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막은 밧 호리본다
도 막은 밧 호리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길웅의 借古述今] 177. 길 막힌 밭 제 값 못 받는다

  * 도 : (드나드는) 길
  * 호리본다 : 싸게 깎아 내린다. 제 값 받지 못한다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난다. 우리 밭에는 드나드는 길이 없었다. 맨 안쪽에 있어, 남의 밭을 지나야 했다. 어머니와 누님과 내가 밭담을 넘어 지나가려 하면, “아이고, 맹심ᄒᆞ라이. ᄇᆞᆲ지 마랑.(아이고, 명심하하. 밟지 말고.)” 조밭에 조가 막 자라기 시작할 때면 안 그래도 밟힐까 봐 한 발 한 발 사이사이로 골라 디디곤 했다.
  
그러는데도 나이 많이 잡순 밭 주인 할머니가 큰 소리로 얘기하면 듣기에 몹시 기분이 상했다. 해마다 그러니 참 성가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낮고 작은 목소리로 “알아수다. 더 ᄀᆞ를 말이우꽈. 맹심해얍주마씸.(알았습니다. 더 할 말입니까. 명심해야 하고 말고요.)” 한다. 어린 마음에도 영 아니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 자리 잡은 밭주인이나, 안쪽에 있어 남의 밭을 밟고 지나야 하는 사람이나 농사지어 먹고 사는 농부이나 더 말할 게 없는 일이다. 곡식이 한창 자라는 남의 밭을 함부로 밟고 지나랴. 그럼에도 철철이 빼놓지 않고 ‘주의’를 주는 것이다. 어떤 밭 주인은 목소리가 괄괄해 영 듣기 싫었다. 한 해 농사하면서 대여섯 차례도 더 신세를 져야 하니 좋게 비위를 맞추고 볼 일이었다.
 
그러니 통로가 막힌 밭은 제아무리 크고 토질이 좋아도 값을 낮게 보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길 없는 게 결정적 취약점이 됐던 때문이다.
  
묏자리를 사들였다 곤욕을 치는 적이 있다. 분할 측량과정에서 사들인 자리가 길에서 떨어져 나간 게 아닌가. 벌초쯤이야 밭담을 바로 넘어 다니면 그만이지만, 앞으로 이어질 장례를 치르려면 상여를 들이고 음식을 나르는 등 힘들 게 뻔하다. 길이 막힌 밭을 ‘맹지’라 했다. 처음 듣는 말이라 사전을 찾았더니 올라 있지 않았다. 

기어이 딴 사람에게 넘기고 말았다. 무슨 좋은 궁리를 했던지 사들일 사람을 만난 것이다. 어릴 때 검질(김)매러 드나들며 길가 밭주인이 큰소리로 으름장 놓던 일이 떠올라 쓴 웃음을 웃었다. 덕분에 맹지란 말이 머릿속에 대못처럼 박혀 있다.
  
 유사한 말이 있다.
 ‘도 막은 밧 작제 엇나(길 막힌 밭 살 사람 없다)’, 

무슨 일이든 열려 있어야지 막히면 안된다. 물건일 때는 알아주지 않는다. 특히 농사짓는 밭이메랴. 길이 없어 농사철마다 들고나며 ‘맹심ᄒᆞ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어야 하니 여간 딱한 일이 아니다.
  
역시 길은 중요하다. 통로인 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길은 없으면 꽉 막히고 말지만 열리면 ‘사통오달’이요 ‘사통팔달’이다. 그래도 터지고 열려야 길이지, 막히고 닫히면 달리 방도가 안 서는 게 길이다. 

다른 길이야 내면 되지만 농사짓는 밭은 마음대로 빼도 박도 못한다. 길에 면해 있는 밭을 돈 주고 사지 않는 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1
한담 2020-06-28 07:55:52
당시에 살젠허민 막은창밭 (맹지) 도 어성해슈다. 그러나 살때도 싸게 샀지만, 팔때도 싸게팔앗슈다. 경헌디 막은창밭에 서 농사짓기는 좋슈다. 곡식이 잘돼서 마씸. 첨, 막은창 밧지나젠허민 조들라정 불편도 했수다. 때따라 싸움도 보았슈다.
21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