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다시 새로운 첫차를 기다립니다.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이 한창 진행되면서 광주경선을 기점으로 ‘노풍(盧風)’이 점화되던 시기에 나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원이 되었다.

그후 민주당내 노무현 후보의 부적절한 언행에 문제를 제기하며 노무현 대신에 이인제나 정몽준을 민주당 후보로 세워야한다고 주장하던 후단협 소속 국회의원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동에 분노하면서 유시민이 만든 개혁국민정당의 당원이 되었다.

▲ 필자(왼쪽)와 이정기(오른쪽)이 같이 노래를 부르던 보습. 노사모의 창립자인 이정기는 항상 열정이 넘쳤던 친구이다.
정몽준과 노무현의 막판 단일화 여론조사를 발표할 때, 너무 가슴이 졸여서 뉴스를 볼 수 없었고, 대선 개표결과가 발표되던 12월 19일 밤에는 새벽까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얼마 후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2000년 노무현 후보가 총선에서 낙선하자 노사모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래서 노사모의 창립자가 된 ‘늙은여우’는 나의 대학친구인 이정기였다.

90년대 3당 야합으로 모두 절망하던 긴 터널의 입구에서 사회변화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며 해군학군단(ROTC)을 박차고 나와서 군에 강제로 징집되었던 정기를 나는 노사모라는 큰 바다에서 다시 만났다.

2004년 3월 12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선 승리이후 대부분 회원들이 생업 현장으로 돌아가 버렸기에 무기력하게 보였지만, 노사모는 다시 전국 방방곡곡에서 촛불을 켜 들었다. 2002년 지자체 선거에서 제주노사모 회원들이 당시 민주당 도지사 후보였던 우근민을 지원하는 것에 실망해서 지역 노사모에서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나는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제주노사모 회원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 내가 제주노사모에서 가장 존경하는 공종식 형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물보다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제주 노사모에서 나를 가장 감동시킨 사람은 당시 제주노사모를 이끌던 공종식 형(마라도)이었다.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삭발을 통해 시민들에게 ‘노무현을 살려야한다’고 절규했고, 4.15총선 과정에서는 ‘탄핵세력을 심판해야한다’며 제주도 구석구석을 누비고 돌아다녔다. ‘세상을 바꾸자’고 하면서도 자신의 팔자를 바꾸기에 여념이 없었던 386운동권 출신 회원들과는 달리, 고졸 학력의 종식이 형은 오로지 열악한 정치 환경에서 노무현을 구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사심 없이 투혼을 불살랐다.

80년 광주에서도 그랬고, 87년 6월 항쟁에서도 그랬듯이 이 땅의 민주헌정이 이 정도라도 진일보 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정기나 종식이형처럼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면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민초들의 절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2002년 대선 정국과 2004년 탄핵과 총선정국에서 노무현은 민초들의 희망이자 자랑이었다.

열린우리당이 4.15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모두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자국민이 해외에서 참수되는 것을 보면서도 이라크 파병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총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아파트분양원가공개안’을 대통령이 앞장서서 무산시켰다. 급기야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통해서 정권을 저들에게 넘겨줄 수도 있다고 했다.

노사모도 변했다. 노무현을 통해서 원칙이 바로서는 나라를 만들자고 했던 세력들이 하나, 둘 입신출세(立身出世)에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가장 앞장서서 대통령을 개혁의 길로 견인해야할 세력들이 대통령의 변절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시위 중 사망한 농민들에게 애도를 표시하는 행위조차도 ‘주군에 대한 반역’으로 인식되는 어용 조직이 되어버렸다.

대통령이 재벌에게는 부(富)를 축적할 기회를 더해주겠지만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덤이 될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FTA)을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밀어붙여도, 이를 바르게 견인할 세력이 이제 시민사회에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노무현의 가장 큰 업적은 시민집단의 개혁성을 거세해서 재벌들을 위한 재단에 바쳐버린 공이다.

▲ 지난 4월에 제주도내 농민단체들이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현장을 필자의 사무실에서 찍었다.
요즘 남미 호화 외유를 다녀와서 물의를 일으킨 공기업 감사들의 추태는 이미 노무현의 변절과 노사모의 어용화가 빚어낸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90년대 민자·민주·공화 3당의 야합은 우리에게 너무나 어둡고 긴 터널을 남겼다. 그렇기에 90년대 터널의 입구에서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며 3당 야합에 저항했던 노무현은 어둠의 터널 속에 남은 유일한 희망으로 인식되었다.

게다가 2002년 근 1년에 걸쳐 펼쳐졌던 연기대회에서 난 노무현이라는 주연배우와 유시민, 문성근 명계남 등의 중량감 있는 조연배우들의 연기에 매료되어 노무현을 새로운 시대의 첫차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 내 고향 위미의 이웃들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삭발 투쟁을 펼치는 현장
최근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인 공으로 과거 자신과 대척점에 섰던 조선·중앙·동아로부터 칭찬 세례를 받게 된 덕에 업무수행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두 배 이상 상승했다. 거기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노무현 대통령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제주도지사와 공조 하에 제주해군기지건설까지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외국자본과 국내재벌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그리고 미국의 군사전략에 협력하기 위해 종이부자신문과 한나라당의 협조아래 다시 긴 어둠의 터널을 짓고 있다. 어쩌면 이 터널이 농민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무덤이 될 지도 모른다.

▲ 저들이 최근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강정 앞바다
나는 우리 모두가 플라톤이 말한 ‘극장의 우상’에 빠져 있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모든 눈물투혼이 그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연기였을 뿐이고, 저들이 얻은 권력을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려줄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는 쓰라린 교훈을 얻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제주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모르긴 해도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한미FTA 체결에 관해 도민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하려 한다면서, 어용으로 물든 지지자들과 부패한 관료들에 둘러싸여 경찰의 바리케이트 안에서 민초들을 기만하며 승리의 술잔을 높이 들 것이다.

이제 제주를 찾은 국민배우 노무현 대통령에게 2002년 정태춘이 불렀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라는 노래를 권한다. 내 고향 제주를 찾아온 대통령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이 밖에 없으니 어쩌랴?

‘첫차는 마음보다 일찍 오니 어둠 걷혀 깨는 새벽 길모퉁이를 돌아 내가 다시 그 정류장으로 나가마.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차를 타고 초록의 그 봄날 언덕길로 가마.’-정태춘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중

그리고 난 새로운 첫차를 기다리며 노사모의 길을 접는다. 내가 첫차를 기다리는 정류소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기와 종식이형을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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