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99. 열 아기 낳고도 하나를 지탱 못한다

* 낭도 : 나고도, 출산하고도  
* 호날 : 하나를

옛날에는 아이를 많이 낳았다. 보통 7~8명, 심지어는 10명이 넘는 아이를 낳는 집도 적지 않았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자손 없는 집에 태어나 너무 고적하니 아이를 많이 두어 겉으로라도 집안의 위세(威勢)를 과시한다는 의도가 있었는가 하면, 제사 명절을 도맡아 가통을 이어나갈 아들 두셋이 필수인데, 셋까지는 고사하고 하나도 갖지 못해 득남할 때까지 낳자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낳다 보니 딸 6공주나 7공주에 이르러 포기하는 수는 왜 없었을까. 그러다 봐도 아들 하나를 얻지 못할 때는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십사고 신령에게 소원을 빌고 빌다 그도 여의치 않을 때는 친족 중에서 양자를 맞이했다. 가통과 가업을 잇지 않으면 불효 막급하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음은 말할 것이 없었다.

한데 사정(환경)은 녹록치 않았다. 옛날엔 의료시설이 빈약해 거의 민간요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병에 걸리면 구제할 방책이 없었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혼 배(한 배, 한 어머니)에 열을 낳았음에도 하나를 지탱 못했다 하니 얼마나 처참한 이야기인가. 

숨이 넘어간 것으로 알고 땅을 파묻으려는데 아이 울음소리가 나므로 다시 집으로 안고 와 어른이 됐다 해서 ‘태역둥이’(태역은 잔디의 제주어, 병으로 명이 끊어진 줄 알고 들판의 잔디밭을 파묻으려 했다가 살아난 아이)라 하던 사람이 적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서사라 사거리 오일장에서 토끼를 팔고 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양산을 쓰고 파는 아주머니가 대단한 여성으로 여겨진다. 출처=이토 아비토, 제주학연구센터.
서사라 적십자회관 사거리 인근에 있었던 옛 오일장에서 토끼를 팔고 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양산을 쓰고 파는 아주머니가 대단한 여성으로 여겨진다. 출처=이토 아비토, 제주학연구센터.

지금도 오지 마을에는 무의촌이 얼마간 남아 있으나 가까이에 보건소가 있어 웬만한 병 치다꺼리는 하는 형편이다.

오늘날은 병으로 잃어서가 아니라, 아예 아이를 갖지 않으려 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딸 가진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출산 이전, 혼기가 꽉 차도 시집가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저출산으로 나라의 미래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병‧의원이 가까이 있겠다, 좋은 약이 개발됐겠다, 영양 섭취가 충분하겠다, 모자람이 없는데도 이러니 큰 문제다.

1980년대는 ‘베이비붐 세대’였다. 출생아 수가 계속 80만 명 중‧후반대를 넘어서서 ‘하나씩 낳아도 삼천리 초만원’이라는 캠페인으로 대변되는 산아제한정책이 대폭 강화되기까지 했다. 그 후로 들쑥날쑥하더니 2000년대에 이르러 심각한 저출산 기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저출산율이 1.08을 기록했다. 민감한 게 황금돼지 해라는 속설이 퍼지던 2007년에는 1.25까지 치솟았으나, 2009년 세계금융 위기 여파로 1.14까지 주저앉았다. 2019년에 0.92명으로 추락해 여간 심각하지 않다.

통계청은 출산율이 0.86을 찍고 나서 1.0~1.27로 회복되리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젊은이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마저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지만 출산율이나마 안정돼 국가의 토대인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일만은 없어야 할 것인데 걱정이다.

옛날에 병든 아이를 구완하지 못해 많이 낳아 놓고도 한 아이를 어른으로 키우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슬픈 현실이었지 않은가. 그런 시절도 있었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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