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주에는 ‘애기업개 말도 들어 봐사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애기업개(예전에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7~8세 되는 여자애들은 일을 시키기 어려우니 젖먹이 어린애를 부모가 일 나간 사이에 보아주는 것으로 밥벌이를 시켰다.)처럼 아무 것도 모를 나이의 어린애의 의견도 들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지식인들조차 의견을 내놓지 않으려고 하니 문제다. 글을 쓰면 댓글들이 험하게 올라오니 글쓰기가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요즘 제주도의 큰 논쟁거리인 제2공항과 해저터널에 대한 필자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더니 오랜만에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늘 댓글을 달자고 주장하던 참이어서 반가웠다. 그러나 댓글의 내용이 필자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반론이나 이견(異見)이 아니라 욕설에 가까운 글들이 많아 안타까웠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의견에 논리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모독성 표현을 동원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흔히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무학대사의 말처럼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해버리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긴 하나, 이런 글로 마음이 상해 글쓰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사회를 위해  고쳐야 할 일이다.

강병석 박사가 쓰신 ‘대한민국은 왜 무너지는가’에 보면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서로 믿지 못 하니 쓸데없는 곳에 자원이 낭비되어 올바로 발전할 수 없고, 곧 무너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기야 공자께서도 ‘국가를 경영하려면 경, 병, 신(經, 兵, 信)이 필요한데 그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병을 버려라, 군대가 없어도 나라가 부강하면 다른 나라가 쳐들어 올 생각을 못 한다. 다른 하나를 다시 버려야 한다면 경을 버려라. 나라가 가난해도 국가가 백성들의 신뢰를 받고 있으면 다른 나라들이 쉽게 넘보지 못 한다. 그러나 나라가 백성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지탱할 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주장하셨다. 

요즘 나라가 흘러가는 모양을 보면 정말 우리 사회가 신뢰를 잃어 허비하는 비용이 엄청나다. 신뢰가 없으니 법으로 규제하려고 하고, 시행하기도 전에 다시 법을 뜯어 고치는 일들도 생기고 있다. 중요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법을 만들고 있으니 법이 완전히 누더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법이 과연 지켜질까 하는데 많은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세상일이라는 게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택의 문제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면 때로 목숨을 걸어서라도 다퉈야 하지만, 선택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쫓아가는 것이 도리다. 선택의 문제는 어느 것을 우위에 두느냐 하는 가치관의 차이에 기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변화에 따라 주장이 달라질 수 있다.

예전에 필자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하여도 삼양에서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 만일 이때에 등하교 하면서 버스를 타고 다니겠다고 하였다면 집안 말아먹을 녀석으로 치부되어 야단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 차비가 아까워 삼양에서 걸어서 학교에 다닌다면 어딘가 모자라는 학생으로 여겨질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뀌었을까? 필자는 경제 때문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학생 신분으로 하루 벌어도 버스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학생이라고 하여도 30분 정도 일하면 왕복 버스비 정도는 번다. 결국 걸어서 다니는 시간과 버스를 타고 다니는 시간 차이의 비용을 마련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에 따라 정답이 달라지는 것이다.

제주도는 위치적으로나  자연환경이 2차 산업을 일으키기는 어려워서 소득 수단이 주로 일차 산업에 치중하였다. 그러다가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관광이 활성화되자 너도나도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런데 관광객들로 인해 도민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하니 관광객을 제한하자는 주장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 도민들 사이에  도민 소득 증대가 우선이냐, 삶의 질 문제가 우선이냐 하는 가치관의 대립이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에는 당연히 소득 증대가 우선이었으나 점차 경제가 나아지면서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다. 어느 한쪽의 필요성이 아주 크면 선택은 손쉬우나 양쪽의 필요성이 엇비슷하면 선택이 어렵게 된다. 이런 현상은 과도기에 주로 나타나며, 바로 지금 제주도가 그런 상황이다.

또 다른 잣대가 지금이냐 장래냐 하는 문제다. 지금으로서는 당연히 A가 정답인데, 장래를 생각하면 B가 정답인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이건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마쉬메론’ 이야기가 말하는 바와 같이 장래의 이익을 위해 지금의 욕구를 참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지금 좋다고 A를 선택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강정해군기지나 제2공항을 예로 들면 이런 시설을 제주도에다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도민들의 선택할 문제다.(물론 국가적으로 필요성이 있을 때 도민들이 이해를 해 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렇지만 어디가 적지인가 하는 것은 과학이다. 물론 과학이라고 하여 답이 하나인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조건들을 견주어 어디가 가장 적합한가를 따질 때에도 결국 어디에다 가중치를 둘 것인가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이때에 전문가들이 나서서 각 방안의 장단점을 소상히 밝혀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식인들의 책무다.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그런데 독자들이 이 의견들이 올바르지 않다고 여겨지면 그 사항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밝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나, 자기의 뜻과 맞지 않다고 인신공격성 댓글을 달던지 비난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삼가야할 일이라고 여겨진다. 더구나 익명성 뒤에 숨어서 인신공격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비겁한 짓이다. 이러한 댓글이나 비난으로 전문가나 지식인들이 글쓰기나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많은 지식인들이 자기 시각에서 글을 씀으로 해서 많은 도민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사태를 살펴보게 되어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 제주도의 발전과 갈등해소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 제주도에서 선플(선한 리플) 달기운동을 펼쳐 지식인들이 마음 놓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하자. 지식인들도 몇 개의 악플(악성 리플)에 기죽거나 의욕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여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자. 이 글에 많은 선플이 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