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환경평가 ‘유착’ 드러나도 "징계는 없다"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올 3월까지만 해도 의혹 제기 수준이었다. 환경단체는 확신하는 분위기였으나,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사업을 접을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송악산 일대)매우 수려한 자연경관은 공공의 자산이며,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므로 자연경관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개발계획은 적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를 토대로 검토한 결과 사업 시행 시 해당 지역의 자연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는 바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상 사업을 추진해선 안된다는 메시지였다. 사업은 ‘뉴오션타운’으로 명명된 송악산 개발 프로젝트를 말한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내용을 작성한 기관은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제주특별법에 따라 제주도가 ‘환경영향평가 전문기관’으로 지정·고시한 곳이다. 민간이 추진하는 사업은 환경영향평가 협의 때 환경부장관을 대신해 KEI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다. 그만큼 KEI의 의견은 무게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사업자에게서 환경영향평가서를 접수한 제주도(환경정책부서)가 KEI의 의견을 구한 뒤 내용을 정리하면서 ‘재검토 필요’ 의견을 누락시켰다는 게 당시 의혹의 핵심이었다. 

설마했으나,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4월28일 제주환경운동연합으로부터 조사 요청을 받은 제주도 감사위원회가 지난 11일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KEI는 재검토 필요 의견을 ‘총괄의견’과 ‘항목별 검토의견’(생활환경분야)으로 동시에 제시했으나, 환경정책부서는 ‘항목별 검토의견’으로만 정리했다는 게 감사위의 판단이다. 내용 누락 차원을 넘어 사실상 가공이 이뤄진 것이다.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제주도 감사위원회가 환경단체의 요청에 의해 환경영향평가 업무 처리 실태에 관해 조사를 진행한 결과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송악산 개발(뉴오션타운)과 관련한 환경영향평가가 대표적이다. 조사 결과 제주도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제시한 의견 중 사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총괄 의견'을 누락시켰고, 자체 검토의견 작성 과정에 사업자측이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도 감사위는 '주의' '훈계'를 요구하는데 그쳐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 <그래픽=김찬우 기자>

총괄의견과 항목별 검토의견은 무게감도 그렇고, 내용 자체도 다르다. 위의 내용은 총괄의견이다. 항목별 검토의견(생활환경분야)은 “현재의 자연경관을 유지하기 위하여 대규모 개발은 지양하여 사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 시에는…”으로 돼 있다. 기조의 차이가 크다. 

감사위는 총괄의견 누락을 ‘업무담당자가 임의로 판단한 일’로 결론지었다. 조사 결과에도 나왔듯이, 이런 경우가 한 두 건이 아니어서 납득하기 힘들다. 사실이라 하더라도, 실무자에 의해 정부출연기관의 공식 의견이 변질될 수 있는 허술한 시스템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KEI 의견 가공은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회의 심의 과정에도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판단은 심의위원들의 몫이다. 모든 정보가 가감없이 그들에게 전달됐어야 했다. 

더 심각한 문제도 드러났다. 역시 환경단체가 제기했던, 제주도 자체 검토의견 작성에 사업자 측이 개입했다는 의혹 관련이다. 

KEI의 검토 의견(원문) 파일을 사업승인부서를 거치지 않고 사업자(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에게 제공했고, 대행업체가 KEI의 검토 의견을 평가 항목별로 구분해 작성한(사실상 가공한) 파일을 보내오자, 그대로 제주도 검토의견 작성에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제주도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 ‘제주도 검토 의견’ 작성에 사업자 측이 관여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할 행정문서를 이처럼 거리낌없이 사업자와 주고 받아도 되는 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행업체는 말그대로 업체일 뿐이다. 사업자와 한편이다. 구조가 그렇다. 업체 선정은 물론 평가서 작성에 드는 비용도 사업자가 부담한다. 

도의회의 부동의와 원희룡 지사의 이른바 ‘송악 선언’으로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했는지는 모르겠다. 독립된 지위를 갖는 감사위가 제주도와 교감을 나눴다고 믿고 싶지도 않다.   

감사위가 만 5개월의 조사 끝에 밝혀낸 잘못 치고는 솜털처럼 가벼운 처분 요구가 다시 논란을 불렀다. 환경정책과는 ‘주의’, 해당 직원은 ‘훈계’가 전부였다. 둘 다 징계 축에 끼지도 못한다. 

보기에 따라선 사직당국의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환경영향평가 제도 운영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린 행위에 경종을 울리지 않는다면 재발 방지를 보장할 수 없다. 비리가 터질 때마다 공무원 행동강령을 고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일벌백계, 엄단, 무관용이라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원 지사가 “부끄럽다”며 고개를 조아린 청렴도 전국 꼴찌는 그냥 나온게 아니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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