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전은 주민투표 대상 아니라는 국토부 관료에게 / 김동현 문학평론가·제주민예총 정책위원장

국토부 “국민안전 주민투표 대상 아니”...생명 담보 질 나쁜 선동
‘국민 안전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2일 열린 제2공항 토론회로 국토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드러났다. 국토부의 논리는 현재 제주공항은 항공기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제2공항이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안전은 주민투표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국토부의 논리는 사실 왜곡이다. 주민투표법 8조에 중요시설에 대해서 주민들의 투표를 물을 수 있다는 규정이 명백히 있는데도 법적 근거 운운하면서 사실상 공론화를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질 나쁜 선동이다. 

제2공항은 공항 안전만이 유일한 검토 대상이 아니다. 제2공항이 건설된다면 그것은 되돌릴 수 없다. 말 그대로 불가역적이다. 항공기 안전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공항시설이 들어설 경우 주변 지역에 미칠 환경적 요소, 도민의 삶 등 고려해야 할 문제도 많다. 공항 건설은 전문적인 영역인 동시에 주민들의 삶과 직접 마주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대상이다. 현 제주공항의 안전문제를 운운하면서 제2공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국토부의 논리대로라면 지금 공항의 항공 수요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국토부가 도깨비방망이를 가진 것도 아니라면 제2공항 건설이 뚝딱 될리 만무하고, 언제 어디서 안전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국토부가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한 제주공항은 최고공항으로 선정됐다(세계항공교통학회 2020년 7월).

지난 2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열린 제주 제2공항 관련 쟁점해소 공개연속토론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열린 제주 제2공항 관련 쟁점해소 공개연속토론회.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0년대 초 항공 대중교통수단 지적에...자유화 명분 반대
이제와서, ‘공항=대중교통’이라는 국토부 말 바꾸기

토론회에서 공개된 국토부 자료는 ‘제주도민에게 공항은 대중교통이며 대중교통은 안전과 쾌적함이 필수’라고 적시하고 있다. 제주에서 항공운임, 편수, 공항시설 확충 등의 여러 과정을 자세히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국토부의 이 같은 발표에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항공운임 단합과 항공편수 증편 문제가 불거졌을 때 도민 사회가 일관되게 요구한 것은 국토부가 거대 항공사의 편만 들지 말고 항공의 공공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처음 움직임이 17대 국회에서 발의된 항공법 개정안이었다(강창일 의원 대표발의). 당시 제출된 항공법 개정안의 핵심은 국내 항공노선의 운임을 인가제로 바꾸는 것이었다. 제주도의 경우 항공교통이 대중교통이나 다름없는 공공성을 띄고 있으니 관리 감독 기관인 국토부(당시 명칭 건설교통부)가 적극적으로 항공사의 항공운임 결정에 관여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거대 항공사의 가격 담합, 항공편수 꼼수 증편 등으로 도민들의 뭍 나들이가 쉽지 않았고 이에 따른 불편도 컸다. 결론적으로 항공법 개정안은 정부의 반대로 결국 폐기되었다. 당시 국토부의 논리는 항공 자유화가 세계적 추세인 상황에서 국토부가 항공운임이나 증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임위에서 항공법 개정안이 논의되었을 때 건설교통부 이춘희 차관은 인가제 도입에 대해서 “세계적인 항공정책 방향이 자유화 쪽인데 다시 규제를 도입하자는 얘기”라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항공 운송수단의 공공성을 인정해달라는 도민들의 요구는 국토부의 완강한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17대 이후 항공법 개정안은 제주 출신 국회의원들의 단골 발의 메뉴였다(국회 의안정보만 뒤져봐도 확인할 수 있다).

늘어나는 항공 수요와 늘 만석인 항공 좌석, 항공권을 구하지 못하는 제주도민들의 불편 해소를 위한 입법 노력은 계속되었다. 입법의 핵심은 우선 항공을 대중교통에 준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와 지원 대상이 되도록 바꾸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제주도민들의 입장에서는 비행기는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나 마찬가지니,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제주-김포 간 노선의 운임, 편수 등에 개입해달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이때마다 국토부의 논리는 똑같았다. ‘항공 자유화에 역행한다.’ ‘항공은 대중교통수단이 아니다.’ 국토부가 이러한 법 개정 과정을 모를 리 없는데 이제 와서 공항은 대중교통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국토부가 일관되게 주장했던 항공 자유화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고, 제2공항 건설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국토부는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항공이 아니라 공항’이라고. ‘공항시설은 분명히 대중교통이다’, ‘국토부의 일관된 정책이다.’라고. 17대와 18대에 항공법 개정안이 계속적으로 발의됐을 때 국토부의 일관된 입장은 항공은 대중교통수단이 될 수 없으며 다른 지역 간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항공운임 지원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대중교통이라니. 아무리 제2공항 건설의 명분을 찾는다지만 사실관계부터 확인하는 게 예의다(항공법 개정안과 관련해서 사실관계 확인과 토론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17대 국회 당시 항공법 개정안과 관련해서 건설교통위원회 보좌관 자격으로 국토부와 실무를 논의했던 당사자가 바로 글쓴이다).

관료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
안전은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국토부의 설명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국토부의 입장은 세월호와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안전문제에 민감한 대중의 정서를 건드리고 있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관료의 판단으로 민주적 의사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오만이나 다름 없다. 안전은 관료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이 안전하다고 체감하고 어떤 안전을 선택할 것인지 선택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그 모든 것이 안전과 관련한 문제이다. 관료들이 ‘안전합니다.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어떤 안전이고, 어떻게 안전해야 하는지를 국민들 스스로 선택할 때 그것이 진짜 안전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도지사도 우리가 선택한다. 그것이 민주주의(democracy)의 기본이다. 데모스(demos)의 자기결정권은 결국 민중에 의한 지배(cracy)를 의미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우리이며,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우리는 지배당한다. 그 선택과 선택에 대한 존중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그런데 일개 국토부 관료가 선택 문제를 말한다. 

막스 베버가 관료주의를 합법적 지배의 한 형태라고 말할 때 그것의 토대는 법률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주민투표법에 근거가 있는데도 그 근거를 인용하지 않는 관료의 무능과 무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위임받은 권한인가. 2007년에도 그렇고 2020년에도 국토부 관료들의 오만은 변함이 없다. 

민주주의를 민중의 자기결정권이라고 말할 때 관료주의(bureaucracy)는 말 그대로 책상물림(bureau)의 지배(cracy)를 의미한다. 시험 잘 봐서 고위직 공무원이 된 관료들이 책상 위에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모두의 안전은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김동현 문학평론가·제주민예총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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