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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예총, 18번째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9연대-서청 주둔 한림리 학살 주민 위로
31일 오전 10시부터 한림읍주민자치센터에서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31일 오전 10시부터 한림읍주민자치센터에서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제주4.3 72주년을 맞아 18번째 '해원상생굿'이 한림읍에서 열렸다.

(사)제주민예총은 3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림읍주민자치센터에서 <2020 4.3항쟁 72주년 찾아가는 현장위령제-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을 개최했다.

2002년 다랑쉬굴 발굴 10주년 기념 다랑쉬 해원상생굿을 시작으로 올해에는 18회째 한림읍 한수풀 해원상생굿이 열린 것이다.

4.3 당시 한림리는 국방경비대 9연대와 2연대, 서북청년단 특별중대 등 군과 경찰이 주둔하면서 토벌대의 근거지였다.

4.3으로 희생당한 한림읍(한경면 포함) 주민들은 1037명이며, 군경에 의한 집단학살은 9연대에 의한 한림초에서 22명이 시작이었다. 

또한 서청특별중대는 1949년 금악리, 명월리, 상명리, 귀덕리 등 중산간마을 소개민 20여명을 한림리 물와에서 총살했다.

대림리 봉근굴에서도 한림초에 수용 중이던 소개미 55명이 학살당했고, 한림리 묵은오일장 인근 동산밭에서도 28명이 집단으로 총살됐다.

31일 오전 10시부터 한림읍주민자치센터에서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31일 오전 10시부터 한림읍주민자치센터에서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제주민예총은 한림리를 중심으로 동명리, 대림리까지 과거 한수풀이라 불리던 학살터에서 희생된 주민들을 위한 '해원상생굿'을 마련했다.

해원상생굿은 학살터에서 소리쳐 혼을 불러내고 풍장을 따라 모셔오는 '초혼 풍장'을 시작으로, 제주큰굿보존회의 시왕맞이 초감제, 4.3 당시 12살이었던 강순아 할머니가 현장에서 증언했다.

이종형 시인이 '각명비'로 시를 보시했고, 노래꾼 최상돈이 '그리운 옛 님'으로 노래를 보시했고, (사)마로가 순지오름 꽃놀이로 춤을 보시했다. 

강순아 할머니는 현장 증언에서 막내 오빠(당시 18살)가 1949년 한림초등학교에 끌려간 후 총살당하는 현장을 목격했고, 3번째 오빠는 1950년 8월20일 예비검속으로 섯알오름에서 학살당했다고 풀어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강 할머니는 "어릴 때 돌아가신 큰 오빠와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둘째 오빠까지 4명의 오빠를 모두 잃어버렸다"며 "4.3을 안다고 말을 하지만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그 억울함을 절대 모른다"고 말했다.

31일 오전 10시부터 한림읍주민자치센터에서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31일 오전 10시부터 한림읍주민자치센터에서 '한림 한수풀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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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해야 하나요? 2020-11-02 13:15:50
너무 얽히고 설켜있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어찌해야 할까요?
그래서 70여년이 지나도록 속시원한 해결이 없는듯해요.
생각만해도 먹먹해지고 가슴 한구석이 아파오는듯 합니다.
175.***.***.8

ㅋㅋㅋ 2020-11-01 22:07:23
남로당 박정희 : 정희는 남로당 군사총책으로써 국군 내 공산주의자들을 침투시킨 혐의로 체포되었다. '군병력 제공죄'로 사형(총살)을 구형받았으나 백선엽과 일제 육군사관학교 출신들[12]의 구명 활동, 박정희의 전향서 제출 그리고 군 내부 남로당 조직원 숙청에 적극 협조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최종적으로 무죄방면되었다.
175.***.***.217

옹진은파산 2020-11-01 21:30:01
1948년 11월 2일 이덕구가 사령관으로 있는 남로당 인민해방군은 국군 9연대 2대대 6중대가 주둔하고 있는 한림국민학교를 대낮에 기습했다. 폭도의 대낮 습격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인민해방군은 후퇴하는 척 하며 중산간 마을로 6중대를 유인하여 매복 공격하였다. 순식간에 중대장 이하 14명이 전사했고 수명이 부상을 입었다. 연락을 받고 지원 출동한 3중대가 현장을 수습하고 반란군 추격에 나섰다가 다시 매복 공격에 걸렸다. 중대장이 부상을 입고 7명이 전사하여, 장비 등을 버리고 후퇴했다가, 다시 5중대가 야간 출동하여 수색하다가 반란군 야영장소를 발견하여 포위했다. 날이 새는 것을 기다렸다가 집중 공격을 퍼부어 100여 명 이상을 사살했다.
182.***.***.228

제2연대 12기생 2020-11-01 21:21:24
제주4.3사건 당시 한림면에서는 양병시를 빼놓을 수가 없다. 양병시는 북제주군 한림면 출신으로 1947년 민주애국청년동맹(약칭 민애청) 한림면 면책이 되어 1948년 4․3사건이 일어나자 금악 윗지경의 남로당반란군 폭도 아지트에서 남로당 한림면 책임자로서 한림지서를 공격하라는 지령을 하달시켜 100여명의 남로당자위대가 1948. 5. 14. 13:00 한림지서를 습격토록 한다. 포로수용소 수용시 당시 36세로 남로당 제주도당 한림면 당수이었다. 최악질이라고 제주 주둔 제2연대 앨범에는 기록되어 있다. - 제주지방검찰청 수형인명부 1146-9-75-사형-1949.06.29. 제주4․3평화공원 위패 존재하고 있다.
182.***.***.228

흠흠흠 2020-11-01 18:35:47
언제까지 끝이 보이고 전통성없는 상생굿을 할건고.
2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