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조직개편 착수해놓고 ‘송악선언’ 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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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개발에 마찜표를 찍겠다며 '송악선언'을 발표하는 원희룡 지사. 하지만 제주도는 이미 3개월여 전에 서귀포시 환경, 건설 부서를 하나로 묶는 조직개편에 착수한 것으로 나타나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제주의소리

조직의 명칭은 그 조직의 성격과 역할을 규정한다. 때론 조직의 비전을 담기도 한다. 그래서 작명(作名)은 중요하다. 리더와 구성원이 공히 내다보는, 혹은 바라봐야할 지점을 정확히 가리켜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 지은 사람의 이름을 바꾸는게 어려운 것처럼-법적인 개명 절차는 이전보다 한결 간편해졌으나-조직의 명칭을 고치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고려해야할 요소가 한 둘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국가공기업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그런 경우다.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 전담기구인 JDC는, 국제자유도시가 여전히 유효한 제주의 비전이라면 봐 줄 만한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 제주는 비전의 혼돈을 겪고 있다. 제주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제주를 어떻게 가꾸어가야 하느냐는 미래상 정립의 혼돈. 

그게 아니더라도 JDC에게 있어 이제 ‘개발’은 몹시 께름칙한 단어가 되었다. 두 글자만 떼놓고 보면, 어쩌면 본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 뿐인데도, 일각에서 난개발의 주범과도 같은 취급을 받고 있어서다. ‘개발’을 뺄 것인가, 아예 작명을 다시 할 것인가, 아니면 조직의 역할과 기능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반대로 조직의 성격과 역할이 명칭으로 드러난다고 쳤을 때, 대립하는 두 역할을 한데 묶어 이름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시 옆길로 샜다. 최근 부서 통합 여부로 시끄러운 서귀포시 청정환경국과 안전도시건설국 문제를 꺼내려다가 얘기가 길어졌다. 

이름하여 청정환경도시국. 국토교통부와 환경부의 통합을 상상할 수 없듯이, 이제는 부조화의 극치를 보는 듯한 ‘(청정)환경도시국’은, 물론 과거에도 존재했던 명칭이다. 

기억이 맞다면, 민선2기 우근민 도정 때도 있었다. 당시 명칭은 환경건설국. ‘도시’나 ‘건설’이나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였다. IMF 외환위기가 극에 달했던 1998년, 구조조정에 따른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환경과 건설 부서를 합쳐놓았다. 명목은 ‘환경 보전과 개발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물론 당시 조직개편안을 승인한 제주도의회는 “향후 조직개편 때는 환경과 건설을 분리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도의회도 조직 통합이 어설픈 조치였음을 고백한 셈이다. 

2년 후 우 지사도 개편을 시도했다. “환경에 역점을 두고 도정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환경과 건설 부서가 환경건설국으로 통합됨으로써 개발 우선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며 분리를 지시했다. 오해(?)는 자초한 측면이 컸다. 어쨌거나 환경정책국을 신설하는 내용의 개편안이 마련됐으나, 이번에는 도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이후에도 물과 기름의 관계나 다름없는 환경과 건설(혹은 도시) 부서는 통합 또는 분리 여부를 놓고 지리한 공방의 소재가 되었다. 민선6기 원희룡 도정 들어 세계환경수도추진본부가 환경보전국으로 개편된 후 오늘에 이르렀다.

거듭 말한다. 이번 부서 통합은 단지 역할을 조정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익히 경험했다. 억지춘향식 조합은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정작 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더구나 두 부서는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단언한다. 환경 보전과 개발의 조화는, 부서를 통합해서는 결코 꾀할 수 없다. 아니, 반대로 나아갈 공산이 크다. 설령 환경 부서가 독립돼 있다 하더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본디 개발은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제주의 자연은 모든 국민이 누릴 권리가 있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청정과 공존은 제주도민이 선택한 양보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입니다”

화창한 일요일인 지난 10월25일 송악산 앞. 원 지사는 이곳에서 난개발에 마침표를 찍겠다며 이른바 ‘송악 선언’을 발표했다. 다분히 이벤트적 성격이 강했으나, 선언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서귀포시 두 부서를 합치는 조직개편안은 이미 3개월여 전 도의회에 제출된 상태였다. 조직개편안은 12월1일 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를 통과했다. 앞으로 본회의 의결만 남겨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송악 선언에서 중단을 시사한 사업 3건 중 2건은 사업장이 서귀포시에 있다. 난개발 문제에 있어 서귀포시가 가장 뜨거운 현장인 셈이다. 선언의 무게에 비해 한없이 가벼운 조직개편안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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