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문화를 일구어 온 고 김봉오 원장님을 보내며
[기고] 제주문화를 일구어 온 고 김봉오 원장님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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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병상에서 몸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두 달이면 다시 문화원에서 뵙게 될 것으로 여겼는데, 갑자기 부음을 접하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심정입니다. 그래서 「빈자의 일등」을 바치는 심정으로 이른 새벽 책상머리에 앉아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추도의 글을 쓰렵니다.

원장님과 교분을 쌓게 된 것은 제가 언론사에 재직 시절 유배인 자료를 얻으면서였습니다. 그렇게 인연의 끈이 맺어졌고, 이후 여러 활동을 함께 하면서 교분의 시간도 한올씩 촘촘히 엮이게 되었지요. 그래서 제가 바치는 글은 빈소의 정담처럼 고인과의 인연을 되돌아보는 회상으로 갈음하려 합니다.

원장님은 식품공학을 전공하시고 20여년을 대학에서 재직하다 퇴임하신 뒤 제주문화를 비롯한 사회발전에 큰 관심과 열정, 그리고 아름다운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고인은 주민들과 함께 건입동마을만들기에 나서  『건입동지』를 만들고 고 김석종 어른의 원고를 발굴해 『포구의 악동들』을 펴내었지요, 잊혀져가는 40여개소의 문화유적지에는 표석도 세웠고요. 제주의 관문이었던 건입동을 ‘지붕 없는 박물관마을’로 만들 꿈을 하나씩 그려나가려고 하신거지요.

제주의 전통문화에 대한 고인의 모습을 보며 존경과 공감의 박수를 보냈던 시간들도 기억합니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학자로서는 의외(?)의 모습처럼 비쳐질 정도로 제주의 전통문화 섭렵에 몰두하시는 모습은 고인의 인생에 놀라운 반전이 아닐까 합니다. 문화관광해설사를 거치며 그 모임을 이끌었고, 제주향교 전교 재임 시에는 유교건축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제주향교를 국가 보물로 승격시키기도 하셨으니 그 공적은 제주사회에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2015년 7대 제주문화원장에 취임한 뒤에는 왕성한 추진력으로 제주도 전역에 선재한 금석문 발굴조사를 비롯한 제주전래 생활문화 기록사업들을 벌여왔습니다. 그래서 고양부삼성사재단의 탐라문화상을 차지하는 보람을 누리기도 하였지요. 지난 해 2월에는 제8대 문화원장으로 재선돼 많은 사업들을 벌이며 또 한번의 도약과 성숙을 모색하던 차에 갑자기 타계하셨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고인의 자취를 돌아보며 주위에 베풀었던 다정다감한 모습들도 하나씩 떠올려봅니다. 평생 애써 일군 사재를 모교나 단체에 쾌척하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겠지요. 필자에게도 그런 선의를 베푼 적이 있는데 언론사에서 은퇴 후 연구소를 마련하고자 애쓸 때 고인 소유의 빌딩 사무실 일부를 연구소로 쓰라고 권유했지요. 결국 호의만 받고 사양 했지만 그 마음은 지금도 기억의 한구석에 화톳불처럼 따스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종종 문화원을 찾아가곤 합니다. 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문화원이 벌이는 사업들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곳에 가면 원장님을 뵐 수 있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원장님은 늘 반갑게 맞아주었고 대화는 언제나 그렇듯이 진지하고 화기애애했습니다. 그래서 다정다감하면서도 뜻하시는 일은 묵묵히 일구어 나가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배우고 닮고 싶었습니다.

어느 작가가 남긴 조사의 한 구절처럼 ‘죽음’이라는 것이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당신의 느닷없는 비보는 허망하고 또 허망하며 그저 기막힐 따름입니다. 81세를 일기로 사랑하는 유족을 남기고 칠성판을 타고 훌훌 떠나시게 될 당신이지만 이제 북두칠성 어느 별자리에 앉아 가족들은 물론 제주와 제주인들의 앞날을 굽어 살피시고, 지켜주소서. / 강문규 제주문화원 이사·전 한라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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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 2020-10-12 16:24:19
고인의명복을빕니다
명예나 지위고하를 따지지않고
당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헌신하신 분입니다.
동네 주민자치위원 , 향토문화해설사, 제주문화원장, 향교전교 등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 남달랐습니다.
고인과 같은 인품의 지도자를 우리 제주에 많이 보내주시길 기원합니다.
112.***.***.114

정창원 2020-10-11 16:22:12
원장님께서 이렇게 훌쩍 세상을 떠나신 것이 너무 아쉽기만 합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11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