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탐나는전, 제주공동체와 환경을 지키고 도민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소리 시선(視線)’은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쓰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매주 수요일 외에도 시시각각 벌어지는 주요 이슈에 대해선 비정기적으로 싣습니다.

화폐는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 국가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하면서 주고받은 돈이 외국으로 많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의 부(富)가 유출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지역에서 거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돈이 외부로 유출된다는 것은 곧 지역의 부(富)가 유출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지역경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국가화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화폐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의 부(富)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정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대안화폐이다.

ⓒ제주의소리
제주도는 지난 11월 30일부터 제주형 지역화폐 '탐나는전'을 발행했다. 탐나는전은 카드형·모바일형·종이형 등 3개 유형으로 3년간 3700억 원 규모로 발행될 예정이다. [그래픽이미지=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드디어 제주에서도 11월 30일 제주형 지역화폐인 ‘탐나는전’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하는 바이다. ‘탐나는전’은 카드형·모바일형·종이형 등 3개 유형으로 앞으로 3년 동안 3700억원 규모로 발행된다고 한다. 1인당 구매 한도는 월 70만원으로 연간 500만원 이내 한도로 구매할 수 있다. 카드형과 모바일형은 사용할 때마다 10%가 포인트로 적립되고, 종이형 상품권은 구매할 때 10%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연말정산 때에는 사용액의 30%(전통시장은 40%)까지 소득공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종이형 상품권은 5천원권, 1만원권, 5만원권 등 세 가지 종류로 발행되고, 카드형과 모바일형은 전용 앱을 이용해 충전하는 방식으로 구매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탐나는전’으로 거래할 가맹점 업소들을 모집하고 있다. 단 사행산업, 단란주점, 유흥주점 등을 비롯한 대규모 점포, 대기업 직영 프랜차이즈, 종합병원 등은 가맹점 등록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동안 논란이 일었던 농협 하나로마트의 경우, 동(洞)지역과 최근 3년간 연평균 500억원 이상의 매출액이 발생한 곳을 제외한 하나로마트에서 ‘탐나는전’을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도내 소상공인의 매출감소를 방지하고, 자영업자와 골목상권 매출 증대를 위한 것이다.

이제 막 탄생한 ‘탐나는전’이 본래 취지대로 제주의 골목상권을 활성화시키고, 지역의 부(富)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탐나는전’의 발행 규모가 턱없이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탐나는전’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소비자, 생산자, 가맹점이 두루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발굴해야 한다. 우선 ‘탐나는전’이 ‘제주사랑상품권’ 이상의 역할을 하려면,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맹점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가맹점들에게 여러 가지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가 지급하는 각종 지원금이나 복지수당들도 ‘탐나는전’으로 지급하여 발행규모를 늘려야 한다.

이참에 더 발전된 제주형 지역화폐를 꿈꾸면서 지역화폐의 본래 취지를 음미해보자. 국가화폐가 있어야 물건과 일이 소통되는 사회는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도덕과 양심을 마비시키고 경쟁적으로 개발하면서 생태계 파괴가 심해진다. 그리고 오늘날엔 많은 작업들이 기계화, 자동화되면서 노동의 기회마저 사라져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많지만 써줄 데가 없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사라져 경제가 침체되고 있다. 

지역화폐는 국가화폐만으로는 더 이상 지역경제와 지역공동체를 살릴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싹트면서 시작되었다. 지역화폐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자와 소비하는 자가 함께 자체적으로 제작한 화폐이다. 지역화폐는 국가화폐가 없는 사람들도 먹고살 수 있고, 교육받고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보조화폐인 셈이다. 그리 본다면 지방정부가 발행하고 도민들이 국가화폐로 구매해야 하는 ‘탐나는전’은 한계가 뚜렷하다.

국가화폐로만 거래가 이뤄질 경우, 국가화폐 확보가 어려운 불경기, 외부자본이 잠식하여 국가화폐가 부족한 지역, 양극화로 국가화폐를 확보하기 어려운 계층에서는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할 수가 없어 삶의 질이 떨어진다. 하지만 소비자, 생산자, 가맹점이 조합을 만들어 지역화폐를 사용한다면, 국가화폐 없이도 지역생산과 지역소비가 촉진되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문화․예술․스포츠가 진흥되며, 복지·간호 서비스가 증진되고, 폐품 재활용으로 환경이 보전되며, 지역주민 간의 교류 활성화되고, 지역주민 주도의 지역발전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윤용택 논설위원·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지역화폐는 경제위기, 공동체위기, 환경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지역화폐는 지역에서 창출된 부(富)의 유출을 방지하고, 화폐체계를 재화와 서비스와 같은 진정한 부(富)의 원천에 바탕을 둠으로써 인플레이션이나 경제공황 때문에 국가경제나 세계경제가 비틀거릴 때라도 지역경제는 계속 돌아가게 한다. 무엇보다도 지역화폐는 부(富)를 지역 내에 순환시킴으로써 지역경제, 지역공동체, 지역생태계를 동시에 살리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제 막 탄생한 ‘탐나는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 ‘탐나는전’이 제주공동체와 제주환경을 지켜내고 제주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탐나는전’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가맹점, 도민과 행정이 더 많이 소통하면서 부족한 점들을 메워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 윤용택 논설위원·제주대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