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1시간 분량 녹취 파일 재판부에 제출...정부, 소멸시효 완성-배상액 조정 주장

“제73주년 4.3희생자 추념식 전에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려 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고령의 제주4.3 생존수형인들을 대신해 법정을 찾은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이규훈 부장판사)는 생존수형인 양근방(89) 할아버지와 유족 등 3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103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첫 변론에서 재판부는 재심사건 당사자의 진술을 직접 듣고 싶다며 영상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용량이 방대해 전산입력이 어렵자, 원고측 변호인은 녹취만 추려 재판부에 넘겼다.

4.3당시 생생한 상황이 담긴 녹취록은 1개당 1시간 내외 분량이다. 20여명의 증언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재판부는 재심 판결과 진술을 토대로 피해자들의 위자료를 산정하게 된다.

형사재판인 재심사건의 경우 불법적인 구금과 고문 등에 의한 위법행위 입증이 쟁점인 반면 손해배상 민사사건은 옥살이와 출소 이후 피해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이 핵심이다.

생존수형인과 유족들은 위법한 구금과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 구금 과정에서 발생한 아이의 사망, 출소 이후 전과자 신분으로 인한 명예훼손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정했다.

구금 기간 중 노동을 했다면 기대할 수 있는 수입도 포함했다. 유족은 망인의 구금으로 인해 부양이나 양육을 받지 못한 피해액을 합산해 청구했다. 1인당 3억원에서 최대 15억원이다.

반면 국가를 대신해 변론에 나선 정부법무공단은 원고측 증거만으로는 피해 사실에 대한 불법성이 충분히 입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민사소송의 기준인 소멸시효 완성도 주장했다.

정부는 70년 전 각 원고의 개별적인 피해를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 제시를 요구해 왔다. 법원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더라도 100억원을 넘는 청구 금액도 과하다고 맞섰다.

국가 배상 청구기한은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 손해나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이다. 정부는 4.3진상보고서가 나온 2003년 12월부터 3년이 지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원고측 변호인은 4.3진상보고서는 개인 피해가 아닌 전체 사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적용 기준 자체가 될 수 없다며 맞대응했다. 법률상 재심사건 판결 이후 3년 이내에 청구가 가능하다.

재판부는 양측의 의견을 종합해 4월15일 3차 기일을 열어 변론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 변호인도 향후 추가 제출 서류가 없다는 뜻을 전했다.

변론이 끝나면 추념식 이후인 4월말 또는 5월초 4.3재심 관련 국가상대 첫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판결이 내려진다.

원고측 생존수형인들은 앞선 2017년 4월19일 법원에 재심청구서를 접수해 2019년 1월17일 역사적인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배상을 하라며 2019년 2월22일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이에 법원은 기한 6개월을 앞둔 그해 8월21일 53억4000여만원 배상을 결정했다.

2019년 11월29일에는 마지막 절차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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