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의 아픔을 온몸으로 간직해온 ‘무명천 할머니’ 故 진아영(1914~2004) 할머니. 그녀를 기억하는 제주시인 허영선의 시가 독일에서 음악으로 울려퍼진다.

2월 12일 오후 7시 독일 다름슈타트 시립음대(Akademie für Tonkunst Darmstadt) 빌헬름 페터슨 홀에서는 ‘바다의 곡(哭)-LAMENTATION OF THE SEA’이 연주된다.

'바다의 곡'은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장)이 쓴 시 ‘무명천 할머니’에 독일 다름슈타트 시립음대 학장 ‘코드 마이예링(CORD MEIJERING)’이 음을 더했다. 코드 마이예링은 이 공연을 위해 1년 넘게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은 스페인 유명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2편에 붙인 연주로 시작한다. 이어, 무명천 할머니를 연주하는데 소프라노, 두 대의 피아노, 타악기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무용, 전자음향까지 어우러졌다.

▲서곡(갈매기의 춤)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간주곡1(갈매기의 춤) ▲무자년 그 날...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간주곡2(갈매기의 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후주곡까지 여덟 개의 장으로 나뉜다.

‘바다의 곡(哭)-LAMENTATION OF THE SEA’을 작곡한 독일 다름슈타트 시립음대 학장 ‘코드 마이예링. 
'무명천 할머니'를 쓴 허영선 시인.

코드 마이예링은 공연 소개 자료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독일 슈피커로그(Spiekeroog)라는 섬에서 보냈기에 섬 주민들의 삶을 꽤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미 여러 차례 제주도를 방문하기도 했다”면서 “육지로부터 독립하려는 그들의 열망, 그로부터 외부인의 결정에 따르도록 하는 그 어떤 것에도 저항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면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슈피커로그섬이나 제주도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이런 기억들과 생각들이 이 곡을 작곡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녹아들어갔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작곡 배경을 설명했다.

‘무명천 할머니’에 대해서는 “한국의 전통리듬인 진양조를 따라 슬픈 곡처럼 울린다”면서 “곡의 내용은 인간의 악행에 대해 커다란 비탄으로 읊조리는 바다의 시각에서 진행한다. 파도, 바람, 비명, 끼룩대는 재갈매기, 고래들… 쉽게 말해서, 인간이 종속된 개체로 바라볼 뿐 공존하는 것으로 잘 인식하지 않는 바다의 존재, 이 모든 것이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끊임없이 그리로 몰아쳐가는 진양조의 리듬으로 진행한다. 밀물과 썰물의 조수간만은 이 진양조 안에서 그 슬픔을 토해낸다”고 소개했다.

코드 마이예링은 “멋진 연주자들과 함께 할 뿐만 아니라 제주4.3의 수많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연주자는 소프라노 서예리, 피아니스트 한가야, 타악기연주자 정은비, 피아니스트 겸 무용가 한예나까지 네 명이다. 이 가운데 한가야는 제주 출신 재일음악가 한재숙의 딸이다. 한재숙은 제주 북촌리 출신으로 4.3 당시 일본 오사카로 피신한 바 있다.

피아니스트 한가야. 
소프라노 서예리. 
피아니스트 겸 무용가 한예나(왼쪽), 타악기연주자 정은비.

허영선은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언젠가 4.3을 음악으로 다루고 싶다는 누군가의 요청을 받아서 시 여러 편을 추천한 적이 있다. 그때 무명천 할머니 작품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렇게 먼 타국에서 음악으로 만들어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독일 공연은 고 진아영 할머니 개인을 추모할 뿐만 아니라 제주4.3 희생자 전체를 추모한다고 이해하고 싶다. 내 시는 그저 오브제의 하나 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공연은 유튜브로 생중계한다.

무명천 할머니 - 월령리 진아영
허영선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 흰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젖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 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반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해보지 않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고통 속에 허구한 밤 뒤채이는 
어둠을 본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네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그녀 몸의 소리를 
모든 말은 부호처럼 날아가 비명횡사하고 
모든 꿈은 먼 바다로 가 꽂히고 
어둠이 깊을수록 통증은 깊어지네 
홀로 헛것들과 싸우며 새벽을 기다리던 
그래 본 적 없는 나는 
그 깊은 고통을 진정 알 길 없네 
그녀 딛는 곡마다 헛딛는 말들을 알 수 있다고 
바다 새가 꾸륵대고 있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배롱한 세상 
한 세상 왔다지만 
꽁꽁 자물쇠 채운 문전에서 
한 여자가 슬픈 눈 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디흰 무명천 받치고 
울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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