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14) 임기환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제주본부장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를 다룰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을 중심으로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재난과 위기는 불평등과 차별의 민낯을 드러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재난과 위기는 불평등하게 닥쳐오고, 비정규직과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재난 앞 노동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도 다를 바 없다.

일터에서 노동자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걸리면 정규직은 최대 60일의 유급휴가를 주는 반면, 비정규직은 단 10일의 무급휴가만 주어진다. 그 무게를 따질 수 없는 생명 앞에 비정규직은 차별받는다. 농·축협의 사례다.

규정의 존재가 알려지자 내부에서조차 당혹해한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언급조차 안 됐을 오래된 차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터에서의 고용불안과 경제적인 위축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에게 더 가혹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터에서의 고용불안과 경제적인 위축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에게 더 가혹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1944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인류에게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적 가치로 천명했다.

노동의 주체인 인간은 인격 그 자체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수단으로 취급해선 안 되며, 비교할 수 없는 무조건적 가치인 인간과 노동의 존엄성은 침해돼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와 공동체의 의무이다

한국은 ILO의 152번째 회원국이며, 아·태지역 의장국과 3회에 걸쳐 이사국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친 지난 20년 시장과 자본에 종속되고 상품화된 노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중화, 양극화됐다. 

동일노동에도 고용(계약)형태에 따라 노동조건과 가격이 달리 매겨지고, 불평등은 심화됐다. 

우리는 어느새 고용형태, 인종, 성별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여겨왔고, 차별이 갖는 반인권적 현실에 무뎌져갔다.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험하게 한다.

재난불평등은 근로소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올해 2분기 중 소득하위 20%의 근로소득은 지난해보다 18% 감소해, 상위 20%의 근로소득 감소율 4%와 비교해 4.5배 더 줄었다.

이는 코로나19 피해가 일감이 줄어들거나, 아예 일자리를 잃은 임시, 일용직 등 비정규, 영세,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집중되었음을 보여준다. 재택근무는 고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려운 이들은 감염될 위험도 더 높다.

코로나19는 공공서비스와 사회안전망의 축소, 불평등의 심화를 초래한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전체의 번영을 위험하게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인류사회의 항구적인 평화는 사회적 정의의 기초위에서만 가능하다

코로나19 위기는 공공의료의 확충, 해고금지, 식량자급, 기후변화 대응과 같이 노동의 주체인 인간을 중심에 놓고, 시장과 성장 중심인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구상하게 한다.

위기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과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가능케 했던 것처럼, 인간이 자본에 종속돼 수단화되었던 시장만능의 시대를 극복하고, 적극적인 연대에 기초해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야 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고, 모든 인간이 인종, 사상, 성별,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경제적 안정과 존엄이 유지되는 조건에서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가 실현되는’ 그런 세상 말이다. / 임기환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제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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