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 숲 우거진 웃바매기 오름

▲ 오름중턱에서 본 말들의 어미사랑 ⓒ 김강임
삼나무로 불을 지피시던 어머니 사랑

겨울철이 되면 어머님은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셨다. 마른 나뭇가지를 무릎에 대고 '자작'하고 자르면 잘 마른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어머님께서 아궁이에 잘 마른 나뭇가지를 쑤셔 넣으셨다. 어머님은 그 나무 이름을 '숙대낭'이라 불렀다. 숙대낭은 아궁이 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어느새 어머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금은 25년이 지난 얘기지만 휴일이면 방문했던 시댁의 안방은 참으로 따뜻했다. 그때 어머니께서 사용했던 땔감은 숙대낭, 즉 삼나무였다. 제주기생화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삼나무 말이다.

▲ 숲길 걸으며 풀내음 맡으며 ⓒ 김강임
숲, 생태계가 공생하며 사는 아지트

제주 오름을 오르다 보면 오름 입구에서부터 중턱에 이르기까지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것이 삼나무다. 삼나무는 연약한 식물들의 비바람을 막아주기도 하고 강렬한 햇빛을 막아주기도 한다. 또 오름 속에 들어가 보면 삼나무 등은 타고 많은 생태계가 공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무성한 삼나무 숲은 자칫 오름 생태계를 훼손시킬 우려도 있다.

어느 오름이나 삼나무가 우거져 있을 테지만, 지난 5월 주말에 다녀왔던 웃바매기오름 삼나무 숲이 기억에 남는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웃바매기오름은 입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기도 했다. 길에서 보면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한데 등반로 입구는 숨겨져 있으니 말이다.

▲ 오름 입구를 찾지 못해 헤메다 표지석을 만나니 기쁨이 저절로 ⓒ 김강임
이때 가장 반가운 것은 오름 표지석. 선흘 목선동 사거리 시멘트 도로 끝에 서 있는 웃바매기오름 표지석은 꿈결에 만난 어머님의 모습을 보듯 반가웠다. 오름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길은 삼나무 길이었다. 그리고 그 삼나무 길은 5월의 햇빛과 그늘을 적당히 만들어 주었다.

새들은 삼나무 숲에 보금자리를 틀어 오름 나그네를 반겨줬다. 또한 꽃과 나비를 초대해 놓고 기생화산을 에덴동산으로 만들기도 했다. 
 

▲ 정상에서 본 목장 풍경 ⓒ 김강임
▲ 아카시아 꽃이 향기를 품어댔다. ⓒ 김강임
오름중턱에 핀 동물들의 어미사랑

하얀 아카시아 꽃도 웃바매기오름에 향기를 뿜어댔다. 그리고 보라색 제비꽃도 늙어갔다. 그 향기에 젖어 있을 때였다. 오름 주변 목장으로 나들이를 나온 말이 무리를 지어 오름을 누볐다. 어미 말의 젖을 빨고 있던 어린 망아지는 푸른 초원 위에서 오수를 즐긴다. 어미 말은 망아지를 입으로 핥아주고 토닥여 주기도 했다. 동물의 모정이 싹트는 오름 주변에서 나는 군불을 지폈던 어머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삼나무 우거진 숲에는 가시덤불 길이었다. 등반로는 겨우 한 사람 다닐 정도. 청미래덩굴이 철조망을 두르고 길을 막았다. 가시에 옷을 찢기기도 하고 상록수 낙엽에 넘어지기도 했지만 숲 속에서의 발걸음은 상쾌하기만 하다.
 

▲ 삼나무 숲에서 상생하는 식물들 ⓒ 김강임
30분을 걸었지만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대낮인데도 숲 속은 컴컴하다. 더욱이 가도 가도 능선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숲에서 자라는 양치식물들과 산철쭉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오름 주변에서 보았던 말들처럼, 식물들은 종(種)이 달라도 서로 말이 통하는 것 같다.

▲ 웃바매기 오름, 밤알 같지 않아요? ⓒ 김강임
밤알 같은 오름, 사랑이 걸려 있네!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오름 기슭이 보였다. 웃바매기 정상은 마치 들판에 꽂혀 있는 깃발처럼 보였다. 오름 모양이 '밤알처럼 생겼다'하여 바매기라 부른다는 웃바매기오름. 제주 오름의 명칭은 저마다 특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 진원지는 확실치가 않다. 다만 구전으로 알려질 뿐.

▲ 삼나무에 사랑 걸렸네! ⓒ 김강임
정상의 모습이 마치 밤송이 모습을 연상케 했다. 작은 밤알과 큰 밤알이 어깨를 겨뤘다. 그리고 2개의 봉우리 사이 말굽형 분화구를 형성했다.

신록이 익어가는 분화구에서는 풀내음이 적셔왔다. 오름 중턱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았던 하늘을 드디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웃바매기오름 주변에는 종류는 다르지만 무성한 생태계가 소곤거리고 있었다. 겨울날, 어머님이 나를 위해 군불을 지폈던 마음처럼. 하산 길에서 만난 삼나무 가지마다 사랑이 걸려 있었다.

 

웃바매기 오름

▲ 웃바매기오름
웃바매기오름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 84번지에 소재해 있으며, 표고 416m, 비고 137m의 밤알같이 생긴 오름이다. 오름 남쪽 뾰쪽한 부분이 정상을 이루고 있으며 북동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이다.

화구 아래쪽에는 선새미라는 샘이 있으며 남쪽 비탈에는 해송이 자란다. 동서 비탈 일부 화구는 자연림이 무성하다.

- 웃바매기오름 표지석에서    

 

☞ 찾아가는 길 : 제주시- 조천읍(16번도로)- 선흘1리 목선동- 선인동-도로 좌측 시멘트포장- 웃바매기오름 표지석으로 40분 정도 걸린다. 오름 등반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다.

※ 제주오름 등반시는 꼭 정해진 등반로를 이용합시다. 오름등반 시 자연을 훼손시키는 일은 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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