ島」にならざるを得ないからだ。 

周知のとおり、北東アジアには「中華屈起」を欲望する大陸国家の中国と、冷戦後に唯一の超大国となった米国が角逐する巨大な対立が存在する。また、軍国主義の完全な復活を夢見る日本と中華屈起を恐れる東アジア諸国の利害関係が鋭く絡み合っている。目を北に向けると、韓民族の半身である北朝鮮と、ロシアがある。彼らもまた、米国と極端な対立と和解の契機を往来してきた、冷熱風呂の中の主要なアクターだ。このような状況は、一夜にして解決され得ない未来の現在的与件である。100年経っても、依然としてアジアの海は100年前の状況とさほど変わらない。ただ、当時と違うのは、私たちが直接何かをす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事実である。


そのような意味で、アルドゥルは依然として生きた場所の意味を持つ。帝国主義時代、南京への渡航爆撃基地だった来歴のある廃墟の地、東アジアの角逐の時代に造成された軍事基地の遺跡は、済州が平和の島としての価値を追求するうえで有用な遺産だ。さらにアルドゥルにはもう一つの悲しい歴史が積み重なっている。日本が基地内で使用していたのを、1945年に米軍の武装解除部隊が爆破して頂上部分が吹き飛んだソダルオルム弾薬庫跡の話だ。1948年7月の七夕の日、牽牛と織姫が会うその日、この世を後にし、家族を捨て、漆黒の時間に一言も発せずに、ソダルオルム弾薬庫に連れて行かれ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彼らの無念の歴史がある。 

連れて行かれた彼らは、深夜に行われる死の行路を誰かに知らせようと、走るトラックの上から飛行場の原野へ履いていた靴を投げ捨てた。結局、連行された住民は討伐軍に無差別に虐殺された。さらに、遺体を収容できないようにした当局の措置により、約6年間も虐殺場に放置され、いざ収拾する際には誰が誰の家族なのか分からなくて、百人の先祖に一つの子孫という名を付けた「百祖一孫之墓」が作られた。こうして生涯を閉じたソダルオルム予備検束者虐殺の来歴は、今日も私たちの耳朶を打つ。現在では、その場所に祭日の屏風のように立つ造形物と簡単な案内板が、彼らの死を証言している。

日帝と4.3の痛ましい記憶が強く烙印された場所、アルドゥル。盧武鉉大統領が、済州を「平和の島」に指定した。 現在では毎年、済州フォーラムの看板を掲げ、これを記念した「平和フォーラム」を開催している。ところが「平和の島」における最も核心的な場所的価値を持つアルドゥルを探し出すささやかな試みはあったものの、日帝と4.3が積み重なったこの場所の価値に比して、いまだに議論と努力が法外に不足なままであるのを残念に思う。


Dreaming of a Future of Peace at Altteureu (1)

BAK Gyeonghun

Altteureu, locates in the southwestern part of Jeju island, refers to a vast plains area overlooking the sea. In Jeju language the word "al" is for "below" and "tteureu" is for "field". The name comes from the fact that the area is located at a low point compared to the mountainous area at the foot of Mt. Halla. The official name of the site is "The Remains of the Japanese Military Air Base."  The land is owned by the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and hangars here were designated as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No. 39 on May 31, 2002. In the fall of 2010, I held there a solo exhibition entitled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Geng-Sin Guo Shame: Seeing Asia at Altteureu". 11 installation works were exhibited in 10 hangar sites and parking lot.

The scenery of Altteureu has always fascinated me. Concrete hangars of the Japanese Empire scattered over a vast area of cultivated land. It evoked the illusion that it had barely survived and was testifying to something. It's hard to say for sure, but the atmosphere of some sort of silent demonstration was like asking the viewers, "Do you remember?" After all, this strange feeling that I heard every time I visited Altteureu pulled me out to the plains in 2010, to worked as an answer to the question, "Do you remember?"  The catalog produced at that time contains the podium of that time. 

There are no more Zero fighter planes, no more whistles of Japanese soldiers in yellow uniforms, omly 800,000 pyeong of Altteureu airfield with only traces of memory left.  Here we should be able to think about the future of Asia through the memory of its past history, which was like a deja vu. Just as Okinawa could have been Jeju's deja vu, we know without recalling the classic epigram that history repeats itself. The existence of the wreckage of the  hangars at Altteureu airfield would be meaningless if we are not able to recognize the past history, the reflection on the past time from the deep in our bones of our bodies. 

The scenery of Altteureu is strange : greens cover the grouond where, seventy-five years ago, a concrete runways spreaded between the hangars, and the runway and the group of hangars.  Between the hangars, which were facilities for the "slaughter," agriculture, which was the livelihood of "living," was carried out, and the sediment carried by the residents' tireless efforts was carved and solidified into farmland. The farmland thus formed gradually encroached on the ruins of the site, and the recalcitrant military landscape began to disappear. It can only be described as strange because it is a landscape made up of layers of time deposition on top of that. But now, in harmony with each other, creating their own unique historical and cultural landscape.

The year 2010 marked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annexation of Korea and Japan. It was 100 years after 1910, when Japan, which belatedly jumped into the imperialist ranks, began to slaughter its neighbors, cut off the last lifeline of the Joseon Dynasty, which had just replaced by the "Korea Empire." 100 years of Korean history since national humiliation had to endure the unprecedented period of colonization in national history.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has plunged the entire modern history of the country into an agony of searing pain. The problem is that even after the colonial era is over, the next 100 years are on a thoroughly warped path due to its history of occupation. At the time, I wanted to summon the memory of the year of 1910 and reflect on the last 100 years and the 100 years to come.

In fact, the direct reason why I decided to hold an exhibition in Altteureu is because of Japanese group tourists. Whenever they visit Jeju, they always stop there to reflect on the glory of their ancestors' imperialism. "Is this the airfield we used to bomb Nanjing? Aha!!!" Recalling the history of Japan's slaughtering in the Chinese continent, I shuddered by their nostalgy for the glory(?) of the past. So what can we show them when they come?  

Historical relics of the past themselves tell us nothing. Only when the history is interpreted in any way can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site be read properly. During the two-month period of the exhibition, group tourists visited the exhibition several times on small-sized buses. In particular, they came to cheer for the installation of <Yasukuni>, which was a work of hangar No. 4, I witnessed firsthand that they hurriedly left in embarrassment because they noticed “this is not what we want”.  Historic sites without criticism do not induce reflections.

In the past, before the demolition of the building of the Joseon Governor-General in Gyeong bok gung Palace, the site was considered an attraction for Japanese tourists. Again, there is an episode that says, "Ah! Is this the heartwhere we occupied Joseon?" In the end, despite the controversy in the construction authority, the Kim Young-sam administration has ruthlessly romoved the building, so the scene has never be seen, but historical relics often become a place for the past rulers to reflect on. But would it be better to remove all the remains of Japanese military like the building of Governor-General's? I don't think so. I agree with the idea of demolishing the building because Gyeong bok gung Palace has different meaning, such as its ethnic and national symbolism and the restoration of the Joseon Dynasty's royal palace. However, I think it is more useful to approach the ruins here in reverse thinking and use them as relics of reflection on past history.

From a military strategy perspective that threatens peace, Jeju Island has a great geopolitical value as a non-aggression aircraft carrier towering over the turbulent waters of East Asia. As with Okinawa, these military and strategic values does not always leave such islands untouched. The most important reason why Jeju should become an island of peace is its intention to cut off this military and strategic value. As long as the link to this tragedy is not cut off, Jeju will always be a "winded island" fluttering by political and military changes in the crevices of world powers. 

As is well known, there is a huge confrontation between China, a continental country that aspires to be a Rising Chinese, and the United States, which became the only superpower since the Cold War. In addition, the interests of Japan which dreams of a complete resurgence of militarism, and other East Asian countries, which are afraid of China's rise, are closely intertwined. Turn your eyes to the north and you will find North Korea and Russia, They are also the main actors in the hot and cold bathes  that have provided opportunities for extreme confrontation and reconciliation with the United States. This situation is the present conditions of the future that will not be solved overnight. It's been 100 years, but still, the oceans of Asia are not much different from those of 100 years ago. However, what is different from then is the fact that we can do something by ourselves directory.

In that sense, Altteureu has still has the meaning. The ruins of a former bombing base that traveled to Nanjing during the imperialist era, as well as the remains of a military base built during the Horn of East Asia, are a useful legacy for Jeju's pursuit of its value as an island of peace. Yet another sad history is piling up in Altteureu. This is the story of the ruins of  'Seodal Oreum' ammunition depot that was used by the Japanese as an ammunition depot in the base, which was blown up in 1945 by the U.S. military's disarmament unit.  On the day of the Star Festival in July 1948, some of village people had to leave this world, turn their backs on their families, and be taken to the of  Seodal Oreum ammunition dump without a word in  true darkness of the night. 

As they were taken, they threw the shoes they were wearing from the top of the running truck to the ground hoping to inform someone of the course of death that would take place at midnight. Eventually, the hauled-in residents were indiscriminately slaughtered by the vanguard army. Furthermore, due to the measures taken by the authorities to prevent the bodies from being collectd, they were left in the slaughterhouse for about six years, and when their families were finally able to collect them, they did not identify their family members, so they created a "Baekjo Ichigunzhi Tomb" named after one descendant for each of their hundred ancestors. The history of the "Seodal Oreum slaughter of the prepractitioners" that closed thier life like that is still echoed in our ears today. Today, a sculpture and a brief notice board are standing on the spot like a ritual folding screen testify to their death. 

Altteureu, a place strongly marked by the painful memories of the Japanese Empire and 4.3. President Roh Moo-hyun has designated Jeju as an "Island of peace". Today, they hold an annual "Jeju Forum" to commemorate it. However, although there have been small attempts here at Altteureu, which has the most important place value of the "Island of Peace," it is regrettable that discussions and efforts remain far short compared to the value of this place, where that was piled on by the Japanese Empire and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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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 2020-05-08 12:03:58

거창하게 제주소리의 톱으로 올랐다가 금방 사라져버린 이유가 뭘까요?
우리나라 보수의 행보가 식상하고 진부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선거에서 참패했 듯이 이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제주의 젊은이들과 이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중장년 세대에 이런 진부하고 식상한 과거 함몰적 글이 반향을 줄 리가 없습니다.
세월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필자는 과거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쉽고 안타까운 글입니다.

제주소리도 자칭 독립언론의 꿈을 이루려면 좌편향 일색 보도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223.***.***.110

평화의 섬 ? 2020-05-06 16:09:47
일년 내내 갈등과 분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주를 무슨 근거로 평화의 섬 ?
글이 너무 자의적이고 난삽하네요.
글이 공감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좌파 인간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이른바 확증편향 중독자들이죠.
헤드라인 글이 밑바닥으로 추락했네요.

모든 역사와 사건은 기승전결의 전개로 구성되는데,
자신들한테 유리한 어느 한부분만을 재단해,
마치 전체인양 왜곡한다.
4.3도 그렇고 일제 식민지 역사도 그렇다.
식민지 이야기 그만하자.
지배자들도 문제지만 지배를 당한 자들의 자랑거리는 더더욱 아니다.
과거사로 우리민족의 앞길을 가로 막지 말라.
얍삽한 실력가지고 궤변을 써대는 좌파 인간들이 사라져야 대한민국은 발전할 수 있다.
223.***.***.32

송악산 2020-05-06 09:45:47
아래 댓글 다신 분
또 헛소리라고 하신 분
2차 대전과 일제 강점기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알뜨르 비행장 터를 평화의 미래를
꿈꾸는 역사 기록의 현장으로
미래세대에 물려주자는 메시지가
왜 암울하고 낙오의 미래라는 건가요?
그저 흘러간 옛노래는 뭐고,
선조들 탓만 한다는건 또 뭡니까?

대한민국 제주, 일본 오키나와, 대만 은
외세의 침략과 양민학살이라는
아픈 역사를 통해 평화의 섬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인식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알뜨르는 매우 중요한
공간입니다.
사람이 싫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글을 읽는 다수의 독자와
저와 같은 일반 대중들에게
당신의 댓글은
무조건 비난과 인신공격으로
읽힙니다. 건전한 비판과
건강한 토론으로 더 생산적인
논의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110.***.***.4

또 헛소리 ! 2020-05-06 09:13:37
평화의 미래가 아니라 암울과 낙오의 미래이겠죠.
잊을만 하면 흘러간 옛노래를 들고 나오는 인간.
반복되는 소리가 역겹고 비쥬얼처럼 어두운 글이라 오히려 반감만을 초래할 뿐.
한글 일어 영어...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ㅉㅉ
세계화 개방화로 지구촌은 무한 경쟁의 시대에
돌입해 강자만이 살아 남는 약육강식의 소용돌이
에 빠져 있는데다,
코로나로 그 소용돌이는 더욱 강해질 것이 뻔한데,
그저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고 선조들 탓만 하고
있으니 우리의 미래는 너무 암담합니다.

글쟁이가 글을 써야 하지만 이런 글은 안쓰는게 낫겠네요.
이 시간에 집안 일을 하면 가족들도 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사라져 없어져야 할 글을 헤드라인에 올리는 기레기 소리도 매 한가지입니다.
난형난제입니다.
223.***.***.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