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의장님 문자’와 관행 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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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결혼식 알림 문자를 '공용물'인 제주도의회 전화로 발송한 의장의 처신이 논란을 낳은 가운데, '나쁜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논란의 당사자는 관련 보도 직후 '쿨하게' 사과했다. ⓒ제주의소리 

오래된 일인데도 기억이 또렷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제주사회의 원로 부재를 탓할 때 늘 예외로 치는 장정언(85) 전 제주도의회 의장의 청렴한 의정상(像) 얘기다. (국회의원까지 지냈으나, 무의식적으로 ‘의장님’ 소리가 먼저 나온다)

당시 도의회를 출입했던 선배 기자들의 전언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방의회가 부활한 1991년, 제4대 도의회에 입성한 그는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생각하기 힘든 전·후반기 의장으로 4년을 보내면서 판공비(업무추진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수당이 따로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당시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권위와 출세의 상징, 관용차량도 마다했다.

충격까지 먹게 된 건 다음 얘기 탓이다. 장 전 의장은 일부 동료 의원들한테 틈틈이 용돈을 쥐어 주었다고 한다.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웬만하면 공무원 신세를 지지 말라는 의미에서다. 본연의 역할인 견제와 감시를 잘 하라는 당부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혹자는 가진 자의 정치적인 행위 쯤으로 여길 수 있으나, 단언컨대 그건 그 분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가졌다고 다 베푸는 것도 아니다. 물론 당시 장 전 의장은 사업체를 갖고 있었고, 꽤 잘 나가는 편이었다. 지방의원의 영리행위 제한 따위는 개념 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자주는 아니어도, 오래 봬서 안다. 3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삶의 태도가 한결 같은 걸 보면 청렴과 베풂은 천성 혹은 몸에 밴 습성임에 틀림없다. 

그때 받은 신선함이 여태껏 유지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지방의원들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건지도 모른다. 

역대 제주도의원 중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제6대 도의회 의장을 지낸 강신정씨(82)다. 

강 전 의장은 1996년부터 연말연시가 되면 소외된 이웃들에게 쌀을 전달했다. 쌀은 보통 10kg 들이 수백포에 달했다. 홀로 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그의 온정이 닿은 곳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도의원을 그만 둔 2002년 이후에도 나눔은 계속됐다. 

해마다 이 소식을 다뤘던 언론에서 더 이상 내용을 찾아볼 수 없어 그만뒀겠거니 했는데, 올초 한 일간지에 쌀 기탁 기사가 조그마하게 실린 걸 뒤늦게 봤다. 왠지 마음이 놓였다. 과거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 

딱 25년째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3억원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강 전 의장의 이웃사랑은 ‘약속’에서 비롯됐다. 1995년, 제5대 도의원에 출마하면서 “(당선되면)의정활동비를 모아 지역사회에 돌려드리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약속을 실천했다.

5년 전(2015년) 그의 말이 여운을 준다.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기다릴 것 같아 멈출 수가 없다.” 

최근 2년 임기를 마친 도의회 의장의 부적절한 처신이 구설에 올랐다. 자녀 결혼식 알림 문자를 도의회 전화로 발송해 지방의원 행동강령 위반 논란을 낳았다. 구체적으로 공용물의 사적 사용·수익 금지 조항을 어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행동강령을 떠나 코로나 정국에 사람을 불러모으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또 도의회 의장 정도면 경조사 때 굳이 문자를 보내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게 제주사회다. 

사실 경조사 관련 ‘문자 돌림’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의장 만의 문제도 아니다. 

‘웃픈’ 현실은 주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오죽하면 경조사에도 ‘흥행’이라는 말이 나왔겠나.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죽는 시점도 자녀의 출세 사이클에 맞춰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억울해할 일이 아니다. 세상이 바뀌었다. 우리는 지금 ‘김영란법 시대’에 살고 있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게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더구나 지방의회는 모범을 보여야 할 집단이다. 지방의원이 유급제로 바뀐 지도 14년이 지났다. 

본인도 할 말이 많겠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의장에 어울리지 않는 처신이었다. 다행히 그도 곧바로 쿨하게 사과했다. 뒤끝이 없어서 좋았다. 

이번 일을 악습을 끊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20~30년 전, 두 전직 의장의 모범이 그리운 요즘이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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