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하이데라바드

우당도서관에 다녀왔다. 책 몇 권을 빌리고 바로 옆 국립박물관의 벤치에 앉아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다 보니 어째서인지 모를 웃음이 자꾸만 나와서 곤란했다. 집에서부터 우려 간 차를 홀짝홀짝. 좋은 차에 좋은 햇빛이라서 즐거웠던 걸까? 생각해보면, 그냥 자판기커피 한 잔을 들고 있었다 하더라도 즐거웠을 것 같다. 맛있는 차, 맛있는 햇빛, 맛있게 읽을 책과 맛있는 바람까지. 이런 맛있는 휴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해보니, 인도의 하이데라바드를 여행할 때 룸비니 공원을 찾았던 적이 있다. 저녁에 후세인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레이저 쇼를 관람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덤’으로 즐기고자 했던 인도인의 휴식을 오히려 ‘더’ 즐겁게 느꼈었다.

   
 
 
딸과 함께 레이저 쇼를 보러 온 아저씨, 눈만 빠끔히 내놓고서는 데이트를 즐기는 무슬림 아가씨, 연인과 뽀뽀를 하려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쳐 머쓱한 표정을 짓던 아저씨, 내 몸채만한 풍선을 들고 텐루피를 외쳐대던 풍선장수 아저씨도.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은 없어 보였다.

“나마스떼!”

   
 
 
공원에서 만났던 친구들에게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힌두교도의 인사를 했다가, 무슬림에게는 나마스떼라는 인사가 실례이고 ‘아살람알레이쿰’ 이라고 인사해야 옳다는 조언도 들었었다. 부끄러워서 머쓱한 웃음을 짓자 환하게 웃으며 그래도 마음은 통했단다. 그러면서 말을 돌리는 게 내가 입은 옷이 너무 예쁘단다. 인도를 헤집고 다니는 동안 잔뜩 낡아버리고, 못쓰게 된 옷이었는데도 예쁜 디자인이라며 얼마나 칭찬을 해 주던지. 솔직히 내 눈엔 그 두 명이 입고 있던 펀자비 드레스가 훨씬 예뻐 보였는데!

옷이 예쁘다고, 특별한 외출인 모양이라고 말을 했더니 깜짝 놀라던 그 두 명에게 왜 그리 놀라느냐고 물었다. 둘은 께랄라 주의 사람이란다. 열심히 일을 해서 여행경비를 모았다고. 한눈에 여행객인 걸 알아봐서 놀랐단다. 한명은 옷을 만드는 가게에서 일을 하는 점원이었고, 다른 한명은 음식점에서 일을 한단다. 가게 이름을 적어주며, 혹시라도 근처에 들르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예쁜 옷도 만들어주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준단다.

한국에서의 내 집 주소와, 내 이름, 연락처를 적어주면서 왠지 묘한 기분이었다. 여행자와 여행자가 어떤 여행지에서 만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인도이기에, 그리고 하이데라바드이기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 만들 수 있었던 인연. 기억할 수 있는 추억. 그 때,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전혀 관련이 없던 타인과 타인이 만나서 ‘우리’가 된다는 과정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인도의 교육과, 한국의 교육, 그리고 인도 여학생과 한국 여학생의 일상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레이저쇼가 시작할 시간이 되어버려 대화를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으로라도 남겨두고 싶었지만, 사진을 찍기는 좀 뭣하다며 미안하다고 거절당했다. 인도에는 사진의 플래시와 영혼의 상관관계를 믿으며 사진 찍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그 둘이 그런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아쉬운 대로 악수만 하고 헤어졌지만, 아직까지도 그 둘의 웃음이 생생히 기억난다. 정성스레 꼭꼭 눌러 써 준 주소도 다이어리 안에 그대로 남아있다. 다음에 인도를 여행하면, 반드시 그들을 찾아가보겠다고 약속했으니, 다음번의 여행은 아마 남부쪽, 특히 께랄라 주를 주로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히히.

룸비니공원은 즐거운 곳이었다. 공원 안 후세인호수에서의 레이저쇼 역시 너무나 멋졌다! 3분, 2분, 4분 이런 식으로 진행되던 쇼의 마지막은 20분이 넘을 정도로 굉장히 긴 공연이었다. 지구의 생성부터 현 하이데라바드의 성립까지 그 일대기를 표현한 영상물을 허공에 쏘아올린 물 스크린으로 볼 수 있게 한 쇼였는데, 중간 중간 나오는 광고 비슷한 장면이라든지, 끝을 장식하는 노래 ‘I love hyderabad’라든지 하는 게 너무나 멋져서 한참을 넋 놓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은 다 똑같았던 모양이다. 현지인들도 나처럼, 그리고 다른 여행객들처럼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호수를 몇 번이고 돌아봤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인도의 룸비니공원은 그냥 동네 공원(신산공원 같은)이 아니라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놀이기구가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후세인 호수 위를 떠다니는 배정도가 갖춰져 있는 시설의 전부지만 레이저쇼에 열광하던 현지인들은 놀이공원의 퍼레이드에 환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겹쳐보였다. 가족끼리의 외출, 특별하다면 특별할 휴식.

생각해보면, 하이데라바드는 인도여행에 지친 내게, 참 휴식 같은 도시였다. 사실 인도의 여행 자체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휴식이 되긴 했지만, 하이데라바드는 참…. 도시로의 복귀 같은 느낌이었다.

   
 
 
인도에서 (델리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차선’을 본 도시였으며, 처음으로 한 끼 식사에 100루피 이상을 지불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 중 가장 호화로운 숙소, 호텔 라즈마따에 머물렀던 도시이기도 하고.

▲ 센트럴코트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센트럴코트의 뷔페! 가이드북에서 보고 ‘75루피에 뷔페가? 반드시 갈 테다! 가주고 말테다! 바비큐 케밥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를 수도 없이 외쳐대며 찾았던 ‘남팔리 근처 라끄디 까 풀’의 센트럴 코트. 길치에 방향치에 적성검사를 하면 공간지각능력만 현저히 떨어져 6각형의 한 각만 속으로 옴폭 패어 들어간 형태를 이루는 희대의 길장님인 내가 그곳을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었던가.

거의 40분을 헤매서 찾은 그 뷔페는 75루피에서 240루피로 올랐단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유난히도 더웠던 날이라 이미 난 땀에 푹 절여져 있었고, 뷔페에서 말 그대로 뽕을 뽑을 생각으로 아침부터 생으로 굶었기에 뱃가죽과 등가죽이 얼마나 딱 달라붙어있었는지,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호텔 안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별 수 없이 지배인을 찾아 ‘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75루피라는 가격만 믿고 이곳을 찾았다. 길눈이 어두워 이곳을 찾아오는데 40분이 넘는 시간을 이 뜨거운 햇빛 속에서 헤매야 했다. 아침부터 굶어서 배는 등가죽에 달라붙을 것 같고, 수중에 있는 돈은 얼마 없는데 남은 여행 일정은 또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하고 호소를 했더니, 안타까운 얼굴로 내려준 가격이 180루피. 그 이상 깎는 건 무리일 것 같아 별 수 없이 포기하고 180루피를 내긴 했지만, 다 먹고 났을 때의 감상은 ‘500루피를 내라고 해도 내겠어!’ 였다.

▲ 센트럴코트 로비 천장
파스타가 종류별로 늘어서있고, 소스도 종류별로 늘어서 있는데 원하는 파스타, 원하는 소스를 고르면 즉석에서 요리사가 볶아내서 접시에 담아주는 건 맛뿐만 아니라(물론 맛도 지금까지 먹어본 파스타 중 최고였다!) 시각적인 즐거움까지도 충족시켜 주었고, 테이블에 앉자 자연스럽게 내 주는 난은 거의 델리의 말호트라 급으로 맛있었다. 말로만 듣던 유미죽, 탄두리 치킨과 양고기 바비큐 케밥까지. 사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호텔 점심뷔페 급의 뷔페였기에 종류를 전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서양식, 무굴식, 중국식 요리를 잔뜩 먹고 행복했던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물론 그날 저녁 체해서 손을 따야했던 슬픈 기억도 함께 기억되고 있지만.

▲ 입가심용 빙당으로 뷔페에서 식사 후 먹었다.
먹을 것에 한이 맺혔던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안드라 쁘라데쉬 주 최대의 혼수품 시장이라는 라드 바자르에서 본 수많은 뱅글들도, 원래대로라면 무슬림 이외엔 출입 금지인데 내가 예뻐서 들여보내준다 했던 메카마스지드도, (실제로 내가 예뻐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메카마스지드의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사진촬영만큼은 절대로 금지되었지만….) 외국인이라 올라갈 수 없어 분했던 짜르미나르도, 금종이로 만든 코란으로 유명한 사라르 정 박물관도 센트럴 코트의 점심뷔페와 동급으로 여겨졌다. 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리운 인도의 요리! 맛살라를 듬뿍 넣어 자기들 식대로 만든 중국음식!

▲ 라드바자르
어쩐지 하이데라바드에서는 잔뜩 놀고, 잔뜩 먹은 기억밖에 없다. 그래도 여행의 기본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노는 것 아니겠는가! 하이데라바드에서 그렇게 잔뜩 충전했기에 남은 인도여행도 즐겁게 해 낼 수 있었던 거라고 믿고 있다. 휴식을 취하러 시골로 내려가는 시대에 대도시에서 휴식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왠지 내가 도시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슬프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휴식이 되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 메카마스지드의 앞뜰
오늘은 국립 박물관의 벤치에서 즐겁게 쉴 수 있었기에 행복하다. 충전이 되었다. 앞으로의 한주도 힘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 오늘 먹었던 휴식은 얼마나 맛있는 휴식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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